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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라 강물아, 힘내라 팔당아

‘8당은 에코토피아’ 참가기 1


모든 투쟁의 끝에 패배가 예견된 시대, 그래도 싸울 수밖에 없는 시대. 다른 게 화병인가, 분노의 게이지는 높아만 가는데 표출할 수 없으니 화병이 생긴다. 트위터에서 두리반 사장님의 얼굴을 만날 때, 성미산 포크레인 앞에서 눈물 흘리는 언니를 보면서, 쌍용차 해고자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몰래 눈물을 훔치는 한심한 날들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었다.

직접행동에 굶주려 시들어가고 있던 참에 내 눈에 띈 것이 바로 ‘8당은 에코토피아(Eco+topia)’. 자전거도로에 반대하며 자전거로 달리다보니 팔당의 농민들을 만나게 되었고, 남한강 북한강도 만나게 되었고, 보드라운 흙과 텃밭과 생명도 만나게 되었다며, 개발과 뒤엉켜 살아온 우리들부터 팔당에서 내 삶을 들여다보자는 이끎. 강의 구경꾼, 삶의 구경꾼이 되지 말자는 제안. 지저분한 거 잘 견디고, 아무데서나 잠 잘 자고, 자연을 좋아하는 한 여자가 무기력한 여름, 에어컨에서 벗어날 방도를 드디어 찾게 된 것이다. 야호!

▲ "8당은 에코토피아". 에코토피아 장소에 걸린 현수막.


광화문에서 팔당까지 자전거로 달리다

불광동 집에서부터 자전거 타기 시작. 팔당까지의 떼잔차질(여러 사람이 떼를 지어 자전거 타기)이 시작되는 광화문 발바리 광장까지 혼자 가야 한다. (8당의 8은 자전거를 의미한다.) 출근시간이라 인도엔 사람이 많고 차도엔 공사를 왜 그렇게 많이 하는지,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앞 바구니에 실은 쌀과 오이 스무 개 무게 때문에 휘청거리며 광화문에 도착한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건 아이스 카페모카. 흐~ 스쿠터 타고 지나가는 저 언니는 왜이리 부러운겨, 나 이러면서 에코토피아 잘 할 수 있을까나.

떼잔차질을 시작하니 걱정은 금세 사라진다. 큰 깃발을 매단 자전거가 선두에 서고 차선 하나를 점거한다. 10여명의 발바리(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의 준말)들이 도로를 달리는데 해방감이 느껴진다. 혼자였으면 엄두도 못 냈을 터, 앞과 뒤에 있는 동지들을 믿고 내달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지나가며 짜증스럽게 빵빵 대는 차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도 잠시, 서서히 아스팔트 열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며 불쾌지수도 높아진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공사 현장,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과 찌푸린 사람들, 자동차 배기가스에 숨이 턱턱 막힌다. 이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던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앞으로 10년 안에 귀촌하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내려가고 싶은 마음과 이곳에서 부대끼며 끈질기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내가 외면할 수 있을 것인지 늘 혼란스럽다. 망우리를 지나 국도를 타니 좀 한가해진다. 강을 끼고 달리는데 물새 떼는 무심한 듯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네 시간 만에 드디어 팔당에 도착!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3박 4일을

도착하자마자 바로 씻으러 달려갔다. 옥수수밭 옆에서 지하수로 비누 없이 샤워를 하면서 에코토피아에 온 걸 실감했다. 주로 ‘빈집’ 사람들로 구성된 준비팀이 며칠 전부터 미리 팔당에 가서 공간만들기 워크숍을 통해 화장실, 저장고, 샤워장 등을 만들어 놓았다. 에코토피아에서는 전기를 쓰지 않는다. 로켓스토브를 만들어(궁금하시죠? 흐흐) 장작을 때 밥을 해먹고 8시 이후 어둠 속에서는 촛불을 밝힌다. 냉장고 없이 지하수로 만든 자연저장고에 식재료를 저장한다. 자연을 오염시키는 비누와 샴푸, 세제도 쓰지 않는다. 치약 대신 죽염으로 이를 닦는다. 옥수수밭이 가려주는(지켜보는?) 노천에서 샤워를 한다. 내가 싼 똥에는 겨를 뿌려 거름이 되게 한다. 채식을 하고 가공식품은 먹지 않는다.

장작을 때 밥을 하려는데 장작이 젖어있어 불이 잘 안 붙어 밥 짓는데 두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서울에서라면 밥 짓는데 두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까워 동동거렸겠지. 불 때기의 달인, 우리의 S님은 3박 4일 내내 거의 로켓스토브 앞에 있다가 영광의 상처를 얻기도. 우리는 원시공동체 시대에 왜 불을 숭배했는지 너무 잘 이해가 간다며, 이러다 집에 돌아가면 현대문명을 찬양하게 되는 게 아닐까 너스레를 떨었다.

에코토피아에서는 최대한 '유기농스러운(?)' 친환경적 삶을 살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 에코토피아에서는 최대한 '유기농스러운(?)' 친환경적 삶을 살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3박 4일 동안 많이 먹었지만 고기나 가공식품을 먹지 않아서인지 속은 편했던 것 같다. 더워서 끈적거리긴 했지만 비누나 샴푸를 안 써서 불편한 점은 없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들고, 비가 오면 빨래를 걷고 햇볕이 나면 다시 빨래를 널며 자연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하며, 나는 서울에서의 속도를 잊어갔다. 집으로 돌아온 지 3일이 지난 지금도 내 손톱, 발톱에는 때가 끼어있다.

팔당 농민들과의 만남 - 지난한 싸움이 기로에 서다

그날, 저녁을 먹고 농막에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빔 프로젝터를 쏘느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기를 사용했다.) 유기농사를 지키기 위한 지난 1년 반의 투쟁의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도로변에 매단 현수막을 관에서 무단으로 철거한 것에 항의해 결국 현수막을 받아낸 승리의 첫 싸움부터, 정부 측의 설명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행동, 유기농사 때문에 식수원이 오염되고 팔당 유기농사가 불법이라는 정부측의 호도에 맞선 끈질긴 투쟁까지. 측량을 몸으로 막아내다 끝내 연행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이명박은 당선 전 팔당에 찾아와 유기농밭을 둘러보며 유기농사를 장려해 놓고, 이제는 보상금 줄 테니까 농사 때려치우고 나가란다.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고 저들이 그 곳에 만들 것은 자전거 도로와 레저 시설이란다. 휴우~

다큐멘터리 상영 후, 에코토피아를 방문하신 팔당 농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상황 설명을 들었다. 유기농지 보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곳은 남양주와 두물머리 두 지역인데, 남양주는 이미 공탁을 걸었고(유기농지를 밀어버리는 것에 대한 보상금을 걸어놓고 찾아가고 싶은 사람은 찾아가라는 것이다), 두물머리 지역은 아직 측량조차 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얼마 후면 계고장(빨간 딱지)이 날아오고 포크레인으로 밀고 들어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저항한다고 해도 5분이면 상황 끝이다. 물리력으로는 저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많은 사람이 다치고 아비규환이 된다고 해도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도착한 그날, 농민 분들은 공탁을 철회하고 농민들과 대화할 것을 요구하러 서울에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오셨다며 조금은 힘 빠진 모습이셨다. 지금 팔당에서는 내부의 패배의식, 포기하는 사람들, 타협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앞장서서 투쟁해 오신 분들은 제일 힘들 국면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팔당공대위 유영훈 대표님이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앞에서 노숙단식농성을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의 앞날이 아무리 답답해도 투쟁의 현장에 술과 노래가 빠질 수 없는 법. 촛불 켜놓고 빈집 사람들이 직접 만든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개구리들의 합창소리 속에 팔당에서의 첫날밤이 익어갔다.
덧붙임

나랑 님은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 다음 호에 참가기 2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