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를 받은 경기지방경찰청 112상황실은 사건을 살인이나 강도, 인질사건 등 매우 중요한 사건에 적용하는 ‘코드1’로 분류하고 수원중부경찰서 동부파출소에 출동을 명령했다. 신고접수 2분 뒤 2명이 도착하고 다시 3분 뒤 2명이 도착해 총 4명의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 경찰은 창문을 통해 임 모 씨가 출장마사지 업소 여직원을 성폭행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집안에 강제로 진입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밖에서 지켜보다 1시간 뒤에 집안에서 나와 “성폭행 당했다”고 진술하는 여성의 말을 들은 후에야 임 모 씨를 체포했다.
오원춘 사건과 112신고 무대응 사건이 발생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여성 폭력에 대한 경찰의 무대응 사태가 또 다시 발생한 것이다. 당시 출동했던 경찰들의 진압하지 않은 이유가 가관이다.
경찰은 “흉기 등이 확인되지 않아 동의하에 벌어지는 화간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성폭행을 저지르고 있는 상황에서 흉기를 들고 있는 범인은 거의 없다. 또한 성폭력은 꼭 흉기 위협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폭력 범죄는 길 가다가 낯선 사람이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전투극의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직장과 가정과 학교에서 아는 사람들의 권력에 의해 ‘흉기 없이’ 손쉽게 일어나는 성폭력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번 사건 역시 흉기의 여부를 떠나 판단했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의 부적절한 대응은 경찰이 가진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고정관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경찰은 “A씨가 성폭행 당하고 있었다 해도 집안에 강제로 들어가면 신변이 위험할 수 있어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 이야기한 ‘흉기가 없어서 화간으로 보인다’는 말과는 너무 다른 판단과 근거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경찰이 성폭행과 인질극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음을 상상하고 피해 당사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조심했다 치더라도, 경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창문을 통해 성폭력 장면을 쳐다보는 일 뿐이었을까? 범인이 문을 열게 하는 지능적인 진압을 활용하지 못한 경찰의 감수성 없음과 무능함은 답답한 차원을 넘어선다.
임 모씨가 출장 마사지사 여성을 불러내 성폭행 한 것은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성폭력 가해자들의 특성 상 처음부터 성폭력을 목적으로 계획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 또한 남성이 있는 집에 혼자 마사지 서비스를 하러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밖에 있는 또 다른 직원과 연락을 하면 안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해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피해당사자의 안전 확인을 위한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직장동료의 신고를 접수받아 출동한 ‘코드1’ 분류 사건에 대해서조차, 현장진압을 하지 않은 것은 경찰의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다. 창문을 통해서 1시간 동안 경찰들은 성폭력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아무런 손을 쓰지 않은 것이다.
만약 출장안마사가 아니었다면?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과연 출장 안마사가 아닌 여성이었어도 경찰은 마찬가지 대응을 했을까? 성폭력 가해자들은 유흥업소에서 일하거나 출장 서비스를 해주는 일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쉽게 범죄의 타깃으로 삼는다. 물리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구할 곳이 없거나,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에 의해 정당한 수사와 적법한 해결 과정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2012년 이룸은 <성매매 여성, 안전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포럼을 진행한 바 있다. 포럼에서는 성매매 여성 살인을 포함하는 여성종업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살펴보았고, 그 방대한 양의 사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를 보여준다. 합의되지 않은 성적 서비스 강요, 성폭력 피해와 고립된 공간에서의 위험 속에서 피해 경험은 누적되고 개별적인 안전지침은 완벽하지 않다.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은 직종의 일을 알선하는 마사지 업체의 운영 자체도 문제다. 지난 5월 23일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태국 여성을 불법으로 고용해 유사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태국 마사지 업주 박 모 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마사지 업체가 가진 여성에 대한 폭력은 혐의를 넘어서서 현실임이 드러나고 있다.
여성의 안전을 책임지기는커녕 여성을 위협하고 취약한 처지를 악용하는 업주들과 이를 방관하는 사회는 가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문제의 커다란 원인이다. 또한 어떤 직종의 일을 누가 하더라도 무엇보다 중요한 안전에 대한 권리는 모든 시민들에게 부여되는 필수적인 권리다. 그것을 경찰이 인식하고 있었다 해도 지금과 같은 결과가 발생했을까.
이번 사건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성폭력 가해자가 전자발찌 착용자였다는 사실만을 부각시키며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물론 성폭력 가해자가 전자발찌 착용자가 아니었다면, 이번 경찰의 부적절한 대응은 크게 이슈화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전자발찌 착용자에 대해 관리하지 못한 점을 비난받는 경찰은 “권한이 없어 우범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우는 소리를 하고 있다. 더불어 여론은 “상위법이 마련되지 않아 직접 우범자를 만나 첩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내부 규정이 존재하지만 강제규정이 아니어서 대상자가 거부하면 손 쓸 도리가 없다”며 경찰을 위로한다.
그러나 이번 수원 성폭력 사건의 문제는 전자발찌를 착용한 우범자에 대한 경찰의 관리력 문제가 아니다. 정황상 ‘성폭력이 의심되’는 근거가 타당한 신고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이유에는 경찰의 반성폭력 감수성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로 자리한다. 성폭력 피해 여성은 바로 문 앞에 경찰이 4명이나 와 있음에도 그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이다.
최근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의 워싱턴 성추행 사건이 뜨거운 이슈였다. 이 사건을 둘러싼 여론에서도 드러나듯이 모든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성폭력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무엇을 성폭력으로 보고 무엇을 문화적 차이로 볼 것인가. 아직도 (누가 보기에) 기괴하고 변태스럽고 악랄하고 잔악무도한 강간만이 성폭력이라고 생각하는가. 소리를 지르고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저항하며 발버둥치는 피해자만 피해자로 볼 것인가. 가해자와 경찰 뿐 아니라 이 사회의 모든 (반)성폭력 감수성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비단 해당 경찰관에게만 징계를 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덧붙임
숨 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