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서울시(시장 박원순)는 '주요 보도 점용행사 및 집회 관련 점용허가 업무 매뉴얼(아래 매뉴얼)'을 만들어 25개 자치구에 전달했다. 서울시는 주요 도로가 행사와 집회로 과도하게 점용되어 시민들이 불편하고 미관상 좋지 않아 매뉴얼을 발간한다고 밝혔다. 매뉴얼에서 서울시는 보도를 점용하는 행사를 가급적 자제하고, 주요도로를 점용할 때는 각 자치구가 서울시와 사전에 조율하며, 집회 관련 물품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집회 물품 관리강화 대목을 보면 기가 차다. 서울시는 ‘차량, 확성기, 입간판, 그 밖에 주장을 표시한 시설물’은 집회용품으로서 점용허가대상이 아니나 ‘그 밖의 것’은 도로법상 점용허가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서울시는 ‘천막’이 집회용품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도로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법원은 집회시위 용품을 도로에 설치할 경우 구청에게 도로점용허가권을 받으라고 한다. 12월 4일 대한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장기농성을 했던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에게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8형사부(재판장 지영난)은 적법하게 집회신고를 했어도 집회장소인 도로 위에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도로법상 도로점용하가를 별도로 받으라고 판결했다. 참 어이없다. 기본권이 도로법에 묶인 꼴이다.
한마디로 서울시와 구청, 법원까지 합세해 집회시위자들의 거리 점유를 제한하고 거리에서 다양하게 표현되는 집회방식을 규제하겠단다. 가뜩이나 현행 집시법 하에서 경찰은 어떤 내용의 집회냐에 따라 집회 공간, 시간, 방식을 끊임없이 간섭하고 방해해왔다. 경찰은 집회 때 사용할 물품을 사전에 신고하도록 강제해왔고 신고 되지 않은 물품의 경우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입을 막는 경우도 허다했다. 여기에 더해 차량, 확성기, 입간판, 그 밖에 주장을 표시한 시설물을 ‘제외한 물품’에 대해서는 구청까지 가서 점용허가를 받으라는 주문이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집회에 대한 사전허가금지는 도로법과 구청의 도로점용허가권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경찰이 규제하는 것도 모자라 구청과 서울시까지 나서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옥죄겠다는 발상이다. 집시법,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에 이어 이제는 도로법과 도로교통법까지 등장했다. 벌금폭탄에 이어 과태료 폭탄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집회 공간·방식은 시간과 더불어 집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집회주최자는 시간과 장소뿐만 아니라 집회를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집회 주최자는 집회에서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한다. 쌍용자동차, 밀양, 용산참사로 인해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를 위해 천막을 치고 추모의 집을 만들 수도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답을 하지 않는 사측을 압박하기 위해 회사 사옥 앞에서 장기농성을 할 수도 있다.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며 감옥모형을 만들어 갇히는 포퍼먼스도 있었고, 한미FTA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상여를 만들어 행진했던 기억도 새롭다. 의문사법 제정을 위해 유가족들은 무려 3년에 걸친 천막농성을 국회 앞에서 진행했고 지금도 기초법 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장애인, 홈리스 등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장기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천막은 사람들을 안정적으로 모일 수 있도록 돕는 필수적인 물품이다.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집회시위를 하느냐는 집회시위 자유의 본질이다. 집회 시위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 자체는 일정한 시공간의 점유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묶는 엉뚱한 법령 적용과 행정조치들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도로법이나 도로교통법에 묶여서야 되겠는가! 대법원은 평화적 집회 보호의 의무를 내세우며, 집시법 상 해산명령 불응죄로 처벌하지 말라면서도, 동일한 행위를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의 어이없음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제는 천막농성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집회시위를 제대로 쟁취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에 대한 점유권을 넓혀야 한다. 서울시가 ‘인권도시 서울’을 만들고 싶다면 매뉴얼부터 철회하라.
덧붙임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