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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대법관 9명이 모이면 집회인가 아닌가

신고 의무 부과하는 집시법의 위헌성이 문제

대법관 9명이 모여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퍼포먼스는 집회’라는 공동의 의견을 거리에서 대외적으로 표명하면, 그것은 집회일까 아닐까. 이런 질문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대법관 9명이 굳이 거리에서 이런 주장을 할 필요도 없을 테고, 사법부의 판결이 ‘의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판결을 대법원 스스로 내렸다.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퍼포먼스는 집회?

지난 3월 28일, 대법원 제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청년유니온이 2010년 4월,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벌인 플래시 몹이 신고하지 않은 ‘집회’라며 벌금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플래시 몹(flash mob)은 불특정 다수가 미리 정한 장소에 모여 약속한 행동을 하고 해산하는 퍼포먼스다. 청년유니온은 노조설립 신고서가 반려된 것에 항의하기 위해 플래시 몹을 제안했고 이에 동의한 사람들이 모여 소복을 입고 북을 치거나 컵라면을 끓여먹는 등의 행동으로 절박한 현실을 풍자했다. 당시 경찰은 이것이 미신고 집회라고 주장하며 참가한 사람들의 피켓을 빼앗는 등 내내 경고방송을 하며 퍼포먼스를 방해했다. 청년유니온은 약 10분간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해산했고 이후 검찰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하였다.

청년유니온은 이번 판결에 대해 “퍼포먼스와 집회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물으며, “순수한 문화예술과, 순수하지 않은 정치행위를 어설프게 구분하여 청년유니온에 벌금형을 확정한 사법부의 판단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청년유니온의 질문에 대해 대법원이 답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순수한 문화예술’조차 예술은 순수해야 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심오한 얘기까지 대법원에 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법원의 판단은 의외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청년유니온의 퍼포먼스가 “정치·사회적 구호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려는 의도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집회’라고 대법원이 말할 때, 대법원은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고 항의하는 메시지만을 정치적인 것으로 읽어내려는 대법원의 노력은 너무나 쉽게 형평성 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퍼포먼스는 집회’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춤을 추면 그것은 미신고 집회인가.

대법원이 정의하는 집회는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공동의 의견을 형성하여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대법원 2009.7.9. 선고 2007도1649 판결 등)이다. 여기에는 어떤 의견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그런데 청년유니온의 퍼포먼스가 집회가 아니라면,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면,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서 그와 비슷한 정치적 의견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어떻게 막지? 대법원의 고민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대법원은 청년유니온의 플래시 몹이 ‘정치적’이라며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회라는 말을 듣고 머리에 떠올리는 것은, 거리에서, 정부나 기업에 항의하는 모든 행동이다. 이와 같은 연상 작용의 책임은 물론 사법부에 있는데, 사법부가 벌해 온 ‘집회’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법부가 ‘집회’를 처벌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전가의 보도가 바로 집시법 제6조 옥외집회 신고 의무다. 대법원의 속마음을 성심껏 헤아려보면 이렇다. ‘두 명 이상이 모여 정부나 기업에 반대하는 의견을 형성하여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공장소에 모이는 것’은 집회이므로 미리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

물론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 기관으로서 헌법 제21조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집회에 대한 허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집회를 신고하도록 한 것이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서는 아니 되므로” 미신고라는 사유만으로 경찰이 해산 명령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들에 대한 해산명령 불응죄 벌금형 선고 판결(서울중앙지법 2011.5.12. 선고 2010노4708 판결)을 파기, 환송한 판결(대법원 2012.4.26. 선고 2011도6294)이 그것이다.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런 취지라면 청년유니온의 플래시 몹을 내내 방해한 경찰이야말로 처벌받아야 했던 것이다.


대법원이 지키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

이번 판결에서 분명해진 것이 있다. 대법원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아니라 신고 의무라는 점이다. 현행 집시법의 신고 의무 조항은 신고 내용에 대해 경찰이 토를 달 수 있는 광범위한 재량권과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는 권한 등과 맞물려, 경찰에게 집회를 허가할 권한을 부여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결국 대법원은 국민의 기본권을 경찰의 손에 맡긴 것이다. 사전 신고는 협력 의무로서의 신고라며 합헌 결정(2009.5.28, 2007헌바22 결정)을 한 헌법재판소도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만으로, 금지통고를 받은 집회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해산명령을 내린 것이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기존 판결들은 경찰의 권한을 제한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도 있다. 이런 판결에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결론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모든 집회에 신고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 그러니 헌법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집시법을 크게 손 봐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제 더욱 분명해진 것은 다음과 같다. 경찰의 권한을 제한하려는 듯한 판결을 내리면서도 대법원은 신고 의무 조항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 사람들이 모여 함께 저항하려는 기세가 보이면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간에 신고하도록 한다는 것. 집시법이 옥내와 옥외,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등의 기준을 두는 것은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행위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고해야만 하는 ‘집회’를 정하려는 데에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의 검열 기능이다.

집시법이 부과하는 신고 의무가 허가제로 기능하고 있어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우리는 입이 닳도록 해 왔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신고제는 그저 협력 의무일 뿐이라며 신고 의무의 유지를 고집할수록 그들의 정치적 의도는 분명해질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고 들을 권리가 있다. 의견을 모으고 행동할 권리가 있다. 거리에서는 안 되고 정부 비판은 안 된다는 대법원의 내심이, 대법관 9명이 모여 내린 결정을 퍼포먼스보다도 가벼운 것으로 만들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대법원은 아시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