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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범’ 취조는 저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인권활동을 하며 많이 듣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범죄자 인권’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이다. 이 물음은 개인적인 친분관계에서 듣게 되기도 하지만, 강력범죄 사건이 기사화 되면 사무실로 오는 전화를 통해서도 듣게 된다. 사무실로 오는 전화는 대부분 ‘질문’보단 자신의 입장 표출이기 때문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쉽지 않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설명은 나조차도 별로 와 닫지 않고, 사회적 문제를 개인에게 책임전가 한다는 설명 또한 공허하다. 그래서 인지 이 질문이 나오면, 친분관계에서는 ‘퇴근했으니깐 나 인권활동가 아니라고’ 대답하거나 그냥 못들은 척 연기를 한다.

최근 즐겨보던 드라마를 보다 이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드라마에서는 아주 짧게 다루어지는 몇 초간의 장면이었지만, 그 장면의 불편함이 어쩌면 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오만과 편견’ 만식이는 왜 마약밀매를 하게 된 걸까?

MBC에서 방영중인 ‘오만과 편견’은 잘 짜인 구성을 바탕으로 오랜만에 검찰청에서 연애하는 드라마가 아닌 ‘수사’하는 드라마라는 평을 받고 있다. 처음엔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보게 되었지만, 최근엔 드라마 전개에 빠져서 오랜만에 꼭 챙겨보는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스토리는 2화부터 시작된 마약사범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주인공 ‘열무’가 소속된 민생안전팀은 마약판매상 피의자 만식을 정보원으로 활용하여, 관련 조직을 검거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만식은 이중플레이를 통해 마약을 밀수입하려 한다. 노련한 부장검사 ‘문희만’은 만식의 이중플레이를 눈치 채고 마약 지게꾼의 신원을 확보한다.

이 과정의 드라마틱한 흐름은 보고 있는 시청자를 빠져들게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흐름이 끝난 이후, 중간에 보여주었던 한 장면은 나를 계속 불편하게 했다. 단지 한 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바로 부장검사 ‘문희만’이 ‘만식’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계속 비슷한 장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부장검사 ‘문희만’은 ‘만식’을 만식아 라고 부르다가, 김만식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말과 존댓말을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커피를 타주었다가 커피 잔을 손으로 쳐서 얼굴에 뿌리기도 한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린 동생 다루듯 한다. ‘손들고 있으라. 시키는 건 당연하다. ‘만식’ 또한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수사과정중 하나려니, 에피소드나 복선이니 하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검사들’이고 ‘만식’은 엑스트라에 불과하니 ‘만식’의 삶 보단 ‘검사들’의 삶이 주된 관심이다.
[사진 설명]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부장검사 문희만은 현실에 있을법한  검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 [사진 설명]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부장검사 문희만은 현실에 있을법한 검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학교 2013’의 오정호가 만식이라면?

이야기를 뒤집어 보자. ‘만식’의 부모는 폭력을 휘둘렀고, 학교생활 또한 안정적이지 않았다. 드라마의 극적장치를 빌려오지 않아도 된다.(부모가 권력자에게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한다던가, ‘만식’이가 알고 보면 재벌집에 바뀐 아들이라던가.) ‘만식’은 학교에서나마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학교 일진의 자리에 올라선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교사에게 무시당하고, 전학 온 학생과의 싸움에서 두들겨 맞은 만식은 학교에서 결국 자리를 위협당하고 학교에서 더 이상 버터지 못하고 떠난다. 중졸의 ‘만식’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당구장에서 동네 깡패들 밑에서 두드려 맞으면서 생활하다, 어느덧 범죄와 연루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던 중 ‘만식’은 마약밀매 조직에 빠진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만식’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드라마 ‘학교 2013’의 오정호를 떠올려보자. ‘학교 2013’의 오정호의 모습이 위에서 말한 ‘만식’의 이야기이다. ‘학교 2013’에서는 오정호는 주변의 친구도, 교사도 존재했지만 결국 학교에 머물 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지만, 아버지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이다. 그가 떠나며 ‘너무 걱정 마세요. 나쁘게는 안 살게요’ 라고 말하지만 중졸의 그가 현실의 벽에서 어떠한 삶을 살게 될까? 거액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오정호는 마약밀매를 할 수도 있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이후의 오정호를 보여주지 않지만, 오정호의 삶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건 현실의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사진 설명] '학교 2013'에서 오정호는 ‘너무 걱정 마세요. 나쁘게는 안 살게요’라고 말하며 학교를 떠난다. 현실에 오정호는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 [사진 설명] '학교 2013'에서 오정호는 ‘너무 걱정 마세요. 나쁘게는 안 살게요’라고 말하며 학교를 떠난다. 현실에 오정호는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만약 오정호가 ‘만식’이라면, 우리는 ‘만식’이 검찰에 범죄피의자라는 이유로 당하는 협박과 굴욕, 모욕을 어떻게 보게 될까? ‘만식’이 저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 텐데 라는 안타까움과 다른 일은 할 수 없었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겨졌을 거다. 그리고 ‘만식’이 주인공으로 그에 삶에 디테일한 어려움들이 가령, 10대부터 모아둔 돈으로 강남에서 포장마차를 했다가 구청에 철거를 당하고 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면, 안타까움을 넘어 다른 감정을 시청자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어려움은 듣지 않고, 오직 그를 이용하려 하는 검찰에게 화를 냈을 수도 있다. 작게는 카메라의 위치가 ‘만식’의 관점에서 ‘부장검사’의 표정을 드러내기만 해도 이야기에 대한 감정이입의 구도는 바뀔 수 있다.

‘사람’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범죄자 인권을 이야기하며, 드라마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놓은 건 우리가 말하는 범죄자 인권, 피해자 인권 안에는 ‘범죄자’ 라는 한 인간과 ‘피해자’라는 한 인간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 인권에서 정작 중요한 피해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 이후 치유과정에서 사회의 역할과 변화는 이야기 되지 않고 오직 가해자 처벌로만 귀결되는 것처럼 범죄자 인권에서 그 범죄자 개개인의 삶은 존재하지 않고 ‘범죄’ ‘악’이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인간’은 지워지고, 결국 ‘처벌’만이 남겨진다. 드라마에서 ‘피해자’와 ‘피의자’가 엑스트라인 것처럼, 현실에서도 ‘인간’은 엑스트라가 된다. 여기서 이야기는 계속 헛돌게 된다.

범죄자 인권을 이야기 하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건, 결국 범죄도 사람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발적일 수도 있고, 계획적일 수 있고, 그가 정말 더 이상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는 한 사회의 ‘인간’이며 사회에서 아픔도 있었을 것이고, 기쁨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연민을 보내거나,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그가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좋겠다. ‘인간’이 사라진 채 ‘인권’을 이야기 하면 정작 ‘인권’에서 인간이 드라마의 엑스트라처럼 사라질 뿐이다.
덧붙임

훈창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