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또 지갑이 텅텅 비었네. 별거 쓴 것도 없는데.
B: 내 월급만 안 오르고 다 오르니까 그렇지. 물가도 물가지만 난 요즘 말의 인플레가 지긋지긋해.
A: 말의 인플레?
B: 왜 그거 있잖아. 물가 오르듯이 사람들 쓰는 말이 자꾸 세지고 막 올라가는 거.
A: 예를 들면?
B: 내가 전화를 뚱하게 받아서 불쾌했다며 자기 인권을 침해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더라.
A: 아, 그런 거.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를 말했을 뿐인데 자기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난리인 사람도 많지.
B: 단순히 기분 나쁜 것, 자기가 불편한 것에 죄다 인권 침해를 갖다 붙이면 정작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이 쓸 말이 남아나겠어? 그러니까 말의 인플레란 생각이 들더라구.
A: 말의 인플레이기도 하지만 사실, 말의 오남용인 것 아냐?
B: 편견, 모욕, 경멸… 이런 걸 함부로 쏟아내면서 취향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많고.
A: 차별에 대한 반대에 발끈하고 반발하는 사람도 많고.
피해자에 대한 인정
B: 인플레든 오남용이든 이런 상황에서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인권 피해자인 것 같아. 피해자란 말의 인플레와 오남용에 시달려야 하잖아.
A: 그러게. 사람들이 피해자란 말을 정작 써야 할 때 안 쓰고 남발하니까. 근데 피해자에 대한 정의가 있나?
B: 뭐, 다양한 정의가 있지. 국제인권기준에서 흔히 쓰이는 정의는 이런 거야. 인권 피해자란 국제 및 국내 인권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나 태만으로 인해 기본적 인권에 침해를 입은 사람이야. 인권피해자는 그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피해, 감정적 고통, 경제적 손실 등의 고통, 차별과 배제, 착취를 경험하지. 이런 피해자에는 개인, 개인들의 집단, 피해당사자와 가족 뿐 아니라 피해자를 돕거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개입하다가 피해를 입은 사람도 포함돼.
A: 근데, 우리 주변을 보면, 인권침해를 겪은 것도 억울한데 피해자란 입장에서 겪어야 할 일이 첩첩산중이지.
B: 일단 인권피해자란 인정을 받는 것 자체가 참 힘들어.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는 유엔 인권 기준에서 맨 앞에 나오는 게 뭔 줄 알아?
A: 피해에 대한 배상과 보상?
B: 아니, 피해에 대한 인정이야.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하는 해를 입었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는 거야.
A: 아우, 첫 번째 관문 자체가 한국 사회에선 바늘구멍이네.
B: 일단, 피해를 무시하고 되려 비웃는 걸 통과해야 돼. ‘징징거린다’ ‘엄살 떤다’ 등
A: 또 인정하는 척하는 게 있지. 너 피해자인건 알겠는데 ‘빨리 잊어라’ ‘벗어나라’ 이런 식으로 망각과 봉합을 강요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척하는 건’ 진짜 인정하는 게 아닌 거지.
B: 피해 사실을 부인하는 건 또 어때? 그런 일 없었다고 대놓고 하는 부인, 그러다 사실이 뽀록나면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다’란 식으로 피해자의 순수성을 물고 늘어지는 부인, 또 ‘네가 사건을 곡해한 것’이라 뒤집어씌우는 부인.
A: ‘왜 그때 가만있었어?’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대응을 문제 삼는 거도 있지.
B: 또 피해자의 태도에 대한 검열도 있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거나 씩씩해 보이거나 하면 안 돼. 피해자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고 여기는 거지. 피해자는 울기만 해야지 웃기라도 하면 안 돼.
A: 피해의 크기를 따지는 것도 있잖아. ‘더 엄청난 일도 많은데’ ‘더한 일을 당한 사람도 많은데’ 이런 식으로 고통에도 서열을 정하는 거야. 정말, 이래저래 피해자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험난하구나.
피해자들의 일반적 상황
B: 인권 피해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꼽는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명제라는 게 있어.
A: 우울한 목록이겠구나.
B: 첫째,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젤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
A: 그렇지. 그런데 사람들은 인권침해란 게 그런 권력관계의 불균형에서 벌어진 일이란 걸 망각하고 대등한 당사자 간의 아웅다웅이나 갈등 같은 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B: 둘째, 피해자들은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이해받지 못한다.
A: 그 말을 바꿔하면, 가해자는 일반적으로 피해자에게 입힌 위해의 성격, 정도, 해로움을 인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네.
B: 셋째, 피해자가 되려 비난받는 경향이 있다.
A: 되풀이 말해 뭣하나. 아까 우리가 잔뜩 얘기했잖아.
B: 넷째,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가해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A: ‘웬수’에게 뭘 의존해?
B: 의존한다는 게 ‘좋아서’ ‘신뢰해서’ 의존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야. 국가가 저지른 인권침해인데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기관과 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 또 회사에서 당한 일인데 생계고 관계고 명예고 그 회사에 달려있으니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고. 이민가고 퇴사하는 게 뭐 쉬운 일이야? 또 그렇게 물리적으로 벗어난다고 해서 피해가 회복돼?
A: 그럴 리 없지. 의존이란 말이 참 속상하다. 그런데 피해자보고 ‘싫으면 떠나라’식의 말을 남발하는 사람들 보면, 참…….
B: 마지막 명제야. 피해자는 반복적인 피해자화의 쉬운 표적이 된다.
A: 아, 슬프다. 이 명제들 죄다 부인할 수가 없네. 우리 주변에서 죄다 벌어지고 있는 일이네.
사과 받을 권리
A: 백남기 님이 경찰 폭력에 사경을 헤맨 지 백일이 넘었는데 아직껏 정부 책임자한테 사과 못 받았잖아.
B: 세월호 피해자와 그 가족, 민간잠수사 등 그 고통에 함께 하다가 피해를 본 분들, 뭐 이분들한테는 제대로 된 사과가 있었나?
A: 사과하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아냐? 그것도 못하면서 왜 정치를 한다고 하고 국가나 기업을 운영하겠다고 하는 거지?
B: 사과하면 책임을 인정하는 거잖아. 책임지기 싫으니까 안하는 거지.
A: 카메라 앞에서 정부 권력자나 기업 총수 등이 눈물 흘리거나 허리를 숙이는 쇼는 많잖아. 그걸 사과로 여기라는 건가?
B: 그럴 때 보통 ‘유감’이란 말로 퉁치고 넘어가지. 잘못에 대해 명백히 밝히지 않으면서 유감이라 하는 거, 난 그게 더 싫더라.
A: 그런 어정쩡한 사과가 더 나쁜 거 같아. 피해자를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모는 거잖아.
B: 어떤 학자가 부적절한 사과의 유형을 정리해봤대.
뭘 사과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사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대신 상대에게 ‘안됐어요’란 감정 정도만을 보이는 사이비 사과,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잘 하겠다’고 다짐하는 사과, 과오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금전을 제공하는 무마하는 사과, 사과할 자격이나 권한을 갖지 않는 자가 하는 대리사과……. 이것 말고도 많아.
A: 아이고, 들을수록 그간 우리가 겪은 부적절한 사과가 풍년이네. 피해에 대한 인정과 사과 받을 권리. 정말 기본인데, 에효…….
B: 피해자의 기본 권리 목록을 언제 채우려고 하는지. 피해에 대한 인정에 기초해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이유와 원인, 구체적 상황, 누가 관련되었는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잖아.
A: 그러게. 진실에 대해 알 권리, 진상 규명이 있어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지. 또 그런 진상규명에 기초해서 책임을 물을 것은 묻고,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것은 챙기고 해야 정의를 실현할 권리가 충족되지.
B: 정의를 실현하려면 당연히 피해에 대한 배상이 있어야지. 배상은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보이는 공식적인 사과의 증거이자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증표인데, 그걸 무시하고 배상으로 모독하는 건 너무 나빠.
A: 진실규명과 정의 실현은 같은 일의 재발방지와 제도 개혁을 이루려면 반드시 충족해야 할 전제조건이잖아. 또 재발방지와 제도 개혁에 대한 권리는 사실 피해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관련된 문제이고.
사람의 가난
A: 피해자의 권리 목록을 들여다보니 난 참 가난하다는 느낌이 든다. 난 내 지갑이 가난한 것도 슬프지만 관계가 가난한 건 더 슬퍼.
B: 관계가 가난하다? 너 좋은 친구 많잖아. 나 같은? 하하.
A: 하하. 그거 말고. 나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의, 염치, 공감, 존중 같은 거에 인색한 수전노들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가난하다고 느껴져.
B: 맞아. 경제성장 하려는데 피해자들이 걸리적거린다고 비키라고 하고, 망각을 고의적이고 조직적으로 강요하고, 정치가와 언론인 등 힘센 사람들이 공공의 장과 매체를 이용해 모욕과 막말을 일삼는 것, 그런 걸 겪을 때마다 내가 정말 가난하구나 절감해.
A: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가난하다’는 말의 의미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의미래.
B: 우리, 가난을 벗어나려면 곁을 주는 사람이 돼야겠구나.
피해자에 대한 존중
A: 곁에서 우리가 피해자에 대해 보여야 할 최우선적이고 최선인 태도는 뭘까?
B: 존중이래. 국제인권법에서는 이 존중을 뭐라 했냐면, 피해자가 피해자여서가 아니라 피해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인권에 대한 존중이랬어.
A: 인권은 우리 모두의 문제니까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해결을 도모하는 것도 우리와 관계된 문제네.
B: 따지고 보면, 우린 피해자에게 감사해야 해. 피해자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일지 몰라.
A: 탄광 속의 카나리아?
B: 아주 옛날,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가스 중독이었대. 환기 시설이 없는 갱에서 독가스가 새어나오면 얼마나 위험했겠어. 근데 가스는 눈에 안 보이니까 제때 위험을 알 수 없잖아. 이상을 느끼게 될 때면 이미 탈출하기엔 늦은 상황이 되는 거지.
A: 정말 위험하겠다. 근데 그거랑 카나리아랑 무슨 상관이야?
B: 누가 방법을 알아냈는지 모르지만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가면 카나리아가 신호를 줬대. 카나리아는 가스에 아주 민감해서 공기 속에 산소가 충분하면 즐겁게 지저귀다가 공기가 나빠지면 노래를 멈추고 시름시름 해졌대. 그러면 광부들은 바로 탈출하여 목숨을 지킬 수 있었대.
A: 아, 그러니까 그렇게 문제를 미리 알리고 경고해 주는 사람을 ‘탄광 속의 카나리아’라고 부르게 된 거구나.
B: 그래. 우리 곁의 피해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인권의 약한 고리이고 인권을 저해하는지를 알리고 경고해준 고마운 사람들이야.
A: 그것만이 아니지. 어떤 피해자들은 우리에게 놀라운 인간성을 보여주잖아. 가혹한 사건을 우리가 공유할 문제로 바꾸고 변화를 위해 뭔가 해보자고 손 내밀지. 동정과 도움이 아니라 공감과 연대를 요구하지. 그런 피해자를 통해 우린 공동의 기억이란 걸 갖게 되고 공동의 과제를 갖게 되지.
B: 맞아. 인권침해에선 가해자와 피해자가 단수의 행위자인 경우보단 복수의 행위자들이 복잡하게 연관된 게 많아. 또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침해사건들도 물론 있지만, 구조적인 불의가 뿌리에 있을 때가 많아. 구체적인 피해자들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연관과 구조의 뿌리를 드러내고 생각하게 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건, 우리가 빚지는 일인 것 같아.
A: 인권피해자의 대표적 권리가 아까 뭐라 했지?
B: 피해에 대한 인정, 진실을 알 권리, 정의실현에 대한 권리, 피해 배상에 대한 권리, 재발방지와 제도 개혁에 대한 권리
A: 이것 중 어느 하나도 나와 상관없는 게 없네. 그래도 우리 사회에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규범과 가치가 있다고 믿고 그걸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난 그런 사람들과의 공통감각을 통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