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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평등의 약속을 잇는 차별금지법

‘전국순회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평등버스’가 실어온 이야기

2020년 6월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긴 과정에서 기억될만한 순간에 꼽힌다. 보수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혐오선동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2개의 차별금지법안이 철회되었던 19대 국회, 차별금지법이 발의조차 되지 못했던 20대 국회를 지나 7년의 침묵을 깨고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이야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6월 29일에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대표발의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고, 그 다음 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제정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 차별금지법을 침묵과 유예 속에 머물게 한 조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에서조차 이번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마냥 지나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180석 거대 여당이 자리 잡은 21대 국회, 이제 차별금지법 제정은 목 빼고 국회를 바라보면 되는 걸까?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잇는 평등버스

‘나중에’로 점철되었던 차별금지법 국면을 전환시키고 이번 국회에서 꼭 제정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없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거세게 국회를 압박해야 하는 것 아닐까, 차별금지법에 미온적인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작업에 더 공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가장 큰 반대 세력인 종교계와 어떻게든 접점을 찾고 지지 기반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수 없이 이루어진 긴 논의 속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가 선택한 그 다음 행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열망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평등버스다.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은 국회가 나서고 종교계가 지지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그 다음’에야 제정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오랜 시간 반차별 운동으로 자리매김 해 왔던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순간을 만드는 것은 결국 평등을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한국사회에 일상화된 차별을 알아차리고 평등을 실천하는 과정, 서로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식하고 관계 맺고자 하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힘만이 국회의 담장을 뛰어 넘을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된 <전국순회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평등버스>는 8월 17일 서울을 떠나 전국 26개 도시, 2,000km를 달렸고, 지난 8월 29일 다시 출발지인 국회 앞에 도착했다. 한 명의 존엄은 모두의 존엄이라는 인권의 원칙을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 평등에 대한 우리의 약속이 서로의 미래가 되어줄 것이라 말하는 수많은 목소리를 싣고서.


모든 사람이 존엄하다는 헌법 정신을 다시 쓰는 차별금지법

평등버스가 2주 동안 26개 도시를 순회하는 동안 차별금지법을 알리는 수많은 선전전 캠페인, 기자회견과 문화제가 진행되었다. ‘평등할겨! 말겨?’(대전), ‘안 만들고 뭐하노!! 포괄적 차별금지법!’(부산), ‘평등은 뽀짝 차별은 쩌짝’(광주), ‘차별금지법 제정하기 좋은 저녁입니다!’(전주),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혀~’(천안)… 각 지역에서 내 건 행사의 제목만큼이나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야기는 다양했다. 각자가 성소수자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청소년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자신이 경험한 차별의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거리와 광장에 선 모두가 자신에게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넘어 입을 모아 외친 이야기가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차별과 무관한 사람은 없다’는 인식과 ‘그 어느 누구도 예외로 남겨둘 수 없다’는 다짐이었다.

물론 이는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감염병의 위기 속에서 가시적으로 등장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단순히 안전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차별적인 세상에서 살아왔는지 불평등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 계기이기도 했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를 위한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청년여성을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 여기 계신 기자들과 불안한 고용시장에 놓인 청년노동자를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광화문에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집회 참가자와 가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이 자리한 위치는 ‘소수자를 위한 법’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 여성, 청년 혹은 노년층,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등과 같은 특정한 소수자들의 피해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조치로만 여겨질 때, 차별은 내 삶과 무관한 일로 여겨지기 쉽다. 특히 차별금지법이 보수개신교와 성소수자의 대립 혹은 갈등으로 치부되어온 시간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8월 24일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울려 퍼진 한 참가자의 발언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어느 정도까지의 법적 권리를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해왔던 지난 시간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이미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은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순천-여수-목포까지의 여정을 휠체어와 함께한 전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의 연대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일지 모른다. 재난참사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를 말하면서도 진상규명을 요구할 권리는 과도한 개입이라고, 세월호 피해자를 표적으로 한 차별과 혐오는 어쩔 수 없다고 방치하는 이들에게 평등버스가 안산까지 찾아간 이유는 가늠하기 어려울 테다.

 

하지만 평등버스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계속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존엄한 존재라는 가치가 부정되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할 수 없다고. 누군가에게 자격을 따지며 차등적인 지위를 배분하는 사회구조 속에서는 그 누구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말이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추상적인 구호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평등버스가 가득 실린 이유다.

서로의 동료가 되고자 하는 시민들의 평등역량을 높이는 길

2주 동안의 평등버스 여정을 다 읊자면 밤을 지새워도 모자라지만, 그래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2011년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는 ‘희망버스’로 부산을 찾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2020년이 되어 다시 ‘평등버스’로 부산에 도착해 <평등버스의 이번 정류장은 ‘김진숙 복직’입니다>라는 이름으로 김진숙 동지, 한진 지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나는 다시 복직 투쟁을 시작하는 김지도에게 연대와 지지의 마음을 보내고 싶은 한편, 긴 시간동안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싸움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대단한’ 이의 단단한 응원과 격려를 기대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무지개 버스로 부산을 찾았던 ‘소수자들’을 기억하는 그가 건넨 이야기는 차별과 폭력의 구조에서 피해자를 경멸했던 김진숙 자신의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공장에서 관리자들에게, 기숙사에서 동료 남성 노동자들에게 성희롱과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을 향해 ‘왜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 일을 당하느냐’고 몰아세웠던 과거의 자신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하지만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자신에게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더 ‘센’ 사람이 되고자 했고, 그러한 차별이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전날 부산 서면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문화제에서 만난 풍산마이트로텍지회 해고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10년 동안 장기 해고 투쟁을 계속하며 마주한 자본과 국가의 폭력, 차별을 동력삼아 노동자를 가르는 거대한 힘에 대해 준비해온 발언을 마친 후 그는 고백하듯이 말했다. 사실 자신도 ‘꼰대 중년 남성 노동자’였고 지금도 그렇다고.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투쟁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이 깨지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는 차별 없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바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라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우리 사회 앞에 놓인 시험대라는 말로 발언을 마쳤다.

 

ⓒ 정영식 작가

내 머릿속에 두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이 누구나 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으니 자기반성하고 성찰하자는 제안을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차별은 나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선명한 선언의 자리에 자신의 특권적인 위치가 어떠한 차별의 구조 속에서 가능했는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서로의 권리를 보증하고 지지하는 동료가 될 수 있을지를 말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거라는 차별적인 인식,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타인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인식하거나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누구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사회적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차별이 무엇인지, 차별받은 피해자는 어떻게 다시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지, 왜 나는 그 곁에 서고자 하는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평등버스를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한국사회의 모든 차별이 사라지는 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차별로서 이야기를 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관계,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이유는 차별금지법이 우리 평등할 권리를 제도가 온전히 보장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그러한 사회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차별이 무엇인지를 서로에게 확인시켜주는, 구조적 차별에 함께 맞설 수 있는 동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나중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차별에 맞설 수 있게 하는 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이다. 차제연이 차별금지법에 꼭 포함되어야 할 3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에 대해 정해진 답이 없는 것도 아니다. 차별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와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과 함께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와 효과적인 예방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을 증진할 책임은 국가와 지자체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정책의 근거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매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을 이유로 접수되는 진정이 2천 건이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차별 조건에 놓인 개개인들의 삶에 미칠 영향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다음 이야기를 통해 차별의 피해자가 무엇을 얻게 될지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25개 도시를 찾아갈 예정이었던 평등버스 지도에 갑작스럽게 한 지역이 추가되었다. 바로 성소수자에 대한 적극적인 혐오선동에 앞장서고 있는 보수개신교 단체와 함께 ‘포괄적 차별금지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국회 토론회를 공동주최하기로 한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의 지역구, 여수다. 그리고 여수에 살고 있는 한 성소수자가 평등버스가 출발하기 전 버스에 함께 싣고 갈 사연신청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민주당은 국민전체를 보호해야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다는 이야기는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국민 전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김회재 의원님이 말한 국민 전체에는 저라는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여수에는 저 말고도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 수많은 혐오와 차별을 마주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차별을 견디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김회재 의원님은 이 사람들이 겪고 차별이 당연하고, 차별받아 마땅하다고 이야기한 겁니다.”

차별의 이유를 ‘차별당할 만한 이유가 있는’ 당사자의 문제로 귀결시키는 사회에서 피해자가 자신을 탓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내가 이성애자였다면, 장애가 없었더라면,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좀 더 날씬했더라면, 학벌이 좋았더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와 같은 자신을 탓하거나 차별을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체념하기 쉽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생긴다고 해서 이런 토론회를 금지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에서 ‘성적 지향’이라는 차별금지사유는 성소수자의 차별 경험이 자신의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제와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이성애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정상’으로 여겨왔던 역사적 차별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준다.

차별금지법이 평등할 권리에서 배제되고 밀려난 사람들에게 차별을 호명하고 낙인을 거부할 수 있는 도구될 수 있기를, 그래서 자신을 탓하지 않고 외롭지 않은 싸움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 결과로 일상의 풍경이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한국사회가 평등으로 나아가는 출발

‘평등버스가 전체 여정의 전환점을 돌았을 무렵 서울에서는 ‘차별금지법, 노동자에게 왜 필요한가?’ 토론회가 열렸다. 황미진 KEC 지회장은 중요한 일을 한다고 여겨지는 남성 동료 노동자와 다르게 단순 작업자로 취급받으면서 교육훈련과 승급․승진 등 어떤 성장의 기회도 얻지 못한 KEC 여성노동자들의 차별 경험을 전해주었다. 아직 재판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말에 차별의 장벽이 얼마나 강고한지를 실감하면서도, 차별받는 건 내가 잘못해서라고 생각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미워했지만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되어 기쁘다는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내가 서울에서 토론회에 참여하는 동안 평등버스 기획단 동료들은 전주에서 기자회견과 문화제를 진행하며 혐오선동세력을 마주해야 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와 에이즈가 창궐한다고 주장해온 오랜 보수개신교 세력이다. 하지만 평등버스 참가자, 전주 지역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외쳤다. ‘우리에게는 감염인 동료가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우리에게는 트랜스젠더 동료가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안이 보수개신교와 재계의 반발로 인해 7개의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되고 ‘차별조장법’이 되었을 때, 광범위한 비판과 항의를 이어가며 조직되었던 성소수자 대중은 여전히 차별금지법의 전선에 서 있다. 그리고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7년으로부터 13년이 훌쩍 지난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맨 앞에 성소수자만 서 있지 않다. 평등버스가 싣고 돌아온 것은 코로나19로 ‘국민’의 경계를 문제제기한 이주민과 난민, 성차별․연령차별․고용차별을 분리하고 싶어하는 사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여성들, 감염인과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하는 사람들, 인간의 등급을 나누고 권리를 쪼개는 것이 일상화된 노동시장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평등버스를 통해 더 크게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칠 수 있게 된 지금, 나 역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되어 기쁘다.
9월 1일 21대 정기국회가 개원했다. 우리는 조용히 하면서 기다릴 것을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나중에’로부터 떨어져나와, 내가 다른 사람의 존재와 관계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다고 느끼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누군가의 권리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시도에 맞서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권리를 지킬 수는 없다는 사회적 합의를 차별금지법를 통해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을 가리키며 차별과 혐오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주장하고 평등의 물결로 국회 담장을 넘겠다.

ⓒ 오늘의나

이 글은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