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으로 인한 산사태, 침수, 온열질환 등으로 벌써 60여 명이 사망했다. 2020년에도 50일 이상 이어진 폭우로 60여 명이 사망했고, 지난해에는 수도권 집중호우로 반지하 거주 일가족이 사망하는 등 매년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이제 누구나 ‘전례 없는 이상기후’의 원인으로 ‘기후위기’를 꼽는다. 하지만 재난의 근본 원인인 기후위기 대응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재난대응시스템’의 작동불능이 재난을 참사로 만들고 있다.
폭염과 폭우는 천재지변이 아닌 기후재난
지금 전세계는 혹독한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는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신음하고 있고, 대규모 산불이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지에서 발생했다. 미국은 동부지역에서 갑작스런 폭우로 홍수피해가 발생하고, 남서부 지역에서는 40~50도에 이르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한국처럼 폭우와 폭염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번 폭우가 갑작스러운 천재지변 또는 불운이 아니라,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기후재난이라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명백하다.
윤석열 대통령조차 7월 18일 국무회의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전세계의 천재지변’을 길게 읊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번 폭우는 여전히 ‘천재지변’일 뿐이었다. 천재지변이니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버리고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했지만, 바로 그 천재지변을 만들어낸 온실가스 대량 배출과 생태파괴 개발사업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지난 4월, 정부는 ‘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2030년까지 산업계가 감축해야 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810만 톤을 면제해주고, 해당 배출량을 방법도 불분명한 해외감축으로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30%까지 늘리겠다던 재생에너지 비중은 21%로 줄었고, 핵발전은 그만큼 늘었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관심 없는 정부에게 기후변화는 여전히 천재지변과 같은 말일 뿐이다.
한편 이번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의 경우, 산사태가 산 정상부까지 이어진 양수발전소의 도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지개간과 개발, 산비탈에 들어선 태양광 시설물들도 경북 곳곳에서 발생한 산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짚어지고 있다. 온갖 개발사업에 시달리는 산지들이 모두 산사태 취약지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 설치, 리조트 개발을 비롯해 최근에는 값싼 땅을 찾아 산으로 올라가는 태양광, 풍력발전 시설들까지, 무분별한 개발사업들이 기후재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재난은 어떻게 참사로 이어졌나
14명이 희생된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기후재난에 사회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때 어떤 결과에 직면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지하차도 침수는 바로 옆 미호강 범람 때문이었다. 범람이 일어난 미호천교 인근은 강폭이 350m로 상류보다 좁아서 범람 우려가 높은 곳이었고, 2017년부터 강폭을 610m로 넓히는 공사가 진행되다가 교량 건설에 따라 공사가 중단됐다. 그런데 교량은 강폭을 넓힐 것을 전제로 기준보다 0.3m 낮게 시공되었고, 그에 따라 제방도 0.8m 낮게 쌓았다. 공사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결국 기록적인 폭우로 미호강은 제방을 넘어 범람했다. 잘못된 치수대책과 기록적인 폭우가 범람을 불러왔지만, 지하차도 통제와 같은 현장대응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면 참사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7월 28일 국무조정실은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 감찰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호우경보와 홍수경보가 발령된 비상상황에서 여러 차례 신고가 있었음에도, 다수 기관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발생한 참사로 이번 사건을 규정했다. 5개 기관 36명에 대해 수사의뢰를 하고 63명은 해당기관에 징계조치를 요청했다. 바로 지난해 이태원 참사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이다.
아무리 예방대책을 잘 세우더라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다. 중요한 것은 발생한 사고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이다. 오송 참사에서 사고 발생에 대한 경고와 신고가 반복적으로 발신되었지만, 재난대응체계는 이에 따라 작동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1조 원을 넘게 투입해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음에도 말이다. 또한 강화된 재난안전법에 따라 여러 기관을 가로질러 신속대응권한을 발동할 수 있는 긴급구조통제단이 사고 당일 청주서부소방서장을 단장으로 가동됐지만 지하차도 통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고 관리와 관련된 여러 매뉴얼들이 만들어지고 대응시스템이 구축되어 왔지만 재난참사와 책임회피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을 제외한 공무원 36명에 대해 수사의뢰를 했다. 참사의 원인을 ‘현장 대응 부재’로 특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례 없는 이상기후에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며 ‘디지털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출 것을 지시했다. 기존 재난대응체계는 그대로 둔 채, 또 다른 시스템이 덧붙는다. 재정은 계속 투입되지만, 이는 정부의 재난대응체계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 채 재난안전산업만 키우고 있다. 현장 공무원에 대한 엄벌이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차량통제 부재로 3명이 사망한 2020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참사도 관련 공무원 11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야당이 주장하듯 도지사와 시장이 책임지고 사퇴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정쟁으로 소비되는 ‘사과와 사퇴’가 아닌, 기후위기 시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의 운동’이 필요하다.
기후재난 속에서도 존엄하고 평등한 사회공동체를 향하여
벌써 몇 년째 반복되는 여름 폭우가 일회적인 현상이 아닌, 앞으로 지속될 기후위기의 결과라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기후위기 시대에 폭우, 폭염, 가뭄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보다, 그 재난을 겪는 한국 사회가 이 위기에 함께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똑같은 조치들이 반복된다. 관련 공무원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재난피해 주민 아닌 지자체에만 돈이 쏟아지는 ‘특별재난구역’이 반복적으로 선포되고,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복구에 힘쓰겠다며 재난대응시스템을 개선할 것을 약속한다.
정부의 이러한 반복된 대응이 어떤 기대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광범위한 집단적 경험 때문이다. 비단 정부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의 보호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 일터에서 매일 경험하는 것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결코 회사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작업중지권이나 노동자의 단결권 보장을 통해 이를 북돋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부처가 경제부처처럼 일하라는 윤석열 정부처럼 역대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기업의 이윤과 경제성장률이었다. 국토교통부는 국토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면서 끊임없이 개발사업을 벌이고, 재난대응의 최일선에 있어야 할 지자체는 앞다퉈 개발사업을 유치하고 벌였다. 이런 사회시스템 속에서 재난참사는 발생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발생하면 난감한 일이 될 뿐이다.
기후위기 시대, 재난의 사전예방은 온실가스 대규모 감축을 비롯한 근본적인 사회시스템의 구조변화여야 한다. 지금처럼 국토부, 산업부가 개발사업에 앞장서는 정부와는 달라야 한다. 또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인 사회에서 재난대응은 지금과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일선 공무원들이 이행하기 어려운 온갖 매뉴얼과 지침들만 넘쳐난다. 재난 이후의 대응도 재난지원금을 넘어 사회가 함께 재난을 겪고 있다는, 재난 피해자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원칙과 방향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사회의 근본적인 재난대응은 알량한 정무적 책임과 언사들, 몇 가지 법제도 개선, 처벌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현장 공무원 엄벌과 재난대응시스템 구축만 반복하는 정부에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내맡길 수 없다. 이제 우리는 함께 살아남고, 살아가기 위한 투쟁, 기후재난 속에서도 존엄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