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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레이디 크레딧』을 읽고 무릎을 '탁' 칩니다

 

“와, 탁월하다.”

지난 7월 15일 사랑방에서는 책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책 모임의 취지가 짬 내서 함께 공부를 해보자는 것인 만큼 짧은 책을 읽자는 말도 오갔는데요, 매년 사랑방에서 진행하는 ‘반성폭력교육’을 준비하며 반성매매 운동의 쟁점을 공부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7월 책 모임의 책은 『레이디 크레딧: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이하 ‘레이디 크레딧’)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무려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동료들에게 원망을 살 것 같았는데, 1장을 읽고 바로 알게 되었죠. 이 책은 탁월하다. 

『레이디 크레딧』은 저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사회에서 성매매가 꾸준히 존재해 온 이상, 자본주의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나의 산업으로써 성매매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해서 지금껏 성매매를 그저 구매자, 판매자, 알선자 등 행위자의 개별적 문제로 바라본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한 것이지요.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사회에서 탈락하는 과정에서 자의/타의를 구분할 수 없이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몸을 담보로 신용(크레딧)을 얻어 획득되는 ‘경제적 자유’는 결국 빚으로 작동하며 그 산업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정상’적인 조건의 삶과 과연 얼마나 다른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동시에 이 책은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피해자’ 혹은 ‘노동자’로 규정하려는 이분법의 구도를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한국의 기존 성매매 관련 법은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었습니다. 성매매 여성을 윤락의 맥락으로 위치시켜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으로 취급해 온 것이지요. 하지만 성매매 여성의 실제 현실은 윤락이 아니라 감금과 폭력 속에 놓여있었고, 이런 현실을 직시하라는 운동의 요구를 받아 「성매매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법적인 진전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여전히 성매매 여성에게 자신의 피해를 입증할 것을 요구하고, 입증하면 탈성매매를 지원하지만 아니라면 여전히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 반대하며 피해자성의 입증을 문제시하며 성매매 여성을 성산업의 노동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도 있고요. 하지만 『레이디 크레딧』에서는 성매매를 완전한 타의에 의해 벌어진 ‘피해’로 위치 지을 수도, 완전한 자의에 의한 ‘선택’으로 읽을 수도 없는 특성을 이해하며 자본주의적으로 존재하는 성매매 산업의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레이디 크레딧』의 탁월한 점은 성매매 종사자만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주변 풍경까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인데요. 강남 한복판에 빼곡하게 있는 유흥주점만이 아니라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엄청나게 많은 성형외과, 성매매 종사자들이 살아갈 집을 중개하는 부동산과 여성 전용 대출 상품을 홍보하는 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의 광고까지 말이죠. 성매매가 산업화되었다는 말은 그저 규모가 크다는 말이 아니라 성매매 산업의 풍경을 조성하고 있는 주변 영향을 받으며 공존하는 형태를 갖추었다는 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들이 나눠쓰는 돈은 소위 ‘자원 없는’ 성매매 여성들이 유일하게 벌어들이고 있지만요.

짧은 후기로 이 책의 좋은 점을 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책 한 권 읽고 호들갑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레이디 크레딧』을 읽고 겸손을 다시 배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사랑방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현안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이러저러한 입장을 고민하며 자본주의 구조를 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그런데 자본주의적 구조를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물으며 그 흐름을 따라가는 이 책을 보며 과연 나는 구조를 제대로 보고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을 다 읽은 뒤 활동가 출신의 연구자임을 뿌듯하게 여기는 저자의 서문을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활동가로서 구조를 보고 현안의 이면을 살피자는 말의 무게와 함께 겸손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정말 모두에게 권하고 싶어요. 저에겐 올해의 책이랍니다. 『레이디 크레딧』,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