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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성매매특별법 20년, 성착취 산업에 균열을 내기 위한 질문

파주 성매매 집결지 강제철거 소식을 접하며

2023년 1월, 파주시는 ‘성매매 집결지 정비 계획’을 발표하며 용주골에 대한 강제 폐쇄에 착수했다. 2024년 11월에는 4일간의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철거에 나섰고, 성매매 여성들은 파주시의 일방적인 강제철거를 규탄하며 저항했다. ‘집창촌의 단계적 폐쇄·정비’와 ‘집결지 자활지원 사업’의 근거가 되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된 현재도 ‘집결지’라는 오랜 성착취 산업현장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성매매특별법이 제대로 작동해왔는지 돌아보게 한다. 집결지 폐쇄를 비롯한 나름의 시도들이 성매매특별법에 따라 이어지고 있지만, 이게 성산업의 축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곳곳에 즐비한 유흥업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성을 상품으로 거래하며 이윤을 쌓는 성착취 산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견고히 작동하고 있다. 여성의 몸이 돈벌이 수단이 되는 사회에서 성매매는 여성의 생계수단이 된다. 용주골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집결지 폐쇄에 저항하는 것은 성매매가 생계를 이어가는 일자리가 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여성에 대한 성착취 산업이 여성에게 생존권으로 작동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풀어내기 위한 질문과 실천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개인을 처벌하면 성매매가 근절될 거라는 환상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성매매를 규제했던 ‘윤락행위등방지법’은 성매매 문제를 건전한 성풍속을 해치는 개별 남성과 여성의 ‘일탈’ 문제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 모두 처벌의 대상이 되었지만, 남성의 성구매를 ‘일반적’인,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에서 성매매는 자연스럽게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의 문제로 귀결됐다. 애당초 “윤락행위”에 대한 규정부터가 ‘불특정인으로부터 금전 기타 재산상의 이익 또는 기타 영리의 목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것’, 즉 성을 파는 행위로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규정이었다.  

2000년대 초반, 군산의 성매매 집결지들에 화재가 나며 그 곳에 감금된 성매매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들로 여성을 감금하는 ‘포주’라는 행위자가 드러났고, 여성들이 감금되어 성매매를 강요당했던 이유가 포주에게 진 ‘부채’ 때문이라는 게 드러났다. 이는 성매매 산업 행위자들과 성매매 경제 문제를 불법화하는 운동으로 이어지며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성매매의 ‘공급과 매개(알선)’에 동참한 이를 처벌 대상에 추가하고, ‘성매매 영업알선 범죄로 인하여 얻은 재산을 몰수·추징’하는 규정을 신설한 건 남성의 성구매를 촉진하면서 여성을 경제적 요인으로 유인하는 ‘알선의 구조’를 타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성매매특별법은 여전히 성판매 여성과 성구매 남성 개인을 단속하는 데 중점을 두며 문제를 개인화하고 있다. 성매매 문제가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며, 개인을 처벌하면 성매매가 근절될 거라는 게으른 믿음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동안 성매매를 양산하고 유지해온 구조는 은폐된 채, 더욱 강고해졌고 다양화되었다. 업주가 성매매 여성을 부채에 속박하는 수단이었던 ‘선불금’은 여성에게 직접 주어지는 게 아니라 금융기관이나 사채업자 등을 통해 ‘담보’로 지불되었다. 여성들을 집결지에 모아놓는 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알선’은 더욱 은밀하고 광범위하게 확장되었고 성매매 장소는 오피스텔 등으로 분산되었다. 성매매특별법과 법집행기관인 검경은 이러한 변화를 추적하며 성산업 구조에 타격을 주기는커녕 이를 방기하고 있다. 

 

성착취 산업이 여성에게 생계수단이 되는 ‘사회’가 문제다

성매매 산업은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통제, 지배하는 게 ‘유흥’으로 작동하는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국가는 성매매를 불법화하면서도 룸살롱, 단란주점, 성인노래방 등의 유흥업소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적 노동과 서비스는 합법의 영역으로 남겼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남성을 즐겁게 하는 게 여성의 자연스러운 성역할이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멸시하는 건 남성들의 ‘놀이’와 ‘비즈니스’라는 오랜 성차별적 실천의 결과다. 유흥산업은 남성이 지불한만큼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산업 논리가 이러한 남성문화와 결합한 것이다. 이처럼 ‘유흥산업’이 합법적이고 일반화된 구조에서 성매매 산업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들을 ‘집결’시키며 팽창하고 있다. 유흥업소 이후 ‘2차’가 이루어지는 수많은 현장은 물론이고,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알선’은 조건만남, 오피스텔 성매매의 형태로 확장된다. 이제는 ‘벗방, 여성 BJ’와 같이 온라인 자체가 ‘디지털 성매매’의 장소가 되고 있다.   

이렇듯 남성의 성적 욕망과 지불 방식에 따라 다양한 성매매 서비스를 개발한 것은 성매매 남성과 여성이 아닌 거대한 ‘성착취 산업’이다. 성착취 산업은 금융업, 임대업, 숙박업, 미용성형업 등 여타 산업들과의 상호부조 속에서 ‘거대 산업’으로 자라왔다. 성매매 산업은 기본적으로 지하경제라는 점에서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그 규모는 30~37조 원으로 추산된다.(2016년 기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같은 시기 편의점 시장의 매출 규모가 20조 원 가량이었음을 고려하면, 성착취 산업이 그저 소규모 지하경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만큼 일반화된 거대 산업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확인된다. 

특히 성착취 산업은 금융 자본과 결합하며 대부업체, 은행 등을 통해 ‘합법 경제’의 장에서 본격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은행과 신용카드사는 ‘마이킹 대출(유흥업소 종사자 특화 대출)’을 내놓았고, 유흥업소는 종사자 여성들의 ‘성매매’를 담보로 은행자금을 조달하면서 더 많은 여성들을 끌어모으며 몸집을 불렸다. 그 밖에도 여성의 몸 ‘사이즈’를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성형대출, 당장 거처할 방을 내주고 매일 임대료를 갚게 하는 ‘방 일수대출’이 ‘여성의 성매매’를 담보로 제공된다.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빌린 성매매 여성들이 돈을 갚기 위해 성매매에 종사하는 이러한 구조에서 성착취 산업은 ‘아가씨 장사’에 이어 ‘이자 장사’까지 하는 금융업과 ‘동반성장’했다.  

여성의 몸을 ‘구매’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여성의 몸을 통해 엄청난 이윤을 쌓는 사회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판매’할 수 있는 사회, 몸을 팔아 삶을 이어가며 착취당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여성에게 성매매가 생계수단으로 손쉽게 제시되는 사회, 성착취를 통한 이윤축적이 ‘자연스러운’ 사회에 책임을 묻는 것에서 성착취 산업의 축소와 근절을 향한 실천이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성착취 산업에 균열을 내는 대안을 ‘함께’ 찾기 위해

파주 용주골 이전부터 성매매 집결지는 하나 둘 사라지는 추세였다. 2002년에 69곳이었던 성매매 집결지는 대부분 사라졌고, 용주골은 사실상 수도권에 위치한 마지막 집결지로 파악된다. 그동안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해당 도심 부지를 노린 ‘부동산 재개발 산업’의 팽창을 동력으로 이루어져왔다.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재개발 과정의 주거와 상가철거 문제와는 달리, 성매매 종사자들의 삶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성매매 여성은 하루 아침에 일터도 집도 철거 당하는 상황에 내몰리지만, 당장 사라져야 할 불법적인 집결지였기에 사회로부터 외면당한채 철거당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성매매 산업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팽창했다.  

파주시는 용주골 성매매 여성들에게 <파주시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를 최선이자 최후의 해결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례가 시행된 지 일년 반이 지난 지금, 200여 명의 성매매 종사자 중 자활 지원 신청자는 12명에 그친다. 자활 지원금이 월 100만 원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성매매 여성들에게 자활 지원금이 대체 생계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공고한 사회에서 지역의 다른 일자리로의 전환 또한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3년의 유예기간을 달라”며 강제 폐쇄를 반대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성매매가 여성들의 주요한 생계수단 중 하나로 작동하는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삶에 대한 대안을 사회적으로 ‘함께’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를 무시한 채 철거만 강행하는 파주시의 대책은 사회가 만들어낸 문제를 성매매 여성들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일 뿐이다.

집결지 폐쇄가 ‘성매매 근절’로 이어지기 위해선, 성착취 산업이 여성들의 생존권이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앞서 살펴봤듯 그 시작점에는 성구매를 통해 여성을 성적으로 지배 통제하려는 남성의 유흥문화 속에서 여성을 성상품으로 만들어 ‘고용’하며 돈벌이를 하는 성착취 산업의 거대한 팽창이 있다. 이러한 구조가 ‘성매매 문제’의 핵심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면, 파주시의 역할이 일방적인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일 순 없다. ‘탈성매매’를 향한 대안을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만들어야 하며, 성매매가 여성에게 ‘익숙한’ 생계수단이 되는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분명한 건 견고한 성착취 산업에 균열을 내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과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여성의 위치에서 남성 유흥 문화의 뿌리를 뽑고 성평등한 문화를 구축하는 여러 노력들을 상상하는 일이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