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내 말 좀 들어봐

[내 말 좀 들어봐] “아, 이제 그만 좀 해요!”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거부합니다

아, 이제 그만 좀 합시다! 엄마 손잡고 유치원 다닐 적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어 각종 행사에서까지……. 정말 지긋지긋하게 들었어요. 언제는 나라에 대해, 민족에 대해, 애국에 대해 생각해 볼 틈이나 줬나요? 그냥 선생님께서 소리 지르니까,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와 있으니까, 또 그게 매번 반복되니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외웠죠.

머리 좀 크고 나서는, 경례와 맹세 내용에서 요구하는 게 완전 70년대 유신정권이다 싶으면서도, 그냥 ‘그까이 거, 재학 중에 몇 번 더 해주고 말자’는 심정이었어요. 근데 뭐, 법제화라구요? 이건 좀 아니죠~!!

특별히 어떤 종교적인 이유도 국가에 대한 반감도 없습니다만,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무~지하게 불쾌하네요. 저는 다짐의 내용처럼 ‘몸과 마음을 바치면서’까지 조국에 충성할 생각도 없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제가 가진 권리와 자유를 훨씬 웃도는 상위개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사람 나고 나라 났지, 나라 나고 사람 났나요? 매번 일어나 똑같은 포즈 취하는 것도, 가슴에 손 얹고 마음에도 없는 다짐 운운 하는 것도 싫어요. 나라를 사랑하고 안 사랑하고는 제가 결정할 문제잖아요? 왜 민주국가에서 태어나서 애국심을 강요받아야 합니까?

네~네, 물론 나라가 있어야 민주도 있죠. 근데 경례 안하면 나라가 망해요? 맹세 안하면 나라가 망하냐구요? 애국이고 충성이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거지, 사람 붙잡고 경례와 맹세를 시킨다고 생깁니까? 태극기 제대로 그리고 애국가 4절까지 안 틀리고 부르면 애국지사인가요? 강제되고 의무화된 충성과 애국이 얼마나 가치 있다고 생각하세요?

대한'민국' 행정자치부 여러분~ 법제화 철회해 주시길 바랍니다~!

[끄덕끄덕 맞장구]

온 나라 사람들이 거의 알고 있는 ‘국민 목소리’가 있죠? 바로 ‘국기에 대한 맹세’가 낭송될 때 흘러나오는, 그 굵직한 아저씨 목소리! 초등학교, 아니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애국조회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손 얹고 국기를 바라보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도록 주구장창 교육받아 왔으니까요.

전 국민의 무의식과 일상을 장악해온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 전국 학교로 맹세가 강요되기 시작한 게 1972년이었다죠? 그런데 이 의식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불과 몇 해 전이었어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일제시대 천황에게 충성 맹세를 강요했던 황국신민서사와 무엇이 다른가, “애국 애국” 하면서 국기 맹세를 강요해 온 박정희 정권이 결국 민주와 자유의 숨통을 죄이지 않았나, 왜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해준 방식대로 충성 주문을 되뇌어야 하는가, 정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할까, 국가와 국가의 상징인 국기에 대해서도 비판할 자유가 사상·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로서 보장되어야 하지 않는가…뭐, 이런 불온한(?) 생각들을 사람들이 가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 행정자치부에서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을 제정하면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아예 법제화한다고 해서 난리가 났네요. 그러면서 올 1월 제정된 국기법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가 포함돼 국민됨의 의무로 강요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지요. 이제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에 대해 “안녕”이라고 말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지난 11일 인권사회단체들이 행정자치부 앞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어요. <사진; 다산인권센터 박김형준>

▲ 지난 11일 인권사회단체들이 행정자치부 앞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어요. <사진; 다산인권센터 박김형준>


그래서 지난 11일 90여 개 인권사회단체들이 모여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청소년들의 거부 선언! ‘예부터 애국을 강요하신 분들 중에 평화세상 만든 이 없었더라’는 청소년들의 통찰이 정말 놀라웠는데요. 이 글을 써 준 희영도 그 선언에 참가했었지요. 애국조회 시간, 그 강요된 의식을 거부하는 청소년들이 하나둘씩 국기를 등지고 돌아서는 장면을 기대해봅니다. 그런 불복종이 다른 교육과 세상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배경내]

<함께 읽기>

청소년이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모두 일어섯! 국기에 대해~~ 경례~엣!”

보통 이 사회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교육 받고 자란 사람치고 저 말을 들었을 때 아무 장면도 연상되지 않는 사람 없으리라. 그게 지금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이든, 다녔지만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든. 어쨌든 초등학교는 의무였으며 신성한 의무교육의 초등교육에는 ‘애국심’이라는 교과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반복, 세뇌하는 과목을 배웠으리니…….

학교를 그냥 다녔던 청소년들이라면 12년간 받아온 반복학습에 의해 애국가만 나오면 자동으로 손은 가슴에, 눈은 국기로, 눈가엔 눈물 그렁그렁, 마음은 ‘쓸데없이 이런 거 왜하나?’ 라는 생각. 그렇다고 안 하자니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함부로 거부하진 못하고서, 전원이 매스게임 하듯 동시동작 착착! 잘도 맞는다.

이번에 시행령인가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집어넣는다고 한다. 청소년이 아닌 사람이 듣기에도 징글맞은 소리이겠지만, 청소년들에게는 더 징글맞게 들린다. 이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애국’을 부려먹기 편하다는 이유로 강요하고, 그들의 말에 따라 더 강도 높은 ‘애국’을 해봐야 자신의 인간성을 강도 같은 국가에 뺏긴다는 걸 잘 아니까.

‘애국’은 내신에도 들어가지 않는 종목이니까 그냥 거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천만의 소리!
‘애국자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이유로 거부하거나, 거부까진 아니더라도 애국을 조금 생각해보고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청소년을 ‘전형적’인 교사들은 이렇게 부른다. “이런 비국민새끼!”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보면 그 기억 좀 더듬어 다시 생각해보라. 국기에 대한 경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는가? 뜻 해석하면 결국 “이런 비국민”이지.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든다는 데 동의하고 이번 행정자치부의 멍청한 시행령 통과에 반대하는 청소년 102명을 대표해 두 명의 청소년이 선언문을 발표했어요. <사진; 다산인권센터 박김형준>

▲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든다는 데 동의하고 이번 행정자치부의 멍청한 시행령 통과에 반대하는 청소년 102명을 대표해 두 명의 청소년이 선언문을 발표했어요. <사진; 다산인권센터 박김형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일제의 잔재라느니 그런 소리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일본에서 하면 어떻고, 한국에서 하면 어때? 일본에서 살았다느니, 한국에서 살았다느니 하는 걸 따지지 않고 서로 친구하면서 싸우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서로 필요한 걸 나누면서 살아가는 걸 바라는 사람에겐 “너는 한국민족이고, 너는 일본민족이니까 너넨 태어날 때부터 서로 경쟁해야 하는 운명인 거고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총칼 겨누고 싸워야 해. 게다가 이기기 위해선 한국민족은 한국민족끼리 뭉쳐야 하고, 일본민족은 일본민족끼리 뭉쳐야 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의 명령 따윈 필요 없다 이거다.

‘히틀러’, ‘히로히토’, ‘무솔리니’, ‘박정희’, 예로부터 애국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셨던 분들치고 평화로운 세상 만드신 분 없었더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더 많은 희생을 하고, 더 많은 생산을 해야 하는 도구로 취급했던 분들은 언제나 ‘애국’을 강요하셨다. 그렇게 사람들이 피땀 흘리면서 고생한 다음 이뤄낸 생산량 증가 등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위대한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건 좋은데, 이제 충분히 겪었으니 더 이상 ‘애국’이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실험할 필요는 없다고 전한다. 젠장.

나는 청소년이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것이라곤, 얄딱꾸리한 로또번호같은 이상한 일련번호로 나를 관리하고 사람들끼리 경쟁시키는 것 정도. 도대체, 나는 사람이란 말인가? 소모품이란 말인가?

다시 한 번 ‘청소년’으로서 말하자면 ‘정말 애국이 좋은 거라면 왜 강제하는지 모르겠다’ 라는 식의 소극적인 질문을 넘어서, ‘역사 좀 보고 깨닫자. 인간을 인간이 아니라 소모품으로 보고 희생시키는 사회는 인간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가 된다. 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야!’ 라고 소리친다. 안 그래도 이 사회에서 이것저것으로 청소년들 괴롭히는 거 많아 싸울 거 많은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짓보다는 인간이 애국자이기 이전에 인간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부터 먼저 생각해봐.


2007년 6월 11일
국기에 대한 맹세가 전국 학교를 장악한 지 35년!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든다는 데 동의하고
이번 행정자치부의 멍청한 시행령 통과에 반대하는 청소년 102명
덧붙임

희영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 중인 청소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