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광고 사진에는 한 여성이 자고 있다. 얼핏 보면 편안한 잠자리 같지만 주변과 바닥에 깔린 널판지는 노숙인의 잠자리이다. “집에 있어도 아내는 외로운 노숙자” 라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구와 함께 통신회사에서는 이 여성의 수다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여성들의 우울증이 많다는 통계를 들먹이며 더 싼 요금제를 이용해서 수다를 응원하자고 한다. 정말 이들이 외롭고 우울해 하는 아내들을 걱정하는 걸까?
허구화된 것이지만 전통적인 것처럼 강요되는 가사노동은 여성의 할 일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되고 평가되어야 하지만, 힘든 남성의 바깥일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전문이지 않고 하찮은 일로 치부되어 왔다. 결혼이후에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직업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 광고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가사노동을 하는 가정주부로써의 역할로만 한정된다. 그리고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의 정체성을 홀로 남겨져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하는(독립적이지 못한) 불쌍한 존재로 추락시키고, 가사노동도 동시에 비하된다. 대한민국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남성(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남성이 ‘진정’ 특별히 힘든 것인가?)이 이런 여성들을 보살펴줘야 하다고 말한다.
수다가 아내의 우울증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우울증을 호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에서 ‘진정’ 힘들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 아닐까. 집안일과 육아를 착실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편 내조를 현명하게 할 줄 알며,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 맞벌이도 필수다. 직장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아닌 듯 일해야 하고 지성과 미모를 두루 갖추어야 한다. 돈은 벌어야 하지만 남편보다 조금 벌어야 하고, 남편이 퇴근하셨을 때 직장여성이 아닌 듯 살림에 부지런해야 아내다운 모습이다. 남들 앞에서는 조신하지만 잠자리에서만큼은 능숙해야 하며, 자식 앞에서는 모성본능이 번뜩여야 한다. 이런 사람을 아줌마로 묶어서 부른다지 아마...
마지막으로 이 광고는 아내의 처지를 노숙인에 빗대고 있다. 가정주부인 아내와 노숙인 사이에는 누군가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공통적인 편견이 있다. 광고 속의 아내는 남편에 기대어 살고, 노숙인도 세금 한 푼 안내면서 손 벌려 연명하는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존재이다. 또한 이들은 소통에서 배제된 존재이다. 물론 여기서의 소통은 공적인 소통이다. 가부장 질서에 미달되는 주변인인 이들은 하찮지만 사적 소통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소통의 부재에 외로워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소통의 권리가 아닌 싼 통화 요금제를 통해 시혜적으로 베풀어 줘야한다고 광고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