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 담장에는 ‘북한 불온 선전물 수거함’이 덩그러니 걸려 있다. 이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낯선 느낌마저 드는 이런 ‘반공’ 수거함을 보면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 ‘6.25’ 때마다 그려야 했던 반공 포스터, 목 놓아 ‘멸공’과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던 웅변대회, 노골적인 ‘이승복 어린이’ 교육 등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더 이상 ‘국민학교’가 아니라 ‘초등학교’인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반공·안보의식을 무의식 중에 ‘고취’시키는 정말 ‘불온’한 선전물들은 여전하다.
길을 가거나 운전을 하다보면 도로 곳곳에 지방경찰청에서 세워 놓은 반공·안보 표지판을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도로 안내표지판보다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안보 한뜻 대한민국 힘찬 내나라’, ‘민주위장 좌익세력 살펴보고 신고하자’...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에도 냉전의식과 북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안보지상주의는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각인될 수 있다. 전근대적으로 보여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여전히도 이렇게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전국민적인 반공·안보교육의 힘이란!
김대중 정부 이후 들어선 국가정보원은 안기부 시절처럼 “당신 주위에 지금도 암약하고 있는 양의 탈을 쓴 늑대를 돌아보라”는 막무가내식의 전술을 쓰지는 않는다. 대신 세련된 방식으로 “국가 안보는 국가 경쟁력”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도대체 누구의 경쟁력일지 모를 ‘안보’와 ‘발전’이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다.
국정원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이 내용은 사상·표현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체제조차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위 ‘민주화’되었다는 지금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하는 관용의 정신은 국가보안법 상의 안보라는 그늘 아래에 존재할 뿐이다.
국가가 내세우는 자본과 권력만을 유지하기 위한 ‘안보’는 권력도 없고 가지지도 못한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상태의 안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국가의 안보는 자신의 안정을 위해 불특정 다수를 ‘적’으로 만들고 지배당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들을 묵살한다. 국가의 안보는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