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투쟁이 시작되면서 인권운동은 이랜드 투쟁에 연대하고 비정규직 악법의 반인권성에 문제제기하는 활동을 펼쳤다. 노동권이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될 수 없으며, 다른 권리를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인권임은 분명하지만, 인권운동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권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7월 1일 이후로 인권운동이 한국사회에서 노동권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어떻게 진행해왔는지를 살펴보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며 앞으로의 방향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이랜드 투쟁에 함께 하다
비정규악법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폭로하며 진행된 이랜드 투쟁은 비정규악법에 맞서는 상징적인 투쟁이 되었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이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인권·사회운동이 노동권 투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자유주의 흐름에 따른 자본과 국가의 노동에 대한 공세가 10년 넘게 지속되면서 노동자의 권리는 계속 빼앗겨 왔고, 비정규악법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결정체였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투쟁을 통해 획득한 노동권이 모두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면서 인권운동도 노동권 침해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공감대 속에서 뉴코아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된 이후 인권운동은 상황마다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노동자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탄압에 저항하는 인권운동
매장 점거파업이 진행되고 있던 시기, 경찰의 폭력적인 연행이 점쳐지고 있었고, 이때 인권단체연석회의의 경찰인권감시팀은 연행 때와 경찰 조사 때 필요한 인권교육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저항하는 노동자가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국가폭력에 대항해서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지키는 지식을 습득하고 경찰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매장 점거파업이 계속되자 경찰은 매장을 전면 봉쇄하고 자본은 출입구를 용접하여 봉쇄하기에 이르는데, 이때 인권운동은 경찰 및 용역의 폭력과 용접봉쇄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경찰과 자본의 반인권적 행태를 알리고 문제제기하는 활동을 펼쳤다.
역사적으로 노동권은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단결된 투쟁을 통해서 획득된 것이다. 모든 권리들이 ‘권리를 향한 투쟁’을 통해서 쟁취된 것이기는 하지만, 특히나 노동권은 치열한 투쟁속에서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 나아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본과 국가의 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억압은 다른 어떤 억압보다 잔인한 형태를 띠었다. 전통적으로 인권운동은 이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활동을 해왔고, 전체 운동에서 인권운동에 요청되는 영역 역시 이 활동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었다.
노동권의 확장과 실현을 위한 인권운동
노동권 그 자체가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인권의 영역임을 인식하면 노동권을 획득하고 확장하는 직접적인 투쟁 역시 인권운동이 펼칠 활동이라는 사고의 확장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인권운동이 탄압에 맞서는 활동과 더불어서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직접적인 투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또한 파업권이 노동권의 핵심적인 권리형태임을 확인하는 활동을 펼쳤다. 서울 서부지법은 매장근처에서 선전물만 돌려도 조합에 1천만원, 조합원 개인당 1백만원을 부과하는 사측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국가기관의 환상적인 팀웍을 자랑했다. 인권운동은 실질적으로 파업권이 설자리가 없는 현실을 진단하며 ‘파업의 민·형사상 면책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현장에서 권리의식을 고취하는 다양한 인권활동
이랜드 노동자들의 2차 매장점거마저 경찰이 폭력적으로 짓밟자, 인권활동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실현을 주장하며 서울지방노동청을 점거하였다. 이는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자들의 이익이 아닌 인간의 존엄의 문제임을 선포함과 동시에 인권운동의 노동권투쟁이 현장으로 나아가겠다는 상징이었다. 또한, 이랜드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이랜드 자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악법의 문제이고 정부가 그 열쇠를 쥐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인권영화제는 찾아가는 영화제 ‘반딧불’의 경험을 살려 점거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매장을 찾아 투쟁하는 주체로 하여금 권리의식을 고취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영화라는 매체에 힘입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이랜드투쟁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정체성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런 취지에서 ‘여성노동권 쟁취를 위한 여성선언’이 진행되었다. 이는 온전히 인권운동이 펼친 활동은 아니었으나, 인권운동이 제기하고 다양한 활동영역이 연대하여 펼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2654명의 여성이 이 선언에 동참하여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여성들의 뜨거운 연대를 보여주었다.
권리주체인 노동자와 호흡하는 운동
7월 1일 이랜드투쟁이 시작됨과 동시에 인권활동가들은 매장점거투쟁과 매주 진행되는 매출타격투쟁에 결합했다. 투쟁현장이 도심에 있는 객관적 조건이 작용했다고는 하나, 그 전에는 흔히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는 이랜드 투쟁의 승리를 통하여 이랜드 노동자들의 권리실현과 나아가 비정규악법을 타격하여 전체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 실현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비정규직철폐 선전문화행동팀을 가동하여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점을 알리고 노동권 실현의 뜻을 모으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들은 그동안 인권운동이 노동운동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과거에 비추어보면 새로운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길을 묻다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국가폭력에 대응하는 인권운동의 활동은 국가의 계급적 속성을 폭로하는 의미가 있지만, 국가의 반인권적 행위를 막아내기에는 힘이 부친 것이 현실이다. 기자회견과 성명서 작성, 조사 및 실태보고서 작성을 통하여 국가의 반인권적 행위를 최대한 국민들에게 알려내면서 국가로 하여금 여론의 압박을 의식하게 만들어 그 행위를 억제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국가의 행위를 억제할만한 여론이 단시간의 기자회견이나 성명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적고, 법원의 가처분 신청 수용과 같은 사안은 일회적인 기자회견이나 성명으로는 해결되기 힘든 과제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또 다른 방법도 요구되는 것이다.
인권운동은 노동권을 옹호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했지만, 그 활동들이 인권운동의 이론 및 전략 하에 일관성 있게 꿰어지지 못했다. 단순히 ‘진행되는 싸움에 연대’하는 것으로는 인권운동이 노동권 실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기는 힘들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매장점거파업이라는 직접행동에서 인권운동 또한 현장과 직접 호흡하고 연대하는 운동을 전개했던 것은 노동권 실현을 모색하는 인권운동에 소중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권의 실현은 인권운동의 노력만으로 획득하기는 힘들다. 노동권 쟁취 투쟁의 기본적인 주체는 노동자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억압과 잠재적인 힘을 직시하고 단결하여 권리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때 노동자들이 노동권에 대한 권리의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인권운동이 함께 하는 것은 유의미한 활동이 될 것이다. 또한, 인권운동은 이러한 노동운동과의 연대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모색해야 하며, 인권운동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여전히 노동권은 인권운동의 과제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권은 노동운동의 몫이지 인권운동의 몫이 아니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권은 인간의 존엄과 뗄 수 없으며 다른 권리 실현에 필수적이다. 노동권은 근대 자본주의 시작과 더불어 끊임없이 요구되어온 권리이다. 인간의 존엄을 반복해서 공격하는 자본주의 구조에 주목한다면 노동권 확보를 위해 전개하는 인권운동은 노동자의 계급적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노동권이 인권의 영역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논리와 활동양식을 구축하며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