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현장에서 이런 경찰의 통행권 침해는 비일비재하다. 경찰은 우월한 물리력과 병력을 바탕으로, 지하철역 등의 길목에서 집회에 참석하려는 시민의 앞을 막아서고 노상에 감금하거나, 심지어 여럿이 달려들어 힘으로 밀어내거나 끌어내거나 하기 일쑤이다. 이에 항의하거나 법적 근거를 물어도 보통은 전경 대열 뒤편 누군가의 “대꾸하지 마”라는 짤막한 명령과 함께 침묵이 이어지지만, 드물게 ‘범죄예방을 위한 경찰권 발동’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경찰은 이 '범죄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집회에 대한 원천봉쇄 등의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3월 10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를 금지한 경찰은 참가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상경하려는 농민들을 감금하거나 고속도로에서 막는 등 ‘상경저지’ 작전을 벌인 바 있으며, 당시 경찰청 경비국장은 이에 대해 라디오 인터뷰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 범죄의 예방과 제재에 관한 규정에 의한 조치”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범죄예방을 위한 경찰권 발동’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경찰관직무집행법(아래 경직법) 6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6조 (범죄의 예방과 제지) ①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하여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경찰관이 범죄의 예방을 위해 시민의 행동을 제지하려면, 먼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 하며, 그 행위가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 외의 경우에 함부로 시민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은 위법이며, 더 나아가 노상에 감금까지 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이다.
실제로 법원은 3월 10일 금지 통보된 집회에 참가하려던 농민을 원천봉쇄한 경찰의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청주지법 제천지원 2007고합13).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목전(目前)이라 함은 말 그대로 '눈앞에서'라는 명백·현존성의 의미인 바 (중략) 이른바 불법집회에 참가라는 범죄행위가 '목전'에서 행하여지려 하고 있다고 인정될 수는 없고 (중략) 금지통고가 된 집회에 참가하려고 준비하는 행위에 불과한 상경행위가 그 자체로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음은 물론, 서울집회가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집회가 교통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고 하여도 이로써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중략)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 데다가 경직법은 경찰관이 범죄예방을 위해 관계인에게 경고를 발하고 나아가 그 행위를 제지하기 위해서는 그 범죄행위의 명백·현존성과 중대·긴급성을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으므로 (중략) 집회참가자에 대하여 각 지역에서 출발을 제지하는 이른바 원천봉쇄라는 경찰관의 직무집행이 적법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즉 설령 경찰에 의해 금지 통보된 소위 '불법집회’라 해도, 이로 인해 인명·신체에 대한 위해나 재산상 중대한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경찰은 단순 통행은 물론 집회 참가 역시 제지할 수 없다. 이는 위법한 직무 수행이며, 시민이 이에 대해 저항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집회나 파업 현장에서, 경찰이 범죄 예방의 이유를 들어 자의적으로 통행이나 신체의 자유, 집회 참가의 자유를 제한할 경우,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저항하여 우리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