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독립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 원룸 촌을 돌아다녔다. 신림, 봉천을 갔다. 직장도 멀고 알르바이트 하는 곳에서도 거리가 있긴 하지만 싼 원룸들이 많다기에 알아보았다. 서울대 입구 역에서 내려서도 버스로 5-6정거장을 가야했고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도 15분 정도는 걷는 곳이었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곳인데 대부분이 원룸을 지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인과 만나서 방을 보았다. 방에는 책상과 장롱이 있고 딱 한명이 누울 자리가 있다. 잠버릇이 있다면 책상에 부딪히거나 벽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세면기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간다. 세면기와 붙어있는 양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벽에 닿을 판이다. 밥은 못해먹는다. 빨래는 공동으로 해결했다.
이와 같은 집을 그 날 저녁 세 집 보았다. 한명이 더 누울 수 있으면 월세가 40만원이 넘었고 그나마 지하면 35만원이었다. 생각한다. 100만원 조금 넘게 벌어서 월세 빼고, 세금 빼고, 핸드폰사용료 빼고, 교통비 빼면 저축을 할 수가 없었다. 평생 이 코딱지만 한 월세 방 신세를 못 면하게 되는 것이다. 취미생활은 엄두도 못 내고 큰 병에 걸리면…….집에 가는 내내 많이 울었다.
# 독립하기 2. 화장실 네 개 있는 집과 네 집이 한 개의 화장실을 쓰는 집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을 대상으로 1대 1로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강남, 서초 쪽에는 일이 많아 그 지역으로 1년 정도 했다. 반포 어느 아파트였다. 현관에 두 사람은 충분히 누울 수 있었고, 집 안에 복도가 있는, 방 안에 또 방이 있는 궁궐 같은 집이었다. 첫 수업을 마치고 현관을 찾지 못해 당황하며 나왔던 기억도 있다. 너무 신기해서 포털 부동산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90평짜리 집인데 매매가격이 30억이었다.
이 집에서 6살 아이와 수업을 했었다. 6살. 내가 6살 때는 신대방동 다세대 주택의 방 한 칸짜리에 4명의 식구가 살았다. 부엌은 방 옆에 있었지만 화장실을 네 가구가 같이 써야 했다. 아마도 나의 변비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똥이 마려워 화장실에 가면 아랫집 아주머니가 빨래하느라 나오지 않는 것이다. 혹은 아랫집 아저씨, 언니들이 볼 일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때문에 우리 집에는 내가 10살이 되던 3월까지 요강이 있었다.
그 땐 집이 좁아도, 화장실이 집 밖에 있어도 불편한지 몰랐는데, 지금에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야만 나의 꿈, 독립이 이루어진다니……. 울었다.
# 독립하기 3. 얄미운 집 주인
비슷한 시기 충정로 사무실에 들른 길에 근처 부동산에 가서 원룸이나 옥탑 방을 물었다. 옥탑 방은 있던 게 나갔고 신축건물 1층 원룸이 있단다. 신축건물이라는 말에 깨끗할 것 같아 당장 보자고 했다. 신축빌라 1층 주차장 경비실이었다. 경비원을 두지 않고 그 공간에 월세를 놓은 것이다. 한 쪽 창문은 열면 바로 주차된 차들이 보인다. 한쪽 창문은 열면 벽이 보인다. 1층이지만 빛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는 구조였다.
“좁지만 가격도 괜찮고 깨끗해서 좋은데요, 빛이 안 들어오네요.”
“요즘 빛 들어오고 그런 거 찾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젊은 사람이 생각을 바꿔야지~. 낮에는 일하고 해지고 나야 오는데~ 빛 들어오는 게 뭐……. 싸게 내놓은 거야. 25만원까지 해줄게. 이런 집 없어.”
이 날 이후 내가 아는 모든 지인들에게 이 부동산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중림동 사무실을 올라가는 갈 때마다 이 부동산을 째려보고 지나간다.
# 독립하기 4. 싸게 반지하라도 살까?
지난 추석 전날, 내가 사는 신월동에는 무서울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점심때부터 2시간 정도 내린 비가 어마어마했다. 장마 때 마다 지대가 낮은 우리 동네는 지하가 물에 잠기는 일이 빈번했다. 빗물펌프장 확대 이후로 잠잠했는데, 아주 오래 만에 지하가 잠겼다. 도로도 잠겼다. 무릎을 훨씬 넘었다. 동네 아저씨들은 감전될까 덜덜 떨면서 양수기를 설치해야했고, 동사무소로 가서 양수기를 더 달라고 해야 했다. 양수기는 이미 동났다. 나는 아빠에게 인터넷으로 글과 사진을 올리라는 지령을 받고, 구청, 시청, 소방방재청에 글과 사진을 마구 올렸다. 곧 대변 냄새가 난다. 온 동네에 풍긴다. 오후 5시 비가 그치면서 순식간에 물이 빠졌다. 우리 연립 앞 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동사무소로 대피했다. 엄마가 그 지하에 사는 새댁과 만났단다. 월세로 계속 살다가 한 달 전에 그 집을 샀는데 이 난리를 겪게 되었다. 물이 벽과 바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양변기가 역류해 집안에 똥이 동동 떠 다녔단다. 물난리는 그래도 참을만한데 똥 냄새 때문에 너무 힘들단다.
그 다음 날, 설날 아침 7시. 동사무소 공무원이 나를 찾는다. 전날의 상황이 자연재해였음을 절대 인재가 아니었음을 20여분 동안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리고는 구청 민원 글을 지워달라고 하셨다. 설날 아침 7시에…….
대통령님이 우리 동네 길 건너 화곡동에 납신다. 반지하 주택을 못 짓게 하겠다고? 물난리를 겪은 그 새댁은 위층에서는 전세로 2년마다 불안해하며 살아야 하지만 반지하로 내려오면 내 집에서 편안히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습하고 어둡지만 그 집을 매매한 것이다. 나도 1층과 반지하 10만원 월세 차이가 참 많은 고민하게 만들었다. 반지하라도 지대가 높아 지하가 아니라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얄미운 말씀이 믿고 싶었으니깐……. 곰팡이 자국이 보여도 말이지.
# 독립하기 5. 독립을 미루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 뚝 끊기면서 하락세를 보였다. 정부는 DTI 규제도 많이 완화하고, 취,등록세도 2%에서 1%로 낮추는 등 부동산 하락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보금자리주택도 연기했다. 덕분에 전세 값이 치솟고 있다. 내가 100만원 모으면 전세 값은 200만원 올라버린다. 3년 동안 모아 전세로 독립할 목표를 세우고 정말 열심히 짠돌이 짓하면 아끼고 또 아끼고 있는데 앞이 안 보인다. 점점 화가 난다.
# 독립하기 6. 집은 인권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이 누구는 어느 아파트 산다며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부러워한단다. 90평에 사는 그 6세 아이 또한 자신의 아파트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도 느낀다. 어느 집에 사느냐,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가 사람의 판단 기준이 되는 세상이이다. 지난 교육감 선거의 뜨거운 감자였던 무상급식이 자꾸 생각난다. '무상 주택' 같은 선거 공약을 들고 나오는 사람 2년 뒤 없을까? 어떤 활동가의 말처럼 돈 모아 집 사느니 싸워서 얻어 내는 게 빠른 건가?
집은 삶의 안정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국가에서 해결해야 한다. 억대의 집값은 말도 안 된다. 우리 이명박 대통령은 치킨 값 보다 집값이 더 비싸다는 것을 알면 좋을 텐데 말이지.
임대주택 좀 늘려줘~!
덧붙임
서녕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