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한으로도 풀 수 없는 철옹성?
아마도 2009년 당시 수사기관은 고인이 겪은 고통과, 그를 만난 권력자들의 행동을 ‘범죄’로써 엄중히 판단하지 않고 ‘연예계의 관행’으로 본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소속사 3층 내부에서 발견된 ‘접견실’의 존재는 고인의 기획사에서 행해졌던 일상적인 성착취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3월 8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고인의 자필편지 내용에 따르면, 장씨가 죽음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본인의 고통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연예인들이 겪고 있는 ‘관행’으로서의 폭력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9년에 화제가 된 연예인 A씨의 ‘스폰서 제안’ 발언과, 2010년에 불거진 연예인 B씨의 ‘성상납’ 발언 등, 이제 여성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한 몸 거래 제안은 심심치 않게 보도되며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고인의 자필편지가 이렇게 화제가 되는 이유는 그의 안타까운 죽음보다, 어쩌면 여성연예인의 삶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자연 리스트 공개 청원’을 하고 있지만, 만약 이 사건의 초점이 고인을 괴롭힌 남성들의 실명공개로 흘러간다면, ‘권력형 비리 척결’이라는 명목 아래 여성연예인 인권 문제는 해결의 끈을 놓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화려한 삶을 사는 연예인으로서 성공하고자 했던 욕망 탓에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며 고인을 비난합니다. 아마 이러한 비난에는 ‘많은 남성과 성관계를 한 여성’이라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속적인 비난도 포함돼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뒤흔들 수도 있는 권력자이기에, 반복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 것을 진정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가해자들 역시 고인에게 ‘자유’라는 수식어를 달아주며 자신의 행동들을 정당화했을지 모릅니다. 여성으로서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들, 특히 10대 여성들이 사회 유력 인사들과 이렇게 폭력적으로 성을 거래하는 것을 하나의 필연적인 과정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깊이 따져보아야 할 현상임에 다름없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성을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중요한 사업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연예산업의 구조라면, 우리는 연예계라는 공간에 주목해야합니다.
재수사 논란, 여성연예인의 인권에 초점 맞춰야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너의 삶에 훼방을 놓겠다는 권력자의 협박은 그동안 우리가 목격해온 폭력과 반인권의 공식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연예산업뿐만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한국사회에서 ‘약자의 몸’을 강자가 자유롭게 대할 수 있다는 인식은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유사한 스펙트럼에서 보면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성희롱을 경험하지만 침묵하는 것이 괜찮은 생존방법이라고 판단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회사에 문제제기 해봤자 내가 이 업계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꾹 참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규칙과 법도 피해자에게 요긴하지 않습니다.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 협박과 원치 않는 행동 등 모든 것이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법은 고인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자율’과 ‘관행’으로 변명하던 행위들을 ‘폭력’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성상납’ 혹은 ‘성매매’로 불리는 이번 사건의 중심은 여성연예인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바탕으로 굴러가는 연예산업의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바대로) 고인을 괴롭혔던 사회 유력인사들을 처벌할 방안을 찾는 것입니다.
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여성연예인이 경험하는 폭력의 단면을 대중과 법에 호소했습니다. 지금 수사기관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자필편지의 진위여부가 아니라, 여성연예인들이 겪고 있는 반인권적인 업계의 ‘관행’들을 뿌리 뽑겠다는 스스로의 수사의지여야 합니다. 이번 논란이 한국사회 성폭력의 스펙트럼에서 비밀스럽게 한 축을 형성해온 여성연예인 인권의 문제들을 더욱 가시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여성 연예인들과 연예인 지망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 번 단념하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고인의 기록들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과 검찰의 태도 변화를 주목할 것입니다.
덧붙여.
내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거론하며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미안하고 또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고인의 이름을 적는 것 자체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결국 우리는 드러난 부분적인 현상만을 보며 이러한 주장과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반복해서 노력한다면 고인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그 고민들이 만나는 접점을 다른 언어들로 표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씁니다.
덧붙임
최지나 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블로그에 게재했던 글을 수정․보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