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음란'이 아니라 '폭력'이 문제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웹하드 카르텔, 뒷북이라도 제대로 치려면

한국에서 처음으로 '몰래카메라'가 처벌된 것은 언제일까? 1998년이다. 여자화장실을 몰래 찍은 사람에게 검찰은 징역 1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20년이 흘렀다. 10월말 양진호의 폭행 영상 공개로 '웹하드 카르텔'에 대한 경찰 수사가 탄력을 받았다. 검찰로 기소 의견도 송치했지만 이 역시 '뒷북'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1999년 개설된 소라넷은 2000년대 중반 이미 '음란물' 유통 사이트로 부동의 지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경찰이 서버를 폐쇄한 것은 2016년이었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디지털 성범죄는 인터넷 서비스의 변화에 따라 더욱 다양한 곳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웹하드 역시 사양 추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게다가 양진호의 범죄 사실이 폭행, 횡령, 협박 등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시선도 흩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뒷북이라도 치기 시작했다면, 제대로 쳐야 한다.

젠더에 기반을 둔 폭력

2001년 한국성폭력상담소는 'Delete! 사이버성폭력'을 통해 사이버성폭력의 문제를 알리고 대응방법을 제안했다. 당시 사이버성폭력은 '온라인상에서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성적 메시지를 전달하여 불쾌감이나 위압감 등의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로 설명되었다. 주로 PC통신에서의 성적 괴롭힘이 문제였던 당시와 비교할 때 사이버성폭력은 행위 유형도 다양해졌으며 범죄의 공간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젠더에 기반을 둔 폭력(gender-based violence)이 사이버공간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문제제기에 사회가 조금 더 주목했다면 조금 더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을 사회는 언제나 여성보다 한발 뒤늦게 이해한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다뤄진 과정이 그렇거니와 그 후로도 마찬가지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1심 판결이 여실히 보여준다.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도 저평가된다. 사이버성폭력과 관련한 판례들을 보자. "피고인의 협박으로 피해자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피고인이 "실제로 사진을 유포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것은 실제 사진을 유포할 생각이 있었는지 여부와 상관없다. 형법상 협박죄에서 실행의 의사는 필수요건이 아니다. 상대방이 공포심을 갖게 되느냐가 핵심이다. 신체나 재산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포를 이해하는 사법부가 사진이 유포될 수 있다는 공포는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젠더 권력관계에 놓여 있는 공포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실제 유포에 이르지 않은 피고인의 변명은 언제나 성공하게 된다.

정부는 작년 9월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냈다. '몰카'라는 말이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이 규정한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에 대한 의식을 약화시키므로 '불법촬영'이라는 용어를 쓰겠다고 했다. 현행 법체계의 공백이었던 부분을 메워 유통을 차단하고 유포자를 강력 처벌하는 동시에 피해자 보호·지원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DSO(디지털성범죄아웃),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불편한 용기' 등 폭력에 맞서온 여성들의 노력이 이룬 결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해와 대응은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사이버공간에서 '유포'라는 폭력

사이버공간에서의 폭력은 오프라인공간에서와 같은 물리적인 접촉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인권으로 보호하는 이유가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임을 상기한다면 물리적인 접촉 여부가 폭력성을 평가하는 기준일 수는 없다. 화장실의 불법촬영은 일부 노출된 신체를 찍고 보는 것 이상의 문제다. 여성이 스스로 옷을 벗을 수 있다고 여기는 공간으로 침입하는 문제다. 게다가 디지털기술과 사이버공간의 특성으로, 누구든 언제라도 문을 열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여겨야 한다. 성행위를 촬영한 영상의 유포도 마찬가지다. 촬영에 동의한 경우에도 유포는 엄연히 다른 문제가 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렇듯 사이버성폭력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체가 노출되거나 성관계를 가진 영상이 유포되었을 때 '왜 찍었느냐'는 질문부터 받아야 한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도 올해 개정되기 전까지는 촬영에 동의한 경우라면 처벌하지 않았다. 이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과 맞물려 있다. 여성의 '성적인 행위'는 문란하거나 음란하다고 몰아넣으며 숨겨야 할 것으로 만드는 동시에 남성이 그것을 욕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여긴다. 그래서 여성의 나체 사진을 보던 국회의원은 별 탈 없이 임기를 마친 데다 다시 당선되기까지 했고 현직 판사는 지하철에서 버젓이 불법촬영을 한다. 숨기지 못한/않은 여성이 오히려 문제가 되어버린다.

유포가 시작되는 순간 다시 유포되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범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여성의 정보를 까발리고 모욕하고 더 '센' 걸 요구한다. '그래도 되는' 여성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문제가 오프라인에서의 강간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미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재유포자들은 처벌되지 않고 '소비'하는 사람들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집단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한다. 피해는 지속된다. 사이버공간의 익명성을 문제로 지적하는 말들도 있지만 문제는 오히려 사이버공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익명성으로 가장된다는 점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상을 삭제하는 시늉을 하며 돈을 받는 '장의사업체'까지 만든 것이 '웹하드 카르텔'이었다. 여성이 느끼는 공포까지도 소비하는 악랄한 범죄다.

디지털성범죄부터 '범죄'로

사이버공간은 일상생활의 한 부분인 것처럼 여겨져 사이버성폭력의 피해도 피해자의 한 부분만 훼손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인터넷 이용률이 100%에 가까운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다. 사이버공간과 오프라인은 거의 뒤범벅돼 있다. 게다가 사이버공간의 웬만한 서비스가 모두 사이버성폭력의 무대가 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6년 '개인 성행위정보 중점모니터링'으로 시정 요구한 7556건 중 가장 많은 건이 '텀블러'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에 있었다. 불법촬영과 유포의 폭력은 이미 토렌트와 스트리밍서비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확산되었다. 영리 목적의 촬영과 유포뿐만 아니라 비영리적으로도 범죄에 참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사이버세계의 젠더 불평등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웹하드 카르텔' 수사도 수많은 뒷북 중 하나에 그칠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사이버성폭력의 유형 중 하나로, 불법촬영이나 영상물 유포 등을 포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국산 야동'이라는 은어로 불리며 여성의 폭력 피해 경험을 그저 야한 동영상 중 하나인 것처럼 여겨왔던 것과 비교하면 '범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범죄의 거점에 대한 대책이 분명해야 한다. 유통 플랫폼은 범죄의 장소다. 웹하드 업체가 업로더와 다운로더가 만나는 공간을 제공했을 뿐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인 만남을 주선하고 있었다. 도박장 개설을 별도의 죄로 처벌하는 것처럼 범죄의 거점을 폐쇄하기 위한 적극적인 계획을 내야 한다. '해외 서버' 핑계 대기를 그만두고 국제공조를 어떻게 이뤄낼지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유포 자체가 범죄의 핵심 구성요소임을 분명히 하고 재유포자 처벌을 포함한 대처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가 거점에 모여 있기보다는 흩어져서 끊임없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재유포자 처벌은 더욱 중요하다.

사이버성폭력을 체계적으로 정의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현행 법제도는 여성의 피해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촬영과 유포는 성폭력처벌법으로, 재유포는 정보통신망법으로, 유포협박은 형법으로, 유통은 정보통신망법 및 전기통신사업법 등으로 분절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성폭력처벌법이 촬영과 유포를 처벌하지만 해당 영상을 삭제할 수 없었고, 정보통신망법은 삭제가 가능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곤란을 겪었다. 올해 법 개정으로 국가가 불법촬영물 삭제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유통에 대한 통제 방안이 더욱 중요하다. 유통되는 것을 '음란물'이라고 지칭하던 것도 바꿔야 한다. 음란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폭력이라 문제다. 음란하다는 시선 자체가 여성에게 억압적이고 피해자들의 말하기를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 법제도의 용어 변화가 필요하다.

성평등을 반기는 북이 울릴 때까지

사이버공간은 오프라인의 세계를 반영한다. 여성혐오가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부상해온 현실과 사이버성폭력의 증가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사이버공간은 다만 오프라인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 폭력의 현실을 증강한다. 2017년 하반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중점 모니터링하여 접속차단을 결정한 494건 중 291건은 속칭 '지인 능욕'이었다. 지인인 여성의 사진을 성적 모욕감을 느끼게 합성하여 유포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가능해진 범죄다. 사이버공간은 이와 같은 범죄에 접근하기도 쉽고 확산되기도 쉽다. 혐오범죄의 성격이 그렇듯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위축된다. 이런 상황이 무죄를 받아주겠다는 법률사무소의 홍보와 변론 판매로 이어지는 현실이 아찔하다.

사이버공간에서 '음란물'을 추방하겠다거나 '불법 촬영'만 근절하겠다거나 하는 접근으로는 폭력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폭력의 공간을 그대로 두고 단속만 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지금껏 한 발 늦었던 사회가 대번에 변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여성의 목소리에 한 번 더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하라. '女 피해자 무고 추정 男 가해자 무죄 추정'의 습속부터 바꾸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있는 것처럼 보였던 사이버공간이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공간임을 고발해온 여성들이 있다. 여성에게 강요된 성적 수치심을 사회적 분노로 전환시켜 '디지털 성범죄'를 공론화하고 변화를 이끌어낸 것 역시 여성들의 힘이다. 정부가 뒷북을 치기 시작했다면, 성평등을 반기는 북이 울릴 때까지 북 치는 수고를 멈추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