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필자는 이번 사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다. 우선 이번 사태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부산저축은행이 무분별한 PF(프로젝트파이낸싱)사업 및 부당대출로 부실화 위험에 빠졌다. 퇴출을 막기 위해 부산저축은행 임원들은 감사원을 포함해 정치권에 온갖 로비를 펼친다. 하지만 퇴출이 잠재적으로 결정이 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시민들에게 어떤 위험성도 고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 임원 및 직원들은 VIP(브이아이피) 고객들에게 퇴출 위험성을 알리고 돈을 인출하라고 정보를 흘린다. 퇴출 하루 전까지 맹렬히 돈을 인출한다. 현장에 있었던 금감원 직원들은 그 현장을 방조한다.
이 과정에서 5천만 원 이상 예금을 가지고 있거나 후순위 채권을 가지고 있었던 60-70대 시민들은 퇴출 결정을 뉴스를 통해서 보게 된다. 은행으로 달려 가보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후다. 위 사안들은 한겨레 21을 통해서 특종 보도되게 된다. 그제서야 언론들은 득달 같이 부산 저축은행의 온갖 로비와 비리에 대해서 보도하게 된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피해 보상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게 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사건의 피해자 대부분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였으며 그 돈의 성격도 퇴직금, 전셋돈, 자식 결혼자금이라는 점이다.
무책임한 정부
그러면 위 사태는 핵심은 무엇인가? 피해자들의 처지가 딱하지만 예금자보호법을 정확히 인지를 못한 것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한 피해자는 언론에 기고문을 보내와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처음에는 부산저축은행에 예금으로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후순위채로 변경하면 더 좋을 거라고 말하여 바꿨습니다. 바꿀 때 은행직원은 나에게 원금손실이 될 수도 있다는 아니, 원금 전액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후순위가 법에서 말하는 그런 거였다면 바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그저 내가 평생 동안 모은 돈을 은행에 맡겼을 뿐입니다. 나라에서 은행이라 하여 평생을 모은 내 평생의 세월을 믿고 맡겼습니다. (중략)
내 돈을 돌려준다면 나는 발가벗고 춤도 출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나라에 내가 저금한 돈을 빼앗아가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가슴이 뛰다가도 한에 눈물이 납니다. 나는 그 돈 포기 못합니다. 내 평생의 세월이 담긴 그 돈은 나와 남편의 생명 같은 돈입니다. 내 돈 돌려주세요. 나는 그 돈이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한겨레 5월 11일자)“
이 글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위 글은 이번 사건의 부산은행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정부는 은행이라고 허가해줬고, 시민들은 정부를 믿고 돈을 맡겼다. 그런데 은행은 점차 부실화 되었고, 정부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도 방치 해두었다. 심지어 은행은 그 부실화를 막기 위해 공격적으로 서민들에게 예금을 후순위 채권으로 전환하게 하는 영업을 펼치게 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그리고 사태가 벌어 진 후 예금자 보호법을 들먹으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한다. 서민들은 그저 정부를 믿고 돈을 맡겨 두었을 뿐인데, 평생 추위에 쩍쩍 갈라진 손을 부여잡으며 번 돈을 허공에 날리게 된다. 게다가 힘 있고 ‘빽’ 있는 자들은 폐업 전날까지 돈을 다 찾아가버렸다.
위 사태를 권력형 비리나 도덕성의 문제로 단순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 사건의 여파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들이 평생을 땀 흘려 모아둔 재산을 사실상 정부가 빼앗은 것이기에 그동안의 삶을 뺏은 것이나 다름없다.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은 이 사태에 대해 정부의 방관적인 태도는 범죄에 대한 공조나 다름없다. 그동안 정부를 신뢰하고 충성해야 한다고 배워왔던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뒤통수를 치는 행위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하기 위해서는 위 사건을 사전에 충분히 고지했어야 했다. 은행은 VIP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금감원 및 감사원이라고 불리는 정부기관들은 서민들에게 전화를 걸어서라도 충분히 알렸어야 했다.
그게 정부가 시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라고 이런 기관들에게 세금내고 나라의 구성원으로 살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 형사 소송법 잘 모른다고, 강제연행하고, 고문해도 되는 것인가? 강제연행하고 고문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법을 몰랐으니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할 것인가?
정부가 시민들에게 법을 몰라 피해를 입은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인하는 것이다. 스스로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라고 알리는 것이다. 법 잘 알고 돈 많은 사람들은 국가기관 별로 필요 없다. 로펌에 맡기면 더욱 잘해준다. 아니 알아서 은행에서 VIP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해준다.
따라서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은 정부의 책임성 문제이다. 우리는 왜 법을 만들고, 정부를 만들고 세금을 내는 것인가? 바로 법도 잘 모르며, 가난하고, 힘없는 시민들을 보호하라고 만든 것이다. 그것이 정부 혹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그것이 바로 정부가 시민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는 것이다.
정보의 불평등과 정보 소외감
더욱 분통터지는 것은 부산저축은행이 VIP 고객들에게 정보를 흘렸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사회에 학연, 지연, 직업 등으로 공고하게 묶여져 있는 집단이기주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집단 이기주의 안에 들기 위해 학력 높이고, 좋은 인맥 가지려고 노력하고, 사돈의 팔촌까지 엮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런 인맥을 가지지 못한 서민들의 현실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필자도 공공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 분통 터지는 일을 경험한다. 공개로 설정해 놓은 기록도 비공개로 받고, 소송으로 이겨도 유사한 정보에 대해서는 또다시 비공개한다. 필자가 일하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는 이런 하소연을 하는 문의 전화 및 편지가 매일 한가득 쌓인다. 게다가 이런 정보공개청구도 하지 못하는 저소득 고령화 계층들의 정보 소외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보 소외는 곧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필자가 법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격언이 있었다. ‘권리는 잠자는 자를 구제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대학 때 교수님은 위 격언과 함께 형사소송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임대차보호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노동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보았는지 상세히 열거해 주셨다. 권리의식과 법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는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잠자는 자를 깨워서라도 권리를 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 저축은행 사태는 정부의 책임성 문제를 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시민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은행, 신협, 농협, 신탁 회사 등의 정보관리 및 정보접근권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직원들이 고객에게 최대한 상품에 대한 고지의무를 강화하고, 그 의무를 위반했을 경우 강력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금융기관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리기 전 금융권의 위험성 여부를 최대한 시민들에게 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루속히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해결되어 고통당하고 있는 시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길 바란다.
덧붙임
전진한 님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