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렇다면, 좀 더 재미있게 차이와 다양성을 즐겨보면 어떨까. 어린이를 둘러싼 세계를 한 번 돌아보니, 차이와 다양성을 경험하고 겪기엔 토대가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매일 접하는 애니메이션, 교과서, 가족생활, 학교생활 모두 고정된 성역할, 비장애인, 우월하고 강력한 것들만이 판치고 있지 않은가. 편견을 형성하기 이전에 성, 인종, 장애, 외모 등 자유롭고 재미있게 다양한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섬주섬, 아이들과 함께 인사를 나눌 여러 인물들을 물색했다. 실존하는 인물, 동화 속 인물 등 여기저기서 30여명 의 사람들을 찾아 가방 속에 넣고 교실 속으로 들어갔다.
마음을 열고 몸을 풀어 - 차이를 섞어 섞어
초등학교 1, 2, 3학년 30명이 모였다. 내가 가방 속에 담아온 인물들을 만나기 전에 여기 모인 30명이 뒤섞이며 차이와 같음을 경험해 보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학교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학년과 성별에 따라 나뉘어 있는 것에 익숙해진다. 전혀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져 뒤섞여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과일, 장난감, 여행지, 꿈, 색깔 등등의 분류 항목을 두 가지로 제시하여 원하는 쪽에 서도록 했다. 학년에 상관없이, 성별에 상관없이 우리는 서로 같기도 다르기도 했다. 사람마다 마다의 차이가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뒤섞여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면!
더불어 날개짓 1 - 똑똑똑, 인어아저씨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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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날개짓 2 - 왕털이의 생일초대, 휠체어 때문일까? 계단 때문일까?
초등학교 1, 2학년과 40분씩 두시간 동안 인권교육을 집중력 있게 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가지고 온 이야기 속으로 초대하기 위해 여러 재미있는 방법론들이 필요할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다. 덧붙여, 다양한 차이만 나누고 온다는 것도 뭔가 아쉬웠다. 차이가 차별받는 순간에 대해, 구조적 차별에 대해 함께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뚝딱 뚝딱 인권짓기』에서 본 만화 한 컷이 떠올랐다. 생일 초대를 받았지만, 휠체어 장애인인 한 어린이가 장애인 친화적이지 않은 전철 이용에 불편을 겪다가 결국 생일이 끝나고 나서야 도착한다는 이야기였다. 친구에게 생일 초대를 받는다는 것만큼 어린이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없으며, 생일초대 장소에 가지 못했다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다. 어린이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인데다가 구조적인 차별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어서 좋았다. 자,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하여 푹 빠져들게 하는 일만 남았다.
나는 미리 노란 종이를 반으로 접어 겉에 ‘초대장’이라고 썼다. 그리고 안에는 나무역에 사는 여우 왕털이(김나무 작가의 동화책 『뻥쟁이 왕털이』의 주인공)가 되어 생일 초대 글귀를 적어 넣었다.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어린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흥미가 분산되어 있을 즈음, 나는 노란 종이를 빼들어 흔들었다! “자, 여러분 초대장이 왔어요. 궁금하죠?” 나의 유인책이 성공한 것일까? 30여 명의 아이들이 와르르 달려와 아예 벽에 달라붙을 만큼 가까이 모여 들었다. ‘으흐흐. 일단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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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대장과 함께, 미리 그려온 그림을 벽에 붙였다. 생일 초대장을 읽어 주고 상황을 설명했다. 마침 생일 초대 시간은 12시였고, 우리가 교육에 참여했던 시간은 11시 20분쯤 되었다. 마치 리얼 시뮬레이션을 하듯 교육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지금의 시간과 저 벽에 붙어 있는 시간을 동일한 것으로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처음에 참가자들은 초대받은 여러 어린이들 중 “휠체어를 탄 친구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생일 초대에 제대로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미리 프린트해 온 『뚝딱뚝딱 인권짓기』속 이야기를 읽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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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날개짓 3 - 와장창작 가방에서 쏟아진 인물들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우루루루 만나는 단체 미팅 시간을 준비했다. 미리 여러 인물들을 찾아 프린트하여 종이인형처럼 잘라서 담아 왔다. 종이 가방 속에 손을 쑥 집어넣어 여러 인물 중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날 수 있도록 했다. 30명의 어린이들이 모두 한 인물씩 손에 잡았다. 인물들을 집어 들었으면 인사를 나누고 어떤 사람일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 그 안에는 치마 입은 남자, 김치 담그는 주부 아빠, 삐삐롱 스타킹, 인상 쓰고 있는 어린이, 종이봉지 공주, 총 앞에 꽃을 든 평화운동가, 다문화가족, 장애인 커플 등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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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차례대로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가 만난 사람들이 어떤 인물인지 상상해 보고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는 굉장히 차분한 프로그램으로 계획했다. 그런데 웬걸. 서로서로 자기가 먼저 만난 인물들을 소개하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발표를 원하는 분위기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모두 내게로 다시 그 사진들을 넘겨 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인물들. 그래서 우리는 차례차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내 순서가 언제일지 기다려야 하는 초조함이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들이 한 인물씩 골라 벽에 붙여 가며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보고, 나는 그와 비교해 실제로 이 인물들은 어떤 사람인지 소개했다. 여러 인물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단체미팅! 놀랍고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끝내기에 앞서 물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누가 제일 기억에 남나요?”기대와는 달리 많은 어린이들이 어린이 사진을 꼽았다. 그 중에서도 인상을 쓰면서 어른들에게 “허락 받지도 않고 국에 밥 말지 말라”고 하던 그 아이를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들으며 또 다른 인권교육을 상상하면서 교실을 나왔다. 이 세상에서 어린이로 산다는 것에 대해…. 어린이로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을 와글와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함과 동시에 세계 각국에 이러 저러하게 살아가는 어린이들과의 새로운 단체미팅을 주선해 보면 참 좋겠다고 말이다.
덧붙임
이선주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