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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거리는 사랑방] 인권으로 말 걸기

<편집인 주> 20주년을 맞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다시 변혁을 꿈꾸는 인권운동의 질문을 담아 책자를 발간했다. <인권오름>은 그 중 '도란거리다' 장에 실린 글의 일부를 몇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 일상, 관계, 활동 속에서 어제의 고백이기도 하고 내일의 다짐이기도 한 사랑방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인권오름> 독자들에게도 든든한 기운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인권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인권은 나에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인권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충분히 다가가고 있는지, 지금의 현실에서 그런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인권이라는 말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면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하고 누군가는 인권의 눈으로 자신의 경험을 들여다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인권은 좋은 말이긴 하지만 삶의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거나 부담되는 언어일 때도 있다.

얼마 전에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과 청소년들을 만나는 실무자들과 함께 하는 인권교육이 있었다. 나는 빈곤 가정 아동과 청소년의 자아 존중감을 설명하면서 개인적 관계에서의 지지와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얘기하였다. 나는 실무자들에게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삶의 조건에서 이들이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질문은 “그래서 우리보고 뭘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분노 섞인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직접 질문을 한 사람과 다른 참여자들의 침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동과 청소년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고, 그들에게 닥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은 힘들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어쩌면 나의 말 걸기가 이런 자부심을 흔들고 문제를 지적하는 것처럼, 마치 비난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질문 그대로 지금의 현실에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답답함과 무력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인권을 말한다는 것

인권을 말한다는 것은 각 개인이 가진 삶의 문제가 다르지만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을, 너의 문제가 지금 당장 나의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우리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결 지점은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만 보이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파악하고 견디기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너의 무능력과 찌질함은 제대로 준비하고 대처하지 못한 ‘너의 책임’이라는 인식과 그런 찌질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더 자기 계발에 힘쓰라는 요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불안과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한 개인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불안이 공포처럼 다가오는, 그래서 피곤하고 지친 삶을 살게 되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지친 몸과 영혼에 대한 책임은 ‘개인’의 과제이니 긍정적인 마인드로 알아서 치유하고 다시 돌아오라는,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주문에 우리는 걸려 있다.

이러한 생각들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자는 이야기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개인’에 불과한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막막할 수도 있다. 인권의 역사는 차별과 배제에 저항한 개인들이 모여 만든 역사임을 알지만, 지금의 현실을 보면 그때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누군가 답을 가지고 말을 해줬으면 싶다. 지금 열심히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느껴지지 않아 아쉽고, 왠지 외롭다.

어떻게 말 걸면 좋을까

인권교육을 하면서 나는 참여자에게 지루하거나 뻔한 얘기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체제나 사회구조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언어로 표현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반복적으로 그 얘기를 하게 된다. 듣는 사람들이 나에게 ‘그걸 내가 모를 것 같느냐’는, ‘그렇게 잘 알면 뭘 해야 되는지 답을 말해 보라’는 무언의 불편한 시선과 분노 섞인 표현을 하더라도, 나의 전달 방식의 미숙함을 반성하며 각오를 새롭게 한다. 인권으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을 걸면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나는 되돌아간다.

체제나 사회구조라는 말이 그동안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왔기에 듣는 사람들에게 유사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그것은 분명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적 맥락에 따라 이 말은 다르게 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삶의 문제를 ‘개인’적 관점에서 보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그런 요구에 당연하게 응답하며 살기를 더 강하게 요구받는 지금의 맥락 속에서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지금의 사회적 맥락이 체제나 사회구조와의 관계에서 개인의 삶을 해석하고 함께 전망을 세우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사람들을 연결하기보다는 분리적 사고에 익숙하게 만드는 말들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더 지금은 이러한 체제에서 어떻게 우리의 존엄성과 삶이 파괴되고 다시 스스로를 복구하면서 문제를 개인화시키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직 다른 언어를 찾지 못한 문제일 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아직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래서 어쩔 수 없다’거나 ‘사는 게 다 그렇다’거나 ‘할 수 있는 게 없다’거나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는 체념과 무력감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외쳤을 때, 인권의 역사가 열렸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인권운동사랑방은 ‘9.28 회동’을 제안한 것 아닐까.
덧붙임

호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