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이 말하는 것
기분 좋은 여성의 날 (게다가 놀토 ^^), 룰루랄라 애인님에게 ‘여성의 날, 축하해!’ 인사를 전하고, 뉴스를 검색하다 순식간에 기분이 꼬꾸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 기사 때문이다.
‘초반에는 일부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정치적인 의미가 담긴 행사가 진행됐으나 최근에는 정치적 색채가 줄고 어머니의 날이나 밸런타인데이처럼 여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했다.'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4.3.7)
기자가 한국에는 '어머니날'이 없다거나, 발렌타인데이는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 아니라, 여성‘이’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거나 하는 상식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서는 아니다. 내 기분이 엉망이 된 건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 ‘정치색이 줄’었다는 기자의 판단과 그에 마냥 고개를 내흔들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었고, ‘여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변모한 것이 곧 ‘의미가 확장’된 것이라는 결론에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 든 생각은 ‘여성의 날이 여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라니! 너무 모욕적이잖아’였다. 굳이 알리스 슈바르처의 <사랑받지 않을 용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성의 날’이 세계적인 기념일로 제정 될 수 있었던 것에, 대규모의 행사를 진행하고 축하하게 된 것에는 오랜 세월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나고자 안간힘썼던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 아닌가. 이 특별한 날의 의미가 고작 사랑타령으로 얼버무려지고 만다면, 그것은 의미의 확장은커녕 의미의 파괴이며 퇴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마음 한켠에 거센 파도가 지나고 나서 가만히 곱씹어 본다. 왜 우리의 주장과 분노는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면 충분히 극복되는 것으로 매도되고 있을까. 왜 우리의 구호와 궐기는 정치적이라고 해석되지 않을 만큼 격렬하지도 날카롭지도 못한 것이 되었을까. 앞서 간 수많은 멋진 페미니스트들이 이뤄놓은 찬란한 성과들을 지금 나(를 포함한 우리)는 온전히 지켜내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에 전날 밤 폭음이라도 한 듯 위가 쓰려왔다.
좋아진 세상의 실상
여성의 인권을 언급할 때, 사람들은 쉽게 ‘세상 참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렇다. 여성을 노예와 다름없는 존재로 취급하던 때를 환기해보면 세상은 참 좋아졌다. 이제 여성에게도 교육은 ‘의무’가 되었고, 일할 ‘권리’도 주어진다. ‘여자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 된다’던 옛말은 ‘여성이 웃어야 세상이 행복하다’는 문구로 바뀌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흑인이 노예에서 해방되었으니 세상은 좋아진 것인가? 노예로 살아야했던 흑인들에게는 백인들이 노예제라는 것을 만들기 이전의 세상이 더 좋았던 건 아닐까? 그러니까 ‘좋아졌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여성에게 세상은 좋아졌을까?
한국은 언제부턴가 세계 유수의 강간범죄국으로 급부상했다. 이 땅에서는 26분마다 한명의 여성이 강간 및 강제추행의 고통을 겪는다. 암담한 것은 이 계산법이 경찰에 신고 된 강간 및 강제추행의 범죄건수만으로 셈해진 것이라는 점이다. 경찰이 추정하는 강간 신고률이 10%를 겨우 웃도는 수준이니, 실제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범죄는 한층 침울한 수치일 것이다.
우리는 여성이 대통령인 나라에 살고 있다. 불과 10여년전만해도 상상에서나 가능했을 법한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프로축구여성CEO와 여성장군, 여성오페라지휘자, 여성은행장까지. 세상은 이제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의 남녀 고용률 격차는 29%로 OECD국가 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대학진학률은 여성이 5.7% 높지만, 대졸자 취업률은 남성이 8% 높다. 더군다나 소위 잘나가는 30대 대기업의 여성 직원 비율은 24%에 불과하다. 취직을 했다고 끝도 아니다. 1000명 이상 규모의 국내기업 중 여성이 중간관리자급 이상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17%, 임원은 6%에 불과하며, 상장기업의 여성 CEO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비율은 64% 남짓이며, 정규직 비율 역시 47%대로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건 마치 아이에게 신기한 장난감을 잔뜩 보여주고는 가지고 싶으면 엄마 모셔오라고 하는 얄팍한 상술 같지 않나.
게다가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다는 이 달콤한 거짓말은 단지 그대가 여자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일들을 상쇄시켜 주지도 못한다. 한국은 여전히 OECD국가 중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최하위인 나라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가족을 돌보는 일에 5배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가사 노동에는 6.5배의 시간을 더 할애한다. 한국 여성가사노동의 절정판인 명절에는 95%의 노동을 여성이 독차지해 남성에 비해 무려 19배나 많은 노역에 시달리고 있다.
크게 숨을 고르고
다시 말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필요한건 사랑 따위가 아니다! (어차피 네가 외계인도 아니고, 김수현도 아니잖아?) 애초에 빠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늪에 힘과 권력으로 밀어 넣은 주제에, 발버둥 치며 안간힘을 다해 1cm씩 기어오르고 있는 우리에게 ‘자, 그만큼 올라왔으니 이제 좀 살만하지? 세상 좋아졌지?’ 따위를 물어보라고 허락한적 없단 말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우리 페미니스트들)도 깊은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의 손톱이 늪을 빠져나오기 위해 긁어야했던 무수한 흙덩이들에 의해 얼마나 무뎌졌는지 살펴보아야 하고, 겨우 늪 언저리 땅에 손끝이 닿았다는 것으로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분노해야 하고, 찬란함을 지켜가야 한다.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이 날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싸움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덧붙임
난새 님은 언니네트워크 운영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