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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인권이야기] Golden Time 이전의 시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대형 참사가 이어질 때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참사의 본질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규제완화 조치’와 소중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그 중의 하나이다.

“모든 구조가 화재에 취약한 총체적 부실을 보여줬지만, 모든 게 합법적이라는 부조리” 이 말은 정부 화재사고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기사였다. 2009년 도시형생활주택 정책을 도입하며 각종 안전규제 등 건설기준을 대폭완화 되었다. 그 결과 소중한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기업의 탐욕을 용인하고 각종규제완화를 통해 그것을 보장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은 지켜질 수 없다.

골든타임은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 금쪽같은 1~2시간을 지칭한다. 총체적 부실과 부조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골든타임이 주어지기나 할까? 특히나 매일 노동재해의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골든타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노동자에게 골든타임이라는 시간은 애초부터 배제되고 있다.

2012년 전남 목포 대불공단 사고당일 아침 작업자들은 가스냄새가 난다고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러나 원청의 작업반장은 노동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작업을 지시했다. 그리고 얼마 뒤 블록 안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고 노동자들은 주검으로 돌아왔다.

2008년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 당시에도 용접 작업자들은 창고 안에서 용접을 하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제기를 하였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했다.

산업안전보건법 26조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의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상급자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위험 작업이라고 판단될 때는 작업자에게 작업을 중지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금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불이익을 주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도록 되어 있다. “위험한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있다”고 분명히 명시하지 않은 채 ‘급박한 위험’에만 한정하고 있어 해석에 많은 논란이 있다.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힘을 갖고 있지 못한 사업장에서는 유명무실한 권리에 불과하다. 또한 노동조합 조직률이 10.3%에 그치는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에서 노동조합이 작업중지권을 갖는 것만으로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대부분의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위험을 제기하면 사업주들은 지금껏 해오던 관행이고 다른 사람은 잘해왔다는 이유로 묵살해버린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보다는 사업주 자신들의 이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위험 작업을 거부 했을 때는 그 다음날 해고가 될지도 모르는 불안감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 작업을 거부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작업을 했다가 사고가 나면 그 책임 역시 작업을 진행했던 노동자가 책임을 질 때도 있다. 때로는 구속이 되기도 한다.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시되는 사회의 민낯

1월 27일 뉴스타파는 2013년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누출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하청노동자가 동료와 급박하게 주고받은 카톡 내용과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불산 누출사고 관련 형사재판 1심 판결문 가운데 당시 정황을 포착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을 보도했다. 사고당일 하청업체 노동자는 삼성에 밸브교체를 두 번 건의하였다. 하지만 삼성측에서는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주말만 버티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삼성은 불산 누출이 최초 발견된 시점으로부터 두 번의 교체 건의를 거절함으로써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후 10시간 만에 교체 수리 작업에 들어가지만 이 과정에서도 가동중지 권한을 가진 삼성은 전체 탱크 가동을 중지시키지 않은 채 무리한 수리를 강행한다. 이로 인해 수리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직원은 불산에 과다노출 돼 끝내 숨졌다.

1심 판결에서 삼성전자와 전무이사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작업 지시 권한이 있었던 삼성 측의 실무자는 벌금 3백만 원에서 7백만 원을 선고 받았다. 하청업체는 일감이 떨어져 폐업 상태가 되었고, 사고 당시 부상당한 노동자들은 다른 하청업체로 직장을 옮기거나 작업장을 떠났다. 이것이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시되는 사회의 민낯이다.

우리는 죽으려고 일터에 가지 않는다. 사고 전 위험을 감지하고 작업을 멈출 수 있는 시간,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골든타임 이전의 시간에, 위험을 감지하고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작업중지권은 자연적인 권리이다. 모든 자연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는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지 않을 권리와 함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권리인 것이다. 인간의 양심적 행위에 의해서 위험하다고 느낄 때 즉시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법률적인 보호에 앞서 자연적인 권리인 것이다.

인간의 자연적인 권리보장은 우리사회에 ‘안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안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안전사고와 재난에 대한 책임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자본과 경제부처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고용노동부의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으로는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수 없다.

2월 10일이면 딱 일 년 전 울산 북구 모듈화산업단지 내 금영ETS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현대공고 실습생 故김대환군이 지붕이 무너지며 깔려 사망한날이다. 몇 십년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져 대부분의 사업장이 조업을 중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고 김대환군은 하청업체 작업장에 투입되었다. 무너져 내린 천장아래서 열아홉 청년이 내뱉은 마지막 한마디는 ‘살려 주세요’였다고 한다. 다시는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우리는, 그에게 어떤 행동으로 답해야 할까?
덧붙임

이은주 님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