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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인권과 스킨십

안녕하셨어요? 사랑방에 일 년 넘게 인사를 못 드린 것 같네요. 그간 사랑방 식구들 다들 안녕하셨어야 하는데. 훈창도 많이 아팠다고 하고. 고소·고발도 많이 당하셨고. 그래도 은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 받은 건 참 다행이에요. (정록은 파마머리가 잘 어울려요. ㅋㅋ)

 

지난 일 년간 저는 수험생활을 했어요. 지금은 수험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백수생활을 한창 즐기고 있고요. 수험생활을 돌아보면, 저 스스로는 시험공부 한 거 말고 딱히 뭐 없네요. 그런데 수험 생활 중에 세월호 참사도 벌어지고, 수험생활이 끝날 무렵에는 통진당 해산사태까지 벌어지더라고요. 수험생활 중이란 핑계로 적극적으로 뭔가 할 수 없었어요. 스트레스만 받았죠. 처음 세월호가 침몰당한 4월 16일. 그 이후 사고가 참사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정말 참담하고 황망했어요. 저는 그냥 화가 나는데 뭘 할 수는 없어서 어이없는 기사들이나 의견들에 댓글이나 달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일 돌아가는 모습이 점점 사람 분통 터지게 하더라고요. 그러다 나중에는 정말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면서 자포자기하는 마음마저 들었어요. 그리고 연말에 통진당 사태까지 겪으니까 정말 더... 한편으로는 이렇게 ‘포기’하게 하는 것. 그게 이 정권이 원하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고요.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데 하다가도 ‘아 너무 피곤하다.’ 라는 생각이 들고. 피로감 말고 제가 지난 일 년간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불안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여러 사람이 힘들게 싸워서 간신히 일궈놓은 민주주의의 초석이 산산조각이 나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서 오는 불안. 배가 침몰을 해도 국가가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오는 불안이요. 그리고 이런 일들에 대해서 ‘이 일은 잘못되었다.’ ‘왜 잘 못되어 가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을 때 공격받을 수 있다는 공포도요. 생각할수록 너무 괴로워져서 생각하지 않는 편을 택했던 것 같아요. 현실 회피?

 

몇 년 전에 어떤 자리에서 인권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인권은 내가 부당하게 대우를 받지 않고 존중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서로를 존중해 주고 부당하게 대하지 않기로 하자는 일종의 약속이라고 말했었죠. 그런데 그때 한 교수님께서 인권은 ‘스킨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음,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 하고 생각했는데요.그 말씀은 ‘공감’에 대한 얘기였던 것 같아요. 사실 다른 사람이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고 그래서 그들의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을 때, 그 상황에 대해서 공감을 해야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같이 찾기 위해 싸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스킨십’이 없으면 그 과정이 참 추상적이 되고 막연히 ‘힘들겠네’ 이런 생각에 그치기가 쉬울 것 같아요. 스킨십을 해야, 그러니까 그 사람과 가까워져야 그 사람의 문제가 내 문제가 되고 그래야 끝까지 함께 바꾸기 위해 싸울 수 있겠죠.

 

제가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 자원활동을 할 때 생각했던 것이 ‘아 이 나라의 빈곤 문제는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겠구나.’ 라는 거였어요.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살피고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하는 편이 더 쓸모 있다고 생각을 했죠.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은 고민할 수 없으니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요.

 

그런데 그 사회 구조를 바꾼다는 것이 결국은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들하고 ‘이렇게 하자’ 하고 정하는 거잖아요. 결국 그 구조란 건 사람 사람이 이루고 있는 거고요. 뜬구름은 교수님이 아니라 제가 잡고 있었던 거죠. 사람을 안 보고 어떻게 구조를 얘기할 수 있겠어요. 근데 그때 저는 여기서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일은 내 일이 아닌 것 같아. 나는 구조를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 라고 생각했으니… 참 어리석었죠.

 

이야기가 다른 데로 조금 샜네요.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저 요즘 반성을 많이 했다고요. 지난 일 년간 불안, 좌절, 공포 같은 감정에 시달리면서 별로 한 일도 겪은 일도 없는 제가 지쳐서 그냥 ‘여기엔 희망이 없어’ 하고 수수방관하고 무책임하게 있었던 것에 대해서요.

 

지난달 사랑방에서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거든요. 근데 읽을 책이 금요일엔 돌아오렴 이었어요.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사실 전 너무 읽기 괴로울 것 같아서 이 책 읽고 싶지 않았다고 하니까, 한 활동가가 그러더라고요. 쓰신 분이(아마 명숙)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너무 속상하다고 하셨다고. 그 말씀 듣고 순간 정말 너무 미안했어요.

 

아직도 노력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고,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도 않고 계속 커지는 피해자 가족분들도 계시는데 제가 그렇게 생각했단 것이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더라고요. 도움은커녕 현실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서요.

 

사실 제가 반성했다고 제가 뭐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아직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의와 진실을 위해서 싸우는 분들께 어떤 방식으로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에도 스킨십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고민해 봐야겠어요.

 

사랑방을 알게 된 것이 2011년이니까 이제 햇수로 5년 되었어요. 제가 만난 사랑방은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과 연대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스킨십을 해 오고 있었어요. 그동안 사랑방에서 활동하시는 여러 활동가의 모습에서 저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을 많이 보았고, 배우고, 감탄했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네 저는 갈 길이 아직 멀어요. )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너무 두서없이 길게 쓴지라 다음을 기약할게요.

 

지난 4월 16일에 서울광장을 뒤덮었던 국화 향기를 기억하며.

 

예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