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사람은 나의 든든한 동지이다. 인권운동을 시작한지 20년차에 접어든 나는 나를 후원하고 지지한 가족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 활동을 하지 않았나 싶다. 가족 중에서도 올케는 집안 밖 대소사를 나와 함께 상의하며 좋을 일도 겪었고 힘든 시간도 함께 견디었다. 생활협동조합이 유행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했고, 지금은 먹을거리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교육운동을 하고 있다.
◇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요새 본인 소개를 하라면 나이를 먼저 말합니다. 두 아이 엄마인 게 아직도 낯선 올해 나이 마흔 아이쿱 활동가 전민아라고.^^ 전 그냥 마흔인 게 좋은 거 같아요.ㅎㅎ
◇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하면서 본인이나 가족의 삶에 큰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선 생협은 말 그대로 소비자 협동조합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친환경식품을 이용할 수 있는 곳. 그뿐이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아토피가 조금(?) 있었고. 큰 애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탈장수술을 어렸을 때 받았던 터라 면역력이 걱정이었어요. 하지만 아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내 아이만 잘 먹이면 괜찮겠지란 생각에 위협이 느껴지기 시작했죠. 집 밖을 나서면 안전하지 않은 먹을거리 시장에 내 아이가 그대로 노출이 되는 거더라구요. 그러면서 조금씩 생협이 먹을거리를 사는 매장이 아니라 생활협동조합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한해 두해 식품안전에 대해서 공부하고, 식품안전에 대한 강의를 하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협동이란 큰 테두리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무엇보다 남편의 긍정이 우리 집 식문화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긍정적으로 이끈 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요샌 회사에서 아이들 부모를 보면 생협에 적극 가입을 권유하고 다닐 정도니까요. 아이들도 식품의 성분표시를 꼼꼼히 살피고 식품에 대한 관심이 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지대하기도 하구요.^^
◇ 식품안전홍보나 강의를 하러 다니다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선 요새 학부모들은 먹을거리나 환경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죠.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는 점(?), 그렇지만 정말이지 관심은 지대하답니다. 대부분 식품안전에 대한 강의에 호응도 좋아요. 중요성은 알지만 실천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다 강의를 듣고는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무엇보다 정보가 많은 거 같지만 잘못된 정보나 확대 축소된 정보로 인한 오해와 착각도 많은 것 같아요. 엄마들은 이렇게 말해요. “바른 먹을거리 풀무원^^” 그렇지만 바른 먹을거리 풀무원의 첨가물 허용은 132가지나 됩니다. 물론 우리나라 첨가물 허용이 670여 가지인 것에 비하면 엄격(?)하다고도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생협ICOOP뿐 아니라 한살림, 두레 등의 생협은 60여 가지정도로 알고 있어요. 강의에서 이런 내용을 접하면 다들 놀라요. 현장에서 식품강의를 하다보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죠.
◇ 생산행위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면,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인권을 침해하는 구조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소비자도 인권침해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 국내 농산물들이 적절한 가격을 받지 못해 농민들이 생존하기 힘든 조건에서 도시에 있는 소비자들이 싼 농산물만을 구입하려는 행태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 대안 중 하나로 생협운동이 시작된 것 같은데요, 생협운동이 농촌을 살리는 대안이라고 보시나요?
생협운동이 농촌을 살린다? 글쎄요. 더불어 사는 거 아닐까요? 예를 들어 1991년 자급률이 0.1%에 불과한 우리 밀은 20여년이 된 지금에야 3%까지 올라갔다고 해요. 7월부터 정부가 우리 밀 살리기 일환으로 군대 급식 밀가루 중 25%를 우리 밀로 사용한다는 소식을 전해왔으니 나름 농촌을 살리는 대안이 된 걸까요? 무엇보다 대부분 식품을 취급하는 협동조합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등하게 서로를 먹여 살리는 구조를 가지고는 있어요. 적정한 가격과 그들의 생활에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들을 가지죠. 예를 들면 선수금 제도가 있는데, 물건의 일정한 값을 미리 생산자에게 지급해 작물을 키우기 위해 소용되는 비용을 쓰게 하고 작물을 납품하면 선납한 금액을 뺀 나머지를 지급하는 거예요. 미리 일부 지급하는 돈은 조합원들이 만듭니다. 원활한 수급과 물가 안정을 위해서.
◇ 국내 식량자급률이 24%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만약 외국에서 농산물이 들어오지 않는 조건이라고 가정하면 한반도 이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딱 두 달 정도를 버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우문일지 모르겠지만 왜 먹을거리 자급자족이 중요할까요?
식량자급률이라고 발표하는 통계는 40% 내외에요. 1990년에 70% 정도에서 절반 가까이 떨어졌죠. 식량 중 곡물 자급률이 1990년에는 45% 내외 이었는데 작년 조사치가 24% 정도였던 거죠. 하지만 이것도 주식이 쌀 자급률을 100%로 본다면 나머지 곡물 중 옥수수는 0.8%, 밀은 1%, 콩은 8% 정도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핸드폰 팔고 자동차 팔아서 먹을거리 수입해오는 거죠. 그렇지만 가격이란 상대적이고 변동도 심합니다. 한국전쟁당시 공짜로 퍼주며 길들인 밀가루 가격이 지금 어떤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죠. 이렇게 가다간 자동차 한 대 팔아 밀가루 한 포대 랑 바꿔야 하는 날도 올 수 있는 거죠. 자급자족이 안 되면 사오거나 굶어죽거나. 기본적인 먹을거리의 자급자족이 안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지금 당장 눈앞에 싼 수입농산물에 눈이 가려진 우리만 모르는 거죠.
◇ 도시에 살면서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우선 도시에 사는 개인이 농촌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로컬 푸드 이용, 직거래 장터를 통한 우리 농산물 이용하기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협동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아파트 단지 하나 정도의 주민이 모이면 농촌의 한마을 정도를 연계해 서로를 먹여 살릴 수 있어요. 지난 월요일 홍성에 워크숍을 다녀왔는데 생산자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한자 적어봅니다. 매년 농업인의 날 슬로건이 ‘농업은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데요. 그 생산자님은 ‘농업은 우리의 생명이다’ 말씀하시더라구요. 볍씨가 쌀알이 되는 시간이 4724시간이라는데...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