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3일 총선을 거치면서 총선이 인권운동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에 대해 엊그제까지 이야기 나눈 것 같은데 시간은 벌써 5월 중순을 향해갑니다. 마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 객석에 앉은 기분이랄까요. 물론 끝이 아니라 다음 막을 준비하는 시간이겠지만요. 이제 숙제는 이 막간을 이용해 국회와 인권운동 자체의 관계나 전망 등등을 같이 나눠야 또 커튼이 올라가도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총선에 함께 대응했던 인권단체들이 모여서 우리의 움직임에 대해 평가하고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모두 인권올리고 가이드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고민을 나누었는데 막상 총선을 치르고 나서 각자의 소회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인권올리고 가이드가 총선을 대하는 인권운동 전체 차원에서의 고민을 나누는 장이었다면, 레인보우 보트나 폐지당, 청소년 참정권 등 각자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여러 움직임도 있었는데요. 기본적으로 총선 결과를 두고는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의 불만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쟁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도 결국은 사회운동 전체 차원에서 그 움직임들이 모이는 것들이 필요한데 이번 총선이 그런 움직임을 반영시키기 위한 저항의 목소리가 투표로나마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박영선과 같은 성소수자 혐오 세력을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막아 세우지 못하고 기독자유당 같이 차별을 조장하는 말도 안 되는 정당이 2.7%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무척 아쉬웠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럼에도 레인보우보트 활동을 앞으로도 이어가길 바란다는 요구를 받아 안고 1주일 만에 레인보우보트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이 3000명을 넘겨 총 5000명 이상이 참여했습니다. 앞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둘러싼 싸움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여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이죠. 또 폐지당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내걸고 뿐만 아니라 인권을 억압하는 많은 것들을 폐지하라는 목소리를 냈는데요. 컨셉에 맞게 기존 정당들이 하지 못하는 또는 하지 않는 이야기를 거리에서 전하며 사람들을 만났던 시간은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청소년운동 총선대응 네트워크에서 주장한 청소년 참정권은 기존의 피선거권 연령제한만이 아니라 선거운동이나 지지 자체를 가로막는 선거법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만들었습니다. 청소년 불복종 행동으로 8명의 청소년이 직접 자신의 지지 정당을 밝히고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서명에 참여하신 분들의 연령 중에는 7세도 있었고 11세도 여럿 있었습니다. 소위 ‘어른’들의 시각으로는 염두에 두기 어려운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청소년 참정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각자의 목소리만이 아닌 청소년 운동 전체의 목소리로 모아낼 필요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총선을 이유로 서로 모여서 고민을 나누고 전망을 다지는 자리 자체가 신기하고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총선을 거치는 과정이나 그 결과에 대해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졌던 만큼 그 평가들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도 역시 총선 결과는 안도감보단 아쉬움이 더 크게 남습니다. 통합진보당 폐지 이후에 위축된 진보정당의 득표도 그렇고, 총선에 대응했던 운동들이 그 의미를 던졌던 것에 비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투표에서 의제를 던지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요즘 같은 상황은 총선 때는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일지도 모르지요. 그런데도 각자의 평가처럼 20대 총선은 땅을 다지는 활동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또 인권올리고 가이드로 함께 모여 고민을 나누는 첫 자리였기 때문이겠죠. 운동이 국회와 같이 논의를 할 때 야당에 의존하게 되는 관계의 구조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고 어떻게 운동이 의제를 주도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거나, 선거 결과를 수치로서 바라보며 다수당이 누구고 몇 석을 차지하고만 따지던 눈을 조금은 다르게 돌려 그게 다가 아님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시간들이었던 것이죠. 이제 이 막간을 잘 마무리하고 앞으로는 좀 더 유기적인 연대? 집단적인 이해만이 아니라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누는 활동으로 만들어 나가야겠습니다. (...아...물론 더 이상 가이드는 아니고^^^^^^^ 하하하. 이번 인권올리고 가이드는 다음 총선까지는 무리 없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아직도 못보신 분이 계신다면 https://goo.gl/DoIBX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