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시화공단노동자 권리찾기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월담이 벌써 만 4년이 됐습니다. 사랑방도 다른 단체들과 함께 준비를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5년째네요.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던 때와 비교해보면 이제는 안산이라는 지역도, 반월시화공단이라는 장소도 익숙합니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활동을 해와서일까요? 공단에서 만나는 노동자들도 월담을 알아보고 매번 건네는 소식지를 익숙하게 받아듭니다. 하지만 이 익숙함과 편안함이 한편으론 불안합니다. 월담이 공단의 현실을 바꿔내기보다는 어느새 공단의 한 풍경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입니다. 노동자들이 직접 자신의 권리를 외치고 조직하는 과정에 함께 하겠다던 처음의 목표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걸까요?
온고지신의 지혜를
이런 불안감에만 머물 순 없어서 지난 4년의 월담 활동을 돌아보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2차례에 걸쳐 진행된 집담회는 그 동안 함께 해왔던 월담의 활동가들이 구체적인 자료들에 기초해서 월담 활동을 정리하고, 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이고, 더 발전시켜야 할 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공단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던져진 돌멩이처럼만 생각됐던 월담의 4년을 돌아보니 참 많은 것들을 해왔고,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기도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월담 소식지가 대화창구 역할을 하고, 매월 안산역에서 펼쳐지는 문화제와 노동상담소가 모일 수 있는 거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꾸준히 안정적으로 활동을 펼치는 건 중요하지만 활동의 관성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한편 집담회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월담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것으로 인권침해실태조사와 임금교실을 꼽았습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리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든 활동이었지만, 활동과정에서 공단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월담 활동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각종 자료와 통계 속에서만 봤던 공단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을 인권침해실태조사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통계숫자와 사진 속 이미지로 고정됐던 노동자들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며 일하는지 직접 들었던 것입니다. 2016년에 진행했던 임금교실은 그 동안 노동자들의 연락을 기다려왔던 월담이 먼저 다가가 적극적으로 조직했던 활동이었습니다. 다양한 실태조사를 통해 확보했던 연락처로 전화해 임금교실을 홍보하고 그러면서 월담활동에 대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선전물을 건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대화하고 임금교실을 제안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참여를 신청하고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경험은 공단에서 노동자들을 만나고 모임을 꾸리는 건 힘들고 안되는 일이라고 우리 스스로 생각한 건 아닌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집담회를 통해 예전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오히려 노동자들은 우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월담이 건넬 이야기가 준비되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담이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공단노동자들과 만나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죠.
함께 할 때 바뀔 수 있다는 기대
월담 소식지를 배포하다보면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가끔 듣습니다. 월담이 사업장을 넘어서 공단 노동자들이 함께 해야 노동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자는 것인지는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공단 노동현실의 문제로 거론되는 근로기준법 위반, 인권침해, 노동안전 문제를 추상적으로 나열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월담에 함께 하자는 건 듣는 노동자 입장에서 월담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전제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구체적으로 노동자들이 힘을 보태고 참여할 수 있는 통로(서명, 실태조사, 온라인 행동)를 만들고 그 힘으로 공단전체의 노동실태에 1차적인 감독책임을 지고 있는 노동부를 움직이고, 작더라고 그 여파가 개별 사업장에 미칠 수 있는 경험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노동자들이 월담에 회원가입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월담과 함께 했더니 조그만 변화라도 생기더라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죠. 사업장 질서를 넘어서 공단 노동자들이 함께 움직이고 그 힘이 공단을 변화시킨다는 건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더 커지는 과정이 아닐까요? 월담이 공단노동자들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힘이 모이고 흐를 수 있는 튼튼한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