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 공공기관 운영위원회가 차기 철도공사 사장으로 3배수 추천한 명단에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포함되어있다는 점은 우리를 우려하게 만든다. 철도경영과는 무관한 경력을 가진 인물임에도 추천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낙하산 인사임이 분명하다는 철도노조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비판이 일고 있다.
허준영이 경찰청장으로 있던 200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쌀 협상 국회비준 저지 농민대회’에 참가한 농민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으로 농민 두 명이 죽었다. 농민의 죽음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인권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로 경찰폭력에 의한 사망임이 확인되자 그때서야 과오를 인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했고, 허준영 경찰청장이 자진 사퇴하였다. 자진사퇴는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자진사퇴가 책임을 지는 것인냥 여론을 호도하여 그는 사법처리대상에서 벗어났다. 시위진압에 대한 최종 방향은 경찰청장이 결정할 뿐 아니라 엄청난 폭력이 난무할 정도의 진압을 할 수 있도록 방치한 것이므로 경찰의 최고 책임자인 허준영의 책임인 분명하다. 결국 현장 지휘 책임자들에게만 징계가 내렸을 뿐 최종 책임자는 사법처리를 받지 않았다. 나아가 이러한 일은 얼마 전 용산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반성도 없이, 사법처리도 없이 자진사퇴한 김석기 전 경찰청장도 허준영처럼 언제든지 권력의 후광을 입고 정관계나 공기업의 책임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책임자 처벌은 인권 침해구제의 기본
경찰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경찰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이 인권기준을 익히고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스스로 성찰하고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볼 수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무자비한 경찰폭력을 휘두르거나 지시한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현실은 폭력을 지속하게 만든다. 경찰이 폭력을 휘두르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가해자를 비롯한 가해집단은 인권침해를 깨닫고 주의하고 반성하며 인권기준을 익힐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다. 또한 가해자 처벌은 피해자의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상처를 보듬는 구제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도 불처벌을 매우 심각한 인권침해로 여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996년 인권소위원회에서 낸 ‘중대 인권침해범 불처벌에 관한 보고서'에서도 “모든 사회구성원은 과거의 인권침해에 관해, 그 재발을 막기 위해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민중을 억압한 역사에 대해 국가는 기억할 의무를” 명시하는 등 중대 인권 침해범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처벌받지 않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원칙을 제시하였다. 똑같은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책임자을 처벌하면서 침해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폭력의 정치를 재생산하는 ‘권력 비호 보상인사’
이러한 ‘권력 비호형 인권침해’가 지속되는 또하나의 이유는 언젠가 주어질 승진이나 보은인사가 있기 때문이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의 사례처럼, 인권침해를 감수하더라도 권력을 비호하는 일에 앞장선다면 최고권력자가 자신을 보호해주거나 보상해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공권력의 책임자가 ‘정의나 인권’을 가진 소신보다는 ‘권력자의 비위와 의중’을 고려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권침해 가해자를 공기업이나 다른 정부기관에 인사하는 ‘보상인사’, ‘보은 인사’는 폭력 정치의 확대재생산 장치이다. 더 이상 폭력의 정치가 이어지지 않도록 허준영 전 경찰청장의 철도공사 사장 추천은 철회되어야 한다.
2009년 3월 13일
인권운동 사랑방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