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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형제복지원, 진실에 동참하려면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 씨가 2012년 낸 책의 제목이다. 그는 형제복지원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그리고 25년 동안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던 세상으로부터도 살아남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는 한 씨의 목소리가 공감의 메아리를 얻었고 ‘형제복지원’의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연락이 닿고 용기를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조명한 <그것이 알고 싶다>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향했던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라는 질문이 이제야, 사건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추궁으로 방향을 틀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

1975년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일시보호사업’을 부산시로부터 위탁받았다. 경찰이, 구청이, 가족이 보내거나, 스스로 형제복지원을 찾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부랑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래서 먹이는 대로 먹어야 했고,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고, 때리는 대로 맞아야 했다. 너무 늦었지만 1987년 형제복지원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확인된 사망자만 531명이었다.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으나 2년 6개월의 징역이 선고됐을 뿐이다. 그마저도 업무상 횡령, 건축법 위반 등에 대한 벌이었고,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받았다. 가두고 때리고 죽인 것조차.

이미 박인근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1975년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부랑인’을 단속하고 수용하도록 했다. 1981년,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신체장애자 구걸행각”을 “관계부처 협조 하에 일정 단속보호조치하고 대책과 결과를 보고”하도록 총리에게 요청한 서신도 확인되었다. 1986년 당시 수용인 3,975명 중 3,117명이 경찰에 의해, 253명이 구청에 의해 수용되었다. 부산시는 자신이 위탁한 업무에 대해 행정지도나 감사도 전혀 하지 않았고, 주 1회 순찰할 의무가 있었던 파출소장은 한 번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형제복지원이 저지른 범죄에 국가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조직을 통해 벌어진 범죄가 형제복지원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은 규명되어야 한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라는 질문이 “정말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는 대답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들이 조사되어야 한다. 눈앞에 드러난 범죄자 박인근이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들에게 마땅한 사과를 전해야 한다. ‘부랑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구조화한 국가기구의 책임이 밝혀져야 한다. 24일 발의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률’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진실은 이미 드러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상 규명의 약속은 진실에 동참하겠다는 선언이어야 한다.

진실에 동참한다는 것

형제복지원에 있어야 했던 사람들이 전하는 증언, 짐작과 의혹, 고통과 분노는 모두 진실이다. 진실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는 “그런 일이 어떻게 있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함께 쥐어야 한다. 형제복지원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할 때 ‘악의 평범성’도 동시에 기억해야 한다. 이 말은 자신의 악을 깨닫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악을 저지른다는 뜻 이상이다. 누구든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악은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묻게 되는 일이 당시에는 ‘그럴 만한 일’, 그래서 악이 아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빈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개인의 특성 탓으로 돌리고, 가난한 사람은 사회 질서를 해칠 뿐이니 가두고 교화시켜야 한다는 인식. 현재진행형이다. 2012년 서울역파출소는 노숙인과 관련해 경찰에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했다. 보기는 세 가지다. 엄정처벌, 격리 수용, 보호조치. 2014년 광주지방경찰청은 “박근혜 정권 물러나라”고 낙서한 사람을 찾기 위해 광주시 5개 구청에 협조공문을 보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인적사항을 제공해 달라.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를 주장할 때마다 부딪치는 벽이 있다. 시설장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데……. 누군가 겪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여전히 ‘그럴 만한 일’로 수용하는 사회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분노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피해생존자들이 어렵게 용기 내어 말하기 시작한 진실을 구경하는 것에 머물 뿐이다. 진실에 동참한다는 것은, 악의 관찰자가 아니라 악을 만들어내는 사회에 이미 가담한 자로 자신의 위치를 옮기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이 사회를 바꾸기 시작할 수 있다.

진상 규명의 약속

피해생존자들이 한결같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진상 규명이다. 더 이상 자신들과 비슷한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진상 규명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누구도 잃어버린 시간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진실에 동참하는 것은 새로운 시간을 함께 만들자는 약속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전하는 진실이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악에 대한 분노가 몇몇 개인에 대한 분노로 탕진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도 진행 중인 악에 맞서고 있는 또 다른 목소리들과 이어지며 새로운 시간이 생산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