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의 분수령인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써 33년이다. 광주항쟁 이후에 사람들은 광주희생자들의 고통에 동조하여 투쟁에 나서, 5월 광주는 마침내 민주화운동이라는 정치적 인정을 얻었다. 광주와 관련하여 미해결의 과제도 많겠지만 광주를 진원지로 한 과거청산운동은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며 한국사회를 바꾸었다. 울산보도연맹원 집단살해사건에 대한 2011년 대법원의 국가배상 판결이나 긴급조치 1,2,9호를 위헌이라고 선언한 2013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 운동의 사법적 정점을 찍었다고 할 만하다. 이제 다시 과거청산운동을 성찰케 하는 사건을 만나게 되었다. 운동은 말하자면 소리 없는 것들의 소리 듣기요, 당사자운동조차 가눌 수 없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기다. 이 때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의 목소리가 퍼져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3월에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까지 무려 12년간 정부당국의 수용정책과 시설운영자들의 경제적 타산이 빚어낸 끔찍한 인권침해사건이다. 정부는 1975년 12월 15일 내무부 훈령 410호(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사무처리지침)에 입각하여 부랑자를 시설에 수용할 권한을 창설하고 거액의 예산도 지원하고, 경찰과 시설운영자들은 부랑인을 거리에서 사냥하고 강제로 수용하고, 시설운영자는 노예노동을 강제하고,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철저한 감시망 속에서 수용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열악한 생활조건과 의료여건으로 수용자를 학대함으로써 다수를 사망케 하였다. 부산형제복지원은 1987년 당시에 3,500여명을 수용하였으며, 12년간 사망자수는 513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의 덮어버리기 시도 앞에서 사인을 규명하지도 못했고, 그 책임도 추궁하지 못했다. 이 총제적인 인권침해사건이 복지원의 시설운영자 한 개인의 비리로 축소되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 때 무일푼으로 복지원에서 해방되었다.
파시스트적 거버넌스
사회적 주변인이라고 상정된 그룹을 사냥하여 수용하고, 노예노동을 강제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조치는 당연히 국가범죄에 해당한다. 복지원 시설을 운영하는 개인이 여기에 가담했다고 해서 국가범죄성이 결코 희석되지 않는다. 국가의 공격적 프로그램과 시설운영자측의 감시관리체제가 결합하여 파시스트적 거버넌스를 형성한 것이다. 영화 ‘신들러 리스트’처럼 형제복지원에서도 강제수용과 노동착취는 뗄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중 강제노동 피해자로서 세계각지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1999년에 톰 헤이든의 발의로 도입한 캘리포니아주 <강제징용특별배상법>에 따라 독일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독일정부와 독일기업은 거액을 출연하여 <기억책임미래재단>을 발족시키고 강제노동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그 여파로 식민지 시대에 강제징용된 한국인 피해자들도 일본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중의 강제노동은 전쟁범죄로도 취급되었다. 물론 형제복지원 사건에서의 강제수용과 강제노동은 전시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므로 전쟁범죄라고 할 수 없지만 인권의 총체적 침해로서 인도에 반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고 능히 규정할만하다.
그와 같이 심각한 인권범죄임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은 지난 한편 1987년 당시에 시설운영자 박인근 씨에 대한 떠들썩한 형사재판이 그의 민사책임뿐만 아니라 수용, 강제노동, 사망에 관한 국가책임도 깔끔하게 묻어버린 것이다. 사회적 골치거리들은 어차피 어딘가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청결유토피아가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였기 때문에 박씨를 욕 한번 하고 잊어줄 일이었다. 만일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이 2005년에 적절한 조력자들과 결합하였더라면 형제복지원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모든 면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제2조 4호가 말하는 “위법 또는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사건, 그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해체되고 말았다.
나치의 노동혐오 왕국 작전
그렇다면 인권침해사건으로서 형제복지원 사건은 앞으로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 이제 피해자들의 권리는 어떻게 구제될까? 형제복지원과 유사한 강제수용소가 대전, 인천, 해남, 수원, 서울, 동두천, 마산 등전국 각지에 설치되었다는 점을 볼 때 국가적 차원에서 부랑인들을 예비범죄자로 취급했다는 사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수용소, 강제수용소라면 그 본질은 어디서나 똑같다. 강제로 수용하고, 탈출은 불가능하고, 강제노동을 해야 하고, 죽어가도 상관없는...
형제복지원은 나치시대에 시행된 서브프롤레타리아의 강제수용정책과 동일하다. 나치독일은 1938년 인종법시행령에 따라 비록 범죄자는 아니지만 반공동체적 행위를 하는 사람을 반사회적 존재라고 규정하였다. 나치체제에서 부랑자, 걸인, 매춘부, 집시, 알콜중독자, 전염병 및 성병 보균자 등이 반사회적 존재로 분류되었다. 경찰은 노동혐오 왕국(Arbeitsscheu Reich) 작전을 통해 1938년 6월 13일부터 18일 사이에 ‘반사회적’이라고 분류된 사람들을 20,000명 이상 체포하여 강제수용소에 입소시켰다. 작센하우젠 수용소에만 약 6,000명이 구금되었고, 이들은 수용소에서 반사회적 존재로서 검정색 인식표를 패용했다. 독일은 제2차세계대전후 1956년에 나치보상법을 제정하여 나치체제의 희생자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 보상법은 세계관, 종교, 인종 또는 정치적 이유로 나치의 박해를 받은 사람들, 예컨대, 저항활동가나 유대인 등에게 보상을 제공하였다. 탈영병, 병역거부자, 강제노동자, 동성애자, 집시(신티족과 로마족), 강제불임자, 안락사생존자 등은 오랫동안 희생자축에 끼지 못하였다. 독일정부는 반사회적 집단에 대한 억압은 나치즘과 무관한 것, 즉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정상적 사회정책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일정한 생활지원금을 획득하는 데에 오랜 투쟁이 필요하였다. 아마도 우리사회에서 삼청교육대 피해자나 형제복지원 강제수용자들이 이러한 부류에 해당할 것이다.
진실에 대한 권리
유엔은 총회에서 <권력범죄와 권력남용의 피해자를 위한 정의의 기본원칙(1985)>과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의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2006)>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원칙들은 국가범죄를 청산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기준이다. 특히 2006년의 가이드라인은 ‘피해자의 국제권리장전’이라 불린다. 이 권리장전 제11조는 피해자의 주요한 권리로서 재판받을 권리(the right to justice), 배상받을 권리(the right to reparation), 진실을 알 권리(the right to know)를 제시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의 희생자들과 그 친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알 권리 또는 진실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ruth)이다. 그것은 그들의 권리투쟁에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제인권법에서 진실에 대한 권리는 피해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권리라는 데까지 법리가 발전하고 있다. 유럽인권법원이나 미주인권법원은 강제실종사건에서 유럽인권협약이나 미주인권협약상의 ‘재판받을 권리’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고 굴욕적인 처우금지’로부터 진실에 대한 권리를 이끌어낸다. 한국이 가입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도 똑같은 권리조항을 두고 있으므로 그 해법을 유추할 수 있겠다.
2005년 유엔인권위원회가 채택한 <개정판 불처벌투쟁 원칙>은 “온갖 법적 절차에 상관없이 피해자와 그 가족은 인권침해가 발생했던 상황, 그리고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실종된 경우에는 그 피해자의 운명에 관한 진실에 대하여 시효로 소멸하지 않는 알 권리(the imprescriptible right to know the truth)를 가진다”고 선언한다(제4원칙: 피해자의 알 권리). 국가 책임과 관련된 범위 안에서 자행된 실종, 사망, 피해에 대하여 진실규명을 요구할 권리가 인정된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모든 과거사에 대한 재론의 출발점이다. 진실에 대한 권리를 우리 법구조 안에서 행사할 수 있다는 결론은 현행 국가재정법 제96조(금전채권·채무의 소멸시효)의 반대해석에 의해서도 나온다. 국가재정법은 금전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채권에 관해서 소멸시효를 규정하지만, 역으로 진실에 대한 권리와 같은 비금전적 권리는 처음부터 시효에 걸리지도 않는다. 따라서 불처벌투쟁 원칙, 헌법상의 재판청구권, 국가재정법, 정보공개법에 기초하여 진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진실에 대한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지만 경시되어서는 안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진실규명에서 탈시설까지
유신의 절정기인 1975년 이후 전국적으로 설치된 수용소들의 인권침해실태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용소에 관한 공사의 모든 기록과 자료를 수집하고 백서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 총체적인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법률적 수단으로서 진실에 대한 권리를 활용해야 한다. 이때 누구를 상대로 법률투쟁을 시작할 것인지 고민스러울 수 있다. 국회,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안전행정부, 보건복지부 등 가능한 모든 국가기관 그리고 수용시설에 대해 진실에 대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국가기구들이 진실에 대한 권리를 충족시킬 정도로 수용소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하고 공개하는 때에는 공개된 정보에 근거하여 피해자들은 울산보도연맹사건 판결에 나타난 신의칙 법리를 활용할 수 있겠다. 울산보도연맹원 집단학살 사건에서 대법원은 학살과 피해자들에 관한 정보를 은폐하였던 국가가 이제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독일의 강제노동사건에서 보듯이, 복지원사건에서 배상책임은 인권침해의 법적 토대를 마련한 국가와, 시설을 통해 부정한 재산을 축적한 시설운영자가 공동으로 져야 할 것이다. 물론 사법적인 소송수단 말고도, 조사결과에 기초하여 적절한 보상법을 제정하는 방식도 있다. 한편, 국가기구들이 진실규명의무를 적절하게 이행하지 않는 때에는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활용하고, 그들이 여전히 불처벌 상황을 방치하는 때에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해법을 타진해볼 수도 있겠다. 자유권규약위원회가 미주인권위원회나 인권법원이 전개한 실종에 관한 법리를 원용한다면 긍정적인 결론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적절한 배상을 제공하지 않는 행위는 그 자체로 자유권 규약상의 “기타 잔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제7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시설의 인권침해는 언제나 시설운영자에게 형사책임을 지우면서 마무리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처벌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마하는 방식에 가깝다. 만일 사회적 문제꺼리를 어딘가에 가두자는 데에 동의하고, 누군가는 대신 관리해야 한다는 데에도 동의한다면 잔혹한 인권침해사태는 언제나 문 앞에서 기다리는 법이다. 그래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려는 흐름은 의식의 저변에 자리 잡은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청결유토피아를 청산하자는 결의이며, 세금을 몇 푼 더 내 그들을 처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살자는 운동이다.
덧붙임
이재승 님은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