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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진실에 대한 권리 연구

-유엔인권최고대표실, 2006

옛 가요 중에 “알고 싶어요”가 있다. 사랑하는 이가 누굴 생각하고 무슨 꿈을 꾸고 뭘 하는지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란 가사였다. ‘평상시에도 그대 생각만으로 저런 애틋한 궁금함이 넘칠 수 있구나!’, 그 간절한 물음표에 가슴이 긁히던 노래였다. 요즘은 가요가 아닌 현실로 “알고 싶어요”를 하염없이 듣는다. ‘그대’가 납득 못할 불의한 일을 당했는데, 그에 대한 충분한 해명도 책임지는 모습도 없는데, 벌어진 일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 하지 말라니 그 애절한 물음표를 놓을 수가 없다. ‘그대’의 가까운 친지는 말할 것도 없고 삶터를 공유하는 전체 구성원은 물음표를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솔직히 다른 말이 별로 필요 없다. 심각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가 있을 때, 관련된 사람들이 벌어진 일에 대해 알고 싶은 건 당연하다. 국제인권에서는 그 당연함을 “진실에 대한 권리”로 표현했다. 이 권리에는 “양도불가능한”, “훼손이 불가능한” 권리라는 수식이 붙었다.

<진실에 대한 권리 연구>, 이 연구 보고서는 유엔인권최고대표가 유엔인권위원회(현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안에 따라 작성한 것이다. 전문가 토론을 거치고 여러 정부, 관련 국제기구, 민간단체의 견해를 종합했다. 이 보고서의 정의에 따르면, ‘진실에 대한 권리’는 피해자를 낳은 특정 사건에 관한 정보를 구할 권리를 포괄한다. 벌어진 사건, 인권 침해가 발생한 구체적 상황, 누가 그 사건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완전한 진실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에 대한 권리의 뿌리는 국제인도주의법이다. 교전 중인 적대 관계에서도 지켜야할 원칙이 있기에 분쟁 시에 적용되는 게 국제인도주의법이라면 평시에 적용되는 게 국제인권법이다. 비사법적 처형, 강제 실종 등 인도주의법에 대한 위반과 인권에 대한 극악한 침해와 관련해서 발동되는 것이 진실에 대한 권리이다. 아무리 적대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피해자의 운명에 대해 가족은 알 권리가 있다고 했다.

무력분쟁 상황에서도 ‘진실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는데, 하물며 평시에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일에 대해서, 법의 지배를 내건 민주사회의 정부가 진상규명을 할 수 없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해 당연하고 효과적인 조사를 수행할 국가의 의무와 짝을 이룬다. 진실 규명 없이 효과적인 구제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수행할 수는 없다.

인권 침해는 그 당연한 의무에 대한 부정으로 악화된다. ‘인권 침해’라 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일’, ‘불가피한 일’로 치부되는 한, ‘알려고 들면 다쳐’라는 위협과 협박이 지배적인 한, 정치에 대한 신뢰나 같이 살아갈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자랄 수 없다. 그런 신뢰와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는 각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보이지 않는 비상구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진실을 구하는 건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전체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국제사회는 지적한다. 진실 규명은 ‘불처벌’(impunity)을 끝내기 위해 밟아야 할 필수 단계이다. ‘불처벌’이란 법률상 또는 사실상, 인권 침해 가해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말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진실에 대한 권리가 국가 기구의 작동에 대한 신뢰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주목했다. 또한 피해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알 수 없게 하는 것은 회복을 방해하는 “침묵의 장벽과 비밀의 망토”라고 비판했다. 이 장벽을 부수고 망토를 벗기지 않고서야 신뢰의 정치공동체란 걸 어떻게 꿈꿀 수 있는지 정말 알고 싶다.

알고 싶어서 분노한 사람들의 줄이 길다. 숱한 이들이 염려하듯 세월호 참사는 벌어졌고 또 벌어질 참사의 이름 중 하나이다. 세월호의 질문에 대한 무시는 다른 문제들에 대한 질문도 허용치 않는다. 형제복지원 등 과거에 저질러진 인권 침해의 피해자들,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은 해고노동자들, 삶의 터전에 송전탑이나 군사기지가 덜컥 내리꽂힌 주민들, 일터에서 허구한 날 목숨을 잃는 산재 피해자들, 성폭력에 내몰린 아동과 여성들, 군대에 가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청년들, 공권력 감시와 사찰의 피해자들……. “진실은 인간 존엄성에 근본적인 것”이라는 보고서의 문구처럼, 이들이 외치는 ‘알고 싶어요’는 피해자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의 출발점이다. 또 다른 피해자의 발생을 막는 방패요, 전체 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나침반이 ‘알고 싶어요’에 담겨 있다.

사진 출처: 미디어충청

▲ 사진 출처: 미디어충청


진실에 대한 권리 연구(유엔인권최고대표실, E/CN.4/2006/91, 2006)

1. 이 연구는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 2005/66에 따른 것으로, 유엔인권최고대표실은 진실에 대한 권리에 대한 연구를 요청받았다. 여기에는 국제법에 따른 이 권리의 기초, 범위, 내용에 대한 정보와 효과적 이행을 위한 최상의 실천과 권고들이 포함된다. 특히 이를 위해 채택될 수 있는 법적, 행정적, 기타의 조치들이 포함된다. 이 보고서는 여러 국가, 관련 정부 간 조직과 민간단체의 견해를 고려한 것이다.

4. ‘불처벌 방지 행동을 통한 인권의 보호와 증진 원칙(E/CN.4/2005/102/Add.1)’의 2항은 “모든 사람은 극악한 범죄의 자행에 관하여, 과거의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한다. 또한 이 원칙 4항에서는 “법적 절차가 무엇이건 간에, 침해가 발생한 상황에 대한 진실에 대해, 죽음이나 실종의 경우 피해자의 운명에 대해, 피해자와 그 가족은 시효에 제약을 받지 않는 알 권리를 갖는다.”고 밝히고 있다.

5. 진실에 대한 권리의 개념은 인권 침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빚진 것으로 최근 수 십 년간 중요성이 커져왔다. 역사적으로, 이 개념은 국제인도주의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특히 무력분쟁의 양 당사자들의 실종자를 찾을 의무와 더불어 친지들의 운명에 대해 가족의 알 권리와 관련된 것이다.

9. 보다 최근에는, 진실에 대한 권리가 여러 국제조약과 정부 간 메커니즘에서 명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불처벌에 맞선 싸움, 국내 난민이 친지의 운명에 대해 알 권리,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와 배상의 맥락 속에서 진실에 대한 권리가 인용돼왔다.

10. 진실에 대한 권리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다른 국제조약들은 조사의 결과에 접근할 관련자의 권리와 신속하고 효과적인 사법적 구제를 보장할 권리로 이 문제를 암묵적으로 다루고 있다.

11. 인종차별철폐대회 같은 정부 간 회의들은 역사의 사실과 진실에 대해 가르쳐야 할 중요성을 확언하는 선언들을 내놓았다. 그 목적은 과거의 비극에 대한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15. 다양한 메커니즘들은 수임사항, 절차, 구성과 목적 등에서 크게 다르지만 대부분 사건을 조사하고 원인을 분석하려 한다. 그 목적은 신뢰할만한 역사적 기록을 만듦으로써 그런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어떤 장치는 피해자와 가해자와 광의의 사회가 침해에 대해 공적으로 토론하는 카타르시스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고, 흔히 화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며, 때론 정의의 조치를 성취하는 것이다.

25. 진실에 대한 권리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해 효과적인 조사를 수행할 국가의 의무, 그리고 효과적인 사법적 구제에 대한 권리와 연관돼 제기됐다.

27. 진실에 대한 권리는 또한 가족에 대한 보호(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 23조), 국적‧이름‧가족관계 등을 포함하여 정체성을 보존할 아동의 권리(아동권리협약 제8조 등)와 관련해 제기됐다.

28. 유럽인권재판소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실종된 사람”의 “소재와 운명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 효과적인 조사를 국가가 수행하지 않는 것은 생명권 보호에 대한 국가의 절차적 의무의 지속적 침해를 구성한다고 결정했다. … ‘아프리카 인간과 인민의 권리 위원회’는 진실에 대한 권리가 효과적인 구제에 대한 권리의 기본구성요소를 형성한다고 했다.

35. 국제인권법은 진실에 대한 권리를 피해자와 그 친지 또는 그들의 대리인에게 부여하고 있다.

36. “피해자”의 개념은 집단적인 차원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진실에 대한 권리는 개인의 권리와 집단적 권리 둘 다로 이해할 수 있다. ‘심각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를 위한 구제와 배상의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은 “사실 확인 그리고 완전하고 공적인 진실의 공개”가 배상의 내용 중 하나라고 분명히 말한다. 또 “모든 사람은 과거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 할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한다. 진실을 알 사회의 권리를 여러 인권 기구가 인정해왔다. 가령 미주인권재판소는 “전체로서의 사회는 침해와 관련해 벌어진 모든 것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고 했다.

38. 역사적으로, 진실에 대한 권리는 처음에는 실종과 연관됐고 그 내용은 실종자의 운명과 행방에 대한 아는 걸 강조했다. 하지만 진실을 알 권리에 관한 국제법은 심각한 인권 침해의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으로 전개됐다. 진실에 대한 권리의 범위는 다른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요약하면 다음 사항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 획득할 권리이다.
- 사람의 희생을 초래한 원인, 국제인권법과 인도주의법에 대한 심각한 침해와 관련된 원인과 조건, 조사의 진전과 결과, 국제법상 범죄와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한 환경과 원인, 침해가 벌어진 환경, 죽음 또는 실종 또는 강제 실종의 경우에 피해자의 운명과 행방, 가해자의 정체

43. 진실에 대한 권리와 표현의 자유(정보를 구하고 전달할 권리를 포함하는)는 연결돼있다. 정보를 구할 권리는 진실에 대한 권리 실현에 도구적 권리일 수 있지만, 두 권리는 다른 별개의 권리를 구성한다. 정보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국제법 하에서 특정 이유로 제한될 수 있기에, 진실에 대한 권리가 어떤 환경에서 제한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52. 정보에 대한 접근, 특히 공적 기록보관소에 대한 접근은 진실에 대한 권리의 행사에 아주 중요하다.

55. 심각한 인권 침해와 인도주의법의 심각한 침해와 관련, 진실에 대한 권리는 양도할 수 없는 자동적인 권리로서 여러 국제조약 등에서 인정되고 있다.

56. 진실에 대한 권리는 인권을 보호하고 보장할 국가의 의무와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해 효과적인 조사를 수행하고 효과적인 구제와 배상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와 밀접히 연결된다. 또한 진실에 대한 권리는 법의 지배와 민주 사회의 투명성‧책임성‧훌륭한 통치의 원칙과 밀접히 연결된다.

57. 진실에 대한 권리는 여타의 권리들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가령 효과적인 구제에 대한 권리, 법률과 사법의 보호에 대한 권리, 가족생활에 대한 권리, 효과적인 조사에 대한 권리, 능력 있고 독립적이며 공정한 법원에서 심리될 권리, 배상에 대한 권리, 고문과 학대를 받지 않을 권리, 정보를 추구하고 전달할 권리 등이다. 진실은 인간의 내재적 존엄성에 근본적인 것이다.

58. 심각한 인권 침해의 경우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진실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진실에 대한 권리에는 또한 사회적인 차원이 있다. 그런 사건이 미래에 재발하지 않도록, 극악한 범죄가 저질러진 상황과 그 이유, 범행에 관한 과거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 권리가 사회에 있다.

59. 진실에 대한 권리는 인권 침해의 이유와 침해가 발생한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을 포함하여 발생한 사건에 대한 완전하고 완벽한 진실, 사건의 구체적 상황, 그리고 누가 사건에 참여했는지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60. 독립적 권리로서 진실에 대한 권리는 개인의 기본권이므로 제한을 가할 수 없는 것이다. 고문과 학대에 처하지 않을 권리처럼, 양도불가능한 성격과 훼손불가능한 여타 권리들과의 밀접성 때문에, 진실에 대한 권리는 훼손불가능한 권리로 다뤄져야만 한다. 사면 또는 유사한 조치들, 정보를 구할 권리에 대한 제한은 진실에 대한 권리를 제한하고 부정하거나 손상할 목적으로 이용돼서는 결코 안 된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인권 침해에 대한 불처벌을 근절해야하는 국가의 의무와 밀접히 연관된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