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상임활동가)
전 올해로 상임활동 만 4년이 됩니다. 원래 꼼꼼하지 않고, 절대 미리 하지 않아 후달려하는 편이긴 하지만, 요즘은 정말 정신없어 보인다는 얘길 자주 듣습니다. 최근 장수마을에서 함께 활동하는 분께서 응원으로 여겨지는 문자메세지를 보내주셨는데, ‘늘 동분서주해보인다’는 충격적인 말. 뭔가 씁쓸함으로 남더군요. 친구랑 약속을 잡던 중 ‘그 날은 일정이 있어서 안돼’라고 했더니, 막 웃더군요. 보통 ‘일정이 있다’는 표현은 잘 쓰질 않는다며, ‘니가 연예인이냐’ 그러는데, 어쩌다 보니 일상 언어랑은 거리가 좀 있는 활동가 언어(?)를 내가 익숙하게 쓰고 있구나, 새삼스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저는 이전부터 해온 성북 장수마을에서의 대안개발연구모임 외에 정책조직팀, 반성폭력위원회, 그리고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인권오름 편집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제가 텍스트에 취약합니다.) 일주일을 반으로 쪼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요일까지는 인권오름으로 후달리고, 토요일까지는 대안개발연구모임 활동으로 후달리고. 내년이 사랑방 20주년이라 사랑방 조직운영과 운동의 역사를 정리하고, 향후 전망에 대한 논의를 준비․진행하는 것이 정책조직팀 주요 활동계획이었어요. 그래서 그 무게감으로 올해가 만만치 않겠다 생각했는데 구체적으로 들어오는 다른 일들에 묻혀 어느새 정책조직팀 활동은 뒷전으로 하고 있었네요. 반성폭력위원회 활동도 그렇고요.
얼마 전 인권오름 편집인으로 처음 기획이란 것을 해보았어요. 인권영화제 관련 연재기사였는데, 제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ㅋ 요즘 인권연구소 창에서 하는 <장소와 인권>이란 강좌를 듣고 있는데, 저 스스로 정리되지 않은 ‘장소/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보고 싶었던 욕구가 강했었나 봐요. 모호한 상태로 청탁을 하면서 필자 분들이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불분명한 기획의도를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안식년 중이지만 집이 근처라는 이유로 이전 편집인인 미류에게도 참 몹쓸 짓을 했었지요. 원래 잘 먹는 술이 더 늘 수밖에 없었지만, 기획의도가 분명해야 하고, 그것이 청탁하는 필자에게 잘 전달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ㅎ 수요일마다 스트레스 아우라를 마구 뿜어대고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조금은 더 괜찮아지겠지요?
2008년 여름 사랑방 상임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 하고 있는 대안개발연구모임의 장수마을 활동. 이것 또한 고민이 참 많습니다. 어느덧 장수마을과 인연을 맺은 지 5년이 되었어요. 삼선4구역이라고 개발사업에 의해 명명된 동네에서 주민들과 만나 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집과 동네의 불편한 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바뀌면 좋은지 등등을 함께 이야기 나누는 워크숍도 하고, 마을의 방향을 함께 얘기 나누고 싶어 총회도 열고, 마을회의도 하고... 2008년 주민워크숍에서 우리 동네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보자 하여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데 모두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장수마을’이라 지었거든요. 겸사겸사 마을 주민들이 장수막걸리 애호가이기도 하고요. 근데 그 ‘장수마을’이 이젠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도 되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 되었어요. 철거하고 새로 공동주택을 짓는 방식은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하는 것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벽 앞에 부딪히면서, 오르락내리락 커뮤니티가 남아있는 골목길, 농사꾼 저리가라 바가지, 스티로폼, 나무상자 그 무엇이건 생명력 넘치는 텃밭으로 일궈내는 주민들의 장기가 계속 유지되도록 하자, 그러면서 집의 불편한 점을 각자 부담 가능한 선에서 조금씩 고쳐나가자 그렇게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좀 더 일상 안에서 주민들을 만나고 싶어서 동네 안에 사랑방이라는 거점을 만들기도 하고, 벼룩시장도 열고, 마을학교도 하고, 집도 고치고 주민들 일자리도 만드는 마을회사 <동네목수>도 만들고... 작지만 소중한 싹들을 틔워왔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이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장수마을 특성화마을 만들기 시범사업화 과정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더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쬐끔(보다는 많이) 있어요.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용역 수행 기간이 내년 봄까지인데, 어차피 해야 할 것이라면 그간의 고민을 다시금 잘 정리해보는 계기로 삼고, 어떻게든 주민 한 사람이라도 더 이 과정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달려보자 맘을 먹고 있습니다. 사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로 장수마을에서 대안개발연구모임 활동을 하면서 어떤 가능성(그리고 한계)을 보았는지 얘길 하기가 참 막막하고 어려웠어요. 5년째 동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나야 할 주민 덩어리(집단)’에서 자본 언니, 오광석 어르신, 정민이 엄마, 수현 어린이 등등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 지금은 그 얘기밖에 못할 것 같아요.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인연을 더욱 다채롭게 맺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뭐든 가능성은 거기서부터 시작일 것 같고요.
▲ 장수마을 작은카페 개업식 고사상 앞에서 기념촬영. 돼지코가 접니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단지 분주할 뿐인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술도 많이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짜증을 많이 부렸던 것 같아요. 청계광장에서 열린 인권영화제 4일, 모두들 정말 열심히 달렸습니다. (뒷풀이도 꼬박꼬박 했지요.) 그리고 다시 한 숨 돌리면서 시작하는 6월. 조금은 여유 있게, 건강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해도 발랄함으로 무장을 하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어보려 합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면 더위와 과로로 멘붕 상태가 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쬐끔이라도 의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작년 희망버스 기간 동안 자유권팀 활동가들이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많이 했어요. 작년 5차 희망버스 때 인권침해감시활동을 벌였던 훈창 활동가, 검찰이 공무집행방해라고 해서 부산을 오가며 활동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