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돈 없으면 소송도 못하나

북 게시물 삭제명령 취소 소송비용 대응을 하며

북한과 관련됐다는 이유만으로 자유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라온 게시물들을 삭제하라는 방송통신위원회 명령에 거부하며 진행한 행정소송에서 패소하고 5년이 흘러 작년 봄 사무실로 날라온 패소비용 청구서, 얄팍한 종이에는 23,130,000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적혀있었다. 행정소송 진행 당시, 1심과 2심, 패소 결정이 났을 때마다 항소, 상고를 할지 논의하면서 이후 부담해야 할 소송비용에 대한 걱정을 하긴 했었다. 부담이 컸지만, 그 때문에 부당함을 다투고자 제기했던 소송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나 그 기억이 흐릿해지고 가물거리게 된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청구되다니, 그 액수 또한 0이 하나 잘못 붙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랐다. 행정소송 당시 소송을 제기하는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하며 무상으로 소송을 맡아줬던 희망법 변호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청구한 액수가 그대로 인정되진 않을 거라고,「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따라 계산된 액수만큼 법원이 결정할 거라고 얘기해주셨다. 그리고 법원은 규칙에 따라 7,821,580원을 확정한다는 결정문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 또한 결코 적은 비용도 아닐뿐더러 국가기구의 부당한 명령을 다투는 소송조차 여타 민사소송과 동일한 방식으로 국가기구가 패소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문제라고 보았다. 당시 각 지방 경찰서 정보보안과들은 단체들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게시판을 문제 삼으며 연락을 해왔는데, 이명박 정권 하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사찰문제가 이후 드러나기도 했다. 게시물 삭제명령의 이유가 국가보안법상 금지하는 정보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는데, 매년 1만 건 수준이었던 경찰의 삭제요청 건수가 이 시기에는 약 8만 건으로 급증했고, 이때 인터넷 게시물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며 형사처벌을 받은 건수가 가장 많았다. 남북관계가 달라질 물꼬가 트인 2018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정보를 알리는 보도도 한창인데, 이런 변화의 시기 단지 북한과 관련된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삭제하란 명령에 불복했던 것이 거액의 소송비용으로 돌아오다니, 그래서 법원이 확정한 소송비용액을 인정할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 한총련에 홈페이지 서버를 제공했던 진보넷도 이적단체니 홈페이지를 폐쇄하라는 명령을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았고, 이에 대해 취소 처분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거액의 소송비용이 청구됐다. 이러한 문제는 다양한 공익소송을 진행하면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겪고 있을 것이기에 현황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생태를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의 시행계획 취소소송, 일본산 수산물 방사능 위험평가서 정보공개 청구소송, 시외저상버스가 없어서 장애인 이동권이 배제되고 있다는 국가배상청구소송... 국가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되고, 잘못된 정책과 제도로 인해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벌인 공익소송의 결과는 패소였다. 반대 여론을 무시하며 폭력적으로 강행한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국방부를 상대로 벌인 정보 비공개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단체들에 소송비용으로 국방부가 2천여만 원 상환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지난 9월 전해지기도 했다.

 

사랑방은 법원이 확정한 7,821,580원을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어 소송비용액에 대한 소송을 다시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활동하면서 소송 당사자로 진행한 소송이 많지도 않고, 특별히 ‘공익소송’이라고 의식하며 진행하지 않았는데, 소송비용 대응 과정에서 공익소송에 대해 몇 가지 고민이 들었다. 사건의 개별성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로 확장하며 어떻게 문제를 설정할 것인지 결국 프레임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활동을 해나갈 때 주요하게 고려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공익소송이 있는데, 그럴 때 법원의 권위에만 기대는 건 아닐지 긴장을 유지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어떤 결정인지에 따라 그것이 근거가 되어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소송은 더욱 결과가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승소가능성을 높여 좋은 선례가 되면 좋겠지만, 공익소송에서 주장하는 바들이 법원의 주류적 판례에서 인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성패라는 결과만을 바라보며 법원에만 내맡길 게 아니라,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송을 제기하게 된 문제의식을 더욱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기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를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방 소송비용은 2심에서도 1심 액수가 그대로 인정되어 재항고를 진행, 이제 대법원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후 부담해야 할 소송비용으로 부당함에 맞서는 시도가 위축되지 않도록 사랑방의 상황을 알리고 소송비용 마련을 위해 개설한 후원함에 많은 분들이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셨다. 뒤늦게나마 이렇게 공익소송을 가로막을 수 있는 소송비용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지난 9월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사법개혁의 우선추진 정책으로 ‘국가 등을 상대로 한 공익소송의 경우 원고가 패소해도 소송비용을 경감해주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소송비용이 그대로 인정되지 않길 바라지만 당장의 결과가 비록 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과정이 만들어낼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