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3차 본회의가 무산되었다.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을 두고 합의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경사노위는 정부가 노동자, 사용자, 공익 대표를 불러 모아 사회적 대화의 방식으로 노동 정책과 관련된 제도 전반을 다루는 논의 테이블이다. 이런 논의 방식은 과거 노사정위원회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는 지나치게 정부와 사용자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된다는 비판을 받으며 2015년 이후 중단된 상태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다시 노-사-정이 모여 위원회의 준비과정, 구성원, 논의 방식을 새롭게 마련해 경사노위라는 이름으로 2018년 11월 출범했다. 그렇게 출발한 경사노위가 다시 사회적 대화를 이어나가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달리 첫 번째 관문을 넘지 못한 것이다.
누구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자리인가
흔히 노사정이 모여 사회적 대화를 한다는 것을 개별 회사에서 노동자와 사장이 노동조건을 두고 협상하는 단체협상의 확장판과 같은 자리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경사노위에서 노동자와 관련된 정책을 사회적 대화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노사정의 대표가 모여 앉아 한 테이블에 앉아서 논의한다는 것 이상이다. '사회적'이라는 말처럼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발 딛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에 대해 논의하고 그래서 어떻게 노동을 이어갈 것인지에 관한 '규칙'을 이야기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규칙은 법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실현된다.
문제는 같은 법과 제도에 적용을 받더라도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는 서로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작년 5월 정부와 국회가 일방적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했을 때 개정된 법에 따라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삭감된 노동자와 단체협상을 해서 임금을 보전할 수 있었던 노동자의 현실은 달랐다. 물론 노조가 있는 노동자 모두의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한국사회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상황은 분명해진다. 경사노위가 가져올 법과 제도의 변화는 노동조합이 있는 노동자보다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노동자의 권리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실제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시도한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이 누구의 현실을 흔들어 놓을지는 자명했다. 현행 탄력근로제를 회사에서 도입하면 노동 시간을 3개월 평균 주당 52시간으로 맞춰 필요에 따라 주당 최대 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경사노위에서는 이 탄력근로제의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까지 늘려 사용자가 장시간 노동을 더욱 쉽게 시킬 수 있도록 만들자는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간을 연장하는 만큼 노동시간 사이에 최소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보장 등 방지책을 마련했다고 말하지만 형식뿐인 노동자 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하면 방지책은 모두 지키지 않아도 된다. 2018년 7월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이 시작된다며 떠들썩했지만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30인 이하 사업장까지 완전히 도입되려면 2023년은 되어야 한다. 대다수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아직 회사 문턱 근처에도 오지 않은 시점에 노동자의 시간을 사장 마음대로 쥐락펴락하게 하는 정책에 합의를 시도한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는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에 앞장서 동의한 한국노총이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직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이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노총 산하의 금융노조는 이미 공문을 내렸다고 한다. 회사와 단체 협상을 할 때 '탄력근로제'라는 이야기만 나와도 협상에 응하지 말라는 '탄력근로제 논의 금지 지침'이란 제목의 공문을 말이다. 이렇게 사측과 협상하거나 싸울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탄력근로제는 싸움의 결과지만 그럴 수 없는 노동자들에게는 현실이 된다.
실패한 사회적 대화
대통령이 경사노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문한 내용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변할 기구"였다고 한다. 쉽지 않은 주문이었다. 90%의 노동자가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은 대다수 노동자의 목소리가 모이지 않고, 그래서 더욱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정부에서 정책을 선별하고 집행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회적 대화를 선택했다면 어떻게든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경사노위가 꾸려지는 과정부터 보면 정부의 의지가 대다수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사노위법은 노동자 위원의 구성 방법을 “전국적 규모의 총연합단체인 노동단체 대표자"와 그 노동단체가 추천하는 위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 구성 방법의 현실적인 한계를 논하기에 앞서 실제 청와대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과의 관계를 만드는 방식에 가장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은 불참했고, 경사노위 위원장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들은 민주노총을 압박했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고집하지 말고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경사노위로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을 비롯해 사업장내 파업 금지,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과 같은 정책을 논의하는 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을 기어코 앉히려는 모습은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기 충분했다. 정부는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합의해 줄 파트너를 구할 뿐이었다. 여성,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대표 3인이 합의에 거부해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을 위한 본회의가 무산됐을 때 의심은 확신이 됐다. 정부 측 위원이 이들 노동자 대표 3인을 '일부가 전체를 훼손했다'고 비난할 때 계층별 위원은 과거 노사정 위원회의 외연 확장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경사노위는 정책에 대한 합의만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 자체에 실패했다.
뭐가 됐든 '합의'만 필요했던 경사노위
경사노위 위원장은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에 동의한 위원들의 논의 과정을 모아 국회로 공을 넘기겠다고 한다. 그리고 국회는 경사노위보다 앞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에 합의를 마친 상태에서 경사노위의 결론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회적 대화에 실패했지만 정책의 집행은 예정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경사노위 위원장은 의결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이것도 고치겠다고 한다. 사회적 대화가 실패한 원인조차 돌아보지도 않는 모습이다. 애초부터 사회적 대화보단 '합의'가 목표였던 경사노위를 이제 와서 돌려세울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경사노위가 모든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이어간다는 말은 멈춰야 할 것이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사회적 대화보단 '합의'가 목표였던 경사노위
[인권으로 읽는 세상] 사회적 대화보단 '합의'가 목표였던 경사노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