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올해 전국인권활동가 대회가 열릴 수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규모가 큰 행사들의 취소가 잇따르던 시기였다. 인권활동가대회를 준비하는 활동가들이 개최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행여 이 대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한다면, ‘진보진영’의 회합이 사회에 큰 해악을 미쳤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질 질지도 몰랐다. 상상만 해도 골치가 아파졌다.
그런데 과연 이 시기 인권활동가들이 안 만나는 것만이 답일까? 만나지 않으면 안전한 걸까? 고민이 깊어질 무렵, 준비팀이 결의에 찬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러 우려 속에서 대회를 연기하기 보다 더 안전한 모임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하겠다는 문자였다. 이상하게도, ‘행사 취소’가 아니라 ‘일정대로 진행’ 메시지가 일종의 안도감을 주었다. 그리하여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충남 보령에서 제17회 전국인권활동가대회가 열렸다. 100여 명이 넘는 유례없이 많은 활동가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전이긴 했지만, ‘전 국민’이 몸을 사리는 시기임에는 분명했는데, 활동가들은 대체 어떤 기대를 품고 충남으로 모인 것일까?
매해 느끼는 것이지만 인권활동가대회는 야유회가 아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하는 영양가 높은 워크숍 같다고나 할까? 올해도 어김없이 프로그램은 매우 촘촘하게 구성되었고, 영양 면에서도 고열량이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아침 먹고 소모임을 하고, 점심 먹고 라운드테이블을 하고, 저녁 먹고 토크쇼를 하는 형식이랄까?
우리,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까?
이번 대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이었다. 지난해 말 인권재단사람과 인권운동더하기가 함께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를 전국인권활동가들과 나누는 시간은 의미이었다. 단체 재정이 불안정하고 최저임금에 준하는 활동비를 지급받고 있음에도, 5년 후에도 인권활동을 지속하고 싶은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76%의 활동가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그 인권운동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으로 활동을 통한 성취감과 만족감, 서로에게 힘이 되는 동료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이 공유되었다. 한편 인권활동가들이 갖추고 싶은 역량으로 회원확대 및 재정마련을 위한 모금이나 정세를 분석하는 역량이 꼽혔고, 정책 대안 제시, 글쓰기, 새로운 의제 발굴 등에 대한 역량을 갖추고 싶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조사 발표 이후 이어진 키워드별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됐다. 활동가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키워드는 ‘역량강화’였다. 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활동가들이 필요로 하는 역량은 곧 활동가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이기도 한 셈이다. 역량이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초능력이 아닌 이상, 일정한 시간 한 공간을 지키면서 생기는 노하우가 일종의 역량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일단은 오래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의 조건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떠올랐다.
대회 이튿날 이어진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은 달리 미사여구가 필요 없이 참 좋았다.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구체적인 노동인권원칙을 만들고 이를 명문화 작업을 한 경험, 함께 말하고 듣기 위한 노력, 갈등 없는 조직이 아니라 갈등을 잘 마주하는 단체가 되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이야기, 신입활동가를 맞이하기 전 1년 간 서로에게 힘이 되는 동료관계를 위해 조직 점검을 한 결과 공유, 평등하지 않은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섬세한 노력들을 펼치고 있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값지고 듣는 것이 곧 힘이 되는 경험이었다. 문득 전국에서 이렇게 많은 활동가들이 모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 활동가대회가 던져준 고민들
이번 대회에 모든 식단은 비건식이었다. 식사와 다과, 주류 및 안주 심지어 상비약까지 준비팀은 비건 성분을 담보했다. 인권활동가대회가 열린지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니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을 ‘배려’ 하기 위한 결정이라기 보다 육식 중심의 식단이 가지는 견고함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 출발이었다. 화장실도 성중립으로 표기되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화장실을 들고 나는 동안 혹여 다른 지정성별을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성별이 다른 사람을 화장실에서 만나는 일은 익숙하지 않음이 주는 불편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성별이분법에 대한 저항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이 모인 그 공간에서는 말이다.
왜 모이는 걸까
이번 활동가대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곤하게 잤다. 이박삼일 함께 하는 동안 아쉬움보다 좋았던 순간들이 많았다. 인권활동가대회는 이 사회에 인권활동이 계속 되는 한 그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한 가지 고민이라면 대회라는 말 앞에 ‘전국’ ‘인권’ ‘활동가’라는 말이 붙었으니 어떻게 전국에서 온 다양한 인권분야의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시간을 쌓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올해도 늘상 교류하던 사람들하고만 교류한 것 같아서 일종의 숙제가 생긴 기분이다. 모두가 더 잘 교류할 궁리를 하고 내년에 만나길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를 준비해준 준비팀 활동가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이들이 기꺼이 수고해준 덕분에 “우리, 인권운동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또 조금 찾은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