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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인권운동,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움직일까

토요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불온한 세상을 향한 인권'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인권운동포럼 주제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 같다. 여름에 진행된 연속토론 <문제적 인권, 운동의 문제>가 인권의 주요 가치들에 비추어 한국사회의 현실과 인권담론을 되짚어봤다면, 이번 포럼은 한국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주제들에 관해 인권운동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토론하는 자리였다. 같은 시간대에 두 개의 세션이 열려서 모두 여섯 개의 주제가 있었고 나는 세 개의 세션에 참여했다.

 

대항적 말하기를 위한 실천

 

오전에는 <가짜/진짜 프레임을 넘어서 - 대항적 말하기로 반차별운동의 힘 찾기>에 참여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관한 세션이었다. 2018년에는 예멘 난민의 입국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가짜난민'이라는 프레임이 혐오를 확산시켰다. 또한 '가짜뉴스'의 생산과 배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한겨레 탐사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짜'에 있는 것일까? 진짜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혐오표현을 규제하면 혐오는 사라질까? 규제 위주의 방식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면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난민인권센터의 고은지 활동가는 난민혐오에 대응하기 위해 한 해 동안 펼쳤던 다양한 활동을 소개하면서 고민을 나눠주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때로는 '질문을 거부하기'도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진짜난민 맞아요?" 난민의 권리를 말하려면 난민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해명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가짜뉴스의 진정한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난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대답하기 전에 난민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들이 '지금 여기' 있다는 점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겠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당사자조차도 '자격'을 먼저 증명해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담을 느끼게 되고 그럴수록 '대항적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대항적 말하기를 위해서는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퀴어문화축제가 불허되거나, 장소사용 허가가 이루어지더라도 혐오선동세력의 집회 방해로 개최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들이 수년간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그저 어떤 행사가 취소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의 이종걸 활동가는 극심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인천퀴어문화축제에 다녀온 경험을 나누면서, 꽤 오랜 기간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여러 혐오에 노출되었는데도 인천 이후에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휴가를 내고 잠시 바람쐬러 다녀오면서 겨우 마음을 추슬렀는데, 그럴 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커뮤니티의 존재였다고 했다. 그는 혐오선동세력이 정말 바라는 것은 커뮤니티의 붕괴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말하기를 위한 안전한 장소를 지키고 넓히는 것이 혐오에 맞서는 중요한 실천일 것이다.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활동가는 발달장애가 있는 회원들과 차별적 시선이나 표현에 대항하기 위해 진행한 활동을 소개해주었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는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수자에게도 익숙하다. 그것에 대항하는 말하기는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두려움에 위축되지 않고, 분을 못 이겨 화만 내다가 끝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있게 또박또박 전하는 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세 명의 활동가가 나눠준 경험은 혐오가 심각해지는 현실에서 인권운동의 실천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가늠하게 해주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하기

 

두 번째 참여한 세션은 <“인권을 시험 쳐서 받나요?” - 시험과 능력주의를 넘어 평등을 넓히자>였다. 촛불 이후 공정함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시험'이 공정성의 척도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시험으로 능력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회적 인정이 주어지는 것은 정당한 또는 적절한 것일까?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공현 활동가는 시험과 능력주의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짚는 발표를 했다. 능력에 따라 보상한다는 프레임은 실제로 차별적 결과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능력주의를 선호할수록, 타인을 '무임승차'로 비난할수록, '노오오력'해도 안 된다고 냉소할수록, 차별적 현실을 정당화하게 되는 모순에 빠진다. 그러나 능력주의의 문제를 깨우치는 것으로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공현은 한국사회가 어떤 권리를 누리기 위해 '개인이 경험하고 참아내야 하는 고통을 줄이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화된 능력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각자도생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과제를 제안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현수 활동가는 활동보조를 받는 장애인은 움직일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능력'을 개인화하지 않을 수 있는 실마리를 열어주기도 했다.

 

세 번째 참여한 세션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람들의 인권>이라는 제목으로 인권운동더하기가 주관했다. 이 자리에는 북한에서 태어나 살다가 한국으로 건너와 공부를 하고 있는 김윤희 님도 직접 참여해 자신이 생각하는 탈북민의 정체성과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전한 이야기들에서 탈북민은 적국에서 온 사람이다가, 같은 민족이다가, 체제의 선전자이다가, 열등한 사회와 문화로부터 온 인종이다가, 아예 사회에서 숨겨진 사람이 되기도 하는 존재였다. 그는 탈북민의 인권 문제에 접근할 때 어떤 곤란함을 겪을 수 있는지를 펼쳐 보여줬다. 탈북민을 만나며 연구 활동을 하는 김화순 님, 이민영 님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연결의 중요성이었다. 북한 출신 주민들이 지역주민과 협력하면서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이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등한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할지, 인권운동은 어떤 지점에 주목하며 고민을 이어가야 할지 곰곰히 생각하게 하는 발표들이었다.

 

인권운동의 좌표

 

다른 세션들도 모두 흥미진진했다고들 했다. 나머지 세 개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알 권리는 무엇과 싸우나? - 신상공개를 넘어선 알 권리 이야기> 인권으로서 '알 권리'는 무엇일까? 알 권리가 현실에 등장할 때 드러나는 지형을 보면, 때로는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억압되고 때로는 사회적 가치와 충돌하기도 한다. 이때 '알 권리'가 인권으로서 자리 잡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짚어보았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주관했다. <누가 인간인가, 누가 여성인가 - 주체의 언어가 배제의 언어가 되지 않기 위해> '생물학적 여성만'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추방과 배제의 근거로 '여성'을 소환할 때 정체성을 뛰어넘는 차이와 평등의 언어는 어떻게 가능할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이 주관했다.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인권이 되는가> 섹슈얼리티는 사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넘어 어떻게 사회적으로 섹슈얼리티가 구성되고 규범으로 강요되는지를 짚어보며 다양한 주체들의 관점에서 자율적으로 섹슈얼리티를 향유할 권리에 대해 토론했다. 섹슈얼리티활성화연구소가 주관했다.

 

지난해는 세계인권선언 70년이 계기가 되어 인권운동에 대해 고민을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동안 인권운동이 익숙했던 의제들에 갇히지 않고 한국사회를 전반적으로 살피는 기회도 됐고, 그만큼 인권운동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새 길을 내든 지금까지 걸어온 길, 지금 서있는 위치에서 시작될 것이라면 좌표를 잡는 일이 더욱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토론을 열심히 하는 한해를 보냈으니 이런저런 활동을 풍성하게 시도해보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