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총선, 대선 등 때가 되면 돌아오는 선거 시기에 보통 사회의 관심은 선거 결과로 집중되기 마련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당적을 가지거나 특정한 정당에 지지를 보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선거 역시 저와는 별로 상관없는 시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인권단체의 활동가로서는 제도정치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기본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올해 4월 총선을 전후로 해서 고민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인권활동가가 정당의 비례 후보로 출마하고, 단체 차원의 지지가 이어졌습니다. 반면 함께 활동했던 활동가가 단체 활동과 정당 활동을 병행하면서 갈등의 골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각 단체 내부에서 어떤 소통의 과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황스럽고 놀라하는 반응부터 분노 섞인 비판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올해 초 진행했던 전국인권활동가대회에서 관련한 고민이 이야기되고, 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에서 해당 고민을 받아 <더할 이야기 - 인권운동과 정당정치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 라는 인권활동가 내부 워크숍 자리를 준비하게 된 배경입니다.
‘개인의 거취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인식 너머
운동의 경험과 자원을 지닌 개인이 차출되는 방식으로 제도정치에 진출하는 일은 이전에도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동의하면서도 끝까지 제 안에 남아있던 마음은, 결국 개인의 거취는 개인의 선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설령 개인의 선택을 개인적으로 비판하거나 비난할 수는 있더라도, 인권운동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해당 행위를 비판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워크숍을 거치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의 거취가 그저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만 자리 잡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선거 출마의 경우 개인뿐 아니라 운동 전체의 인적 자원과 네트워크를 쏟아 넣어야 하는 일일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이를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함께 운동하던 동료들, 나아가 조직의 구성과 운영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일일 테니까요. 그렇게 개인이 떠나가고 남는 운동에 대한 고민이 동시에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더하기 위해서, 더 할 이야기
정당정치와 인권운동의 관계맺음에 대해서 인권운동 공동의 고민과 대응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련된 자리이지만, 곧바로 그런 이야기로 들어가기는 어려웠을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개인과 주변인들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고민을 시작하는 워크숍 구성이 좋았습니다. 만약 내 이야기, 내 동료의 이야기라면? 특정 정당에서 나나 내 동료에게 선거 출마를 제안한다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이었습니다. 일단 거부감부터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조차 단체마다 사정이 달랐습니다. 당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회원들이 꽤 있는 단체도 있었고, 직면한 현재의 고민으로 받아들이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관련해서 치열한 논쟁을 겪은 바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며, 동시에 인권운동이 현재 어디에 서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워크숍 현장에서 나눈 것과 같이 인권활동가 개개인의 정리되지 않은 입장과 고민을 더 많이 나누어나갈 때, 정당정치에 대한 인권운동의 입장 또한 정립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권운동과 정당정치간 관계 맺음에 대해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수칙을 정하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각 개인의 일, 혹은 개별 조직의 일이라는 인식을 넘어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의 운을 띄우는 시간으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입장이나 원칙을 정리해내지 못했지만, 그건 아쉬운 점이라기보다는 앞으로의 과제일 듯합니다. 인권운동과 정당정치의 관계라는 주제 자체가 선거 등 특정 시기가 아니면 뒤로 밀리기 십상인 만큼, 고민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인권운동과 정당정치는 어떻게 만나야 할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인권운동을 더하기 위해 더 할 이야기가 여전히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