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두 명의 활동가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을 진행 중이다. 최종 목적지인 국회에 도착하는 날은 11월 10일. 이날은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국회에 전달된 차별금지법 심사 기한의 마지막 날이다. 당초 9월 초까지였던 심사 기한을 두 달씩이나 연장하면서도 제대로 된 심사도 하지 않은 채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고 있는 국회를 비판하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활동가와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가 100만 보 거리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5월 24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 모집을 시작했다. 30일 동안 10만 명이라는 목표에 지레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청원 동의 수는 빠르게 올라갔고, 3주 만인 6월 14일 청원이 성사되었다. 이는 반차별과 평등을 요구해온 운동의 힘을 모으는 과정인 동시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사회 구성원의 뜻을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청원 성사 이후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상민, 박주민, 권인숙 의원이 차례로 평등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작년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을 포함하면 현재 21대 국회에는 총 4개의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그러나 청원 성사로부터 세 달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차별금지법은 국회 본회의에서 논의되기는커녕 법제사법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10만 명의 목소리조차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는 이유는 현행 국민동의청원제도가 이를 허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원‘까지만’ 허락하는 국민동의청원
입법부인 국회는 법안을 제·개정하는 일을 담당하며,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다. 정부가 직접 발의하는 일부 법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법은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발의를 통해 국회에 제출된다. 동시에 300명의 국회의원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뜻을 대변할 수 없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입법청원 제도가 존재한다. 현재 입법청원 제도로 국회의원을 통하는 ‘의원소개청원’과 온라인 사이트를 통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운영되고 있다. 2019년 4월 16일 국회법이 개정됨에 따라 2020년 1월부터 국민동의청원 사이트 운영이 시작되었다. 국회청원심사규칙은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청원서가 등록된 뒤 30일 이내에 100명의 찬성을 받으면 청원서가 공개되고, 그 이후 30일 이내 10만 명 이상의 찬성을 받으면 국회는 해당 청원에 대해 논의를 진행해야만 한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논의해야만 한다”는 규칙과 달리, 실제로 국회가 논의하지 않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청원이 회부된 후 90일 이내에 해당 청원을 심사해 본회의 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60일의 범위에서 한 차례 심사 기간 연장이 가능하며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위원회의 의결로 심사 기간의 추가 연장을 요청할 수도 있다. 사실상 청원 심사를 무기한 미룰 수 있도록 법이 허락한 것이다. 그렇게 심사를 미룬 끝에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 청원도 함께 폐기된다. 국민동의청원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성사된 청원 대부분이 임기만료로 폐기되거나 본회의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 소관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민동의청원 제도 도입에 대해서 “국민의 직접 참여 기회를 확대”했다고 그 의미를 밝혔다. 기존에는 국회의원의 소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던 입법청원의 방식을 늘렸다는 점에서 반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고 있는 국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현행 국민동의청원 제도는 청원 성사 이후에 실제 법 제·개정까지 어떠한 제도적 개입의 여지도 두지 않고 있다. 국민동의청원 제도 도입을 통해 확대된 참여는 딱 ‘청원 동의’까지고, 그 이후의 참여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참여의 기회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높아진 문턱, 여전히 먼 참정권
국민동의청원과 같은 형식의 제도 개선은 이미 19대 국회부터 논의되어왔다. 당시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을 때는 청원 참여 모집 기간이 1달이 아니라 6주였으며, 국회 사무처에 청원실 설치하고 원내에는 청원 심사를 담당하는 청원심사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청원의 심사와 처리를 위한 별도의 기구를 두도록 했으며, 또한 청원이 계류하다가 폐기되는 관행을 막기 위해서 10만 명의 동의가 확보되면 곧바로 공청회를 열어 청원안의 심사 절차가 속개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폐기되고,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는 과정에서 청원 참여와 성사의 문턱은 더욱 높아져갔다.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인 여타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국민동의청원 제도는 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인원을 요구하는 식이다. 또한 지자체 청원과는 다르게 서면 청원을 인정하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청원을 접수하도록 해서 오히려 참여의 폭을 줄였다. 청원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도 예산 등을 이유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국회는 자신들의 한정된 역량과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제한을 두었다고 이유를 댔지만, 이는 결국 청원 참여와 성사의 문턱을 높임으로써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높아진 문턱은 국회가 청원을 그저 ‘귀찮은 민원’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사회 구성원들이 법률 제·개정이라는 정치의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청원인’의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행동
국회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치의 주체’가 아닌 ‘청원인’의 자리만을 배당해왔으며, 정작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를 귀담아들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지 않아왔다. 지금까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국회 안 어딘가에 묶여 있거나 이미 폐기된 국민동의청원안에는 수십만 명의 바람 역시 함께 묶여 있다. 국민동의청원 제도 도입 이후 지난 2년 가까이 되는 시간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청원 동의 버튼을 누른 뒤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무력함, 아무리 청원해도 어차피 바뀌는 것은 없다는 불신이 쌓여온 시간이었다. 국회가 만들어낸 무력함과 불신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은 동시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개정,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대통령기록물 공개 결의안과 사회적참사 특별법 개정,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청원안을 통해서 더욱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지향이 모이고 세력화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오랜 열망은 10만 명의 바람을 모은 국민동의청원 성사 이후 국회 앞 단식농성을 거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평등한 세상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는 최근 국민동의청원을 통해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07년 차별금지법 발의 당시 일부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되는 사태를 보며 분노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이전부터 차별적인 사회를 바꿔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오랜 바람이 국민동의청원이라는 계기를 통해서 드러난 것이다. 청원 이전부터 이후까지 멈춘 적 없이, 세상을 바꾸고자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국민동의청원으로 드러난 사람들은 청원이 시작되기 전부터 모여서 움직여왔으며, 청원 후에도 그저 가만히 앉아서 국회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대신 집회를 열고 행진을 하며 국회가 움직이도록 만들어왔다. 이들은 국회가 배당한 ‘청원인’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정치의 주체’로서 행동하고 있다. 그러니 이미 앞서서 행동하는 사회 구성원들을 따라잡을 책임은 다시 국회에 있다.
국민동의청원, 유의미한 정치의 장이 되려면
참정권이 정치를 통해서 사회의 운영 원칙을 함께 토론하고 만들어나갈 권리라면, 이는 당연히 ‘국회에 청원할 기회’ 정도로는 보장될 수 없다. 청원'까지만' 보장하는 현행 국민동의청원 제도가 구체적인 법률 제·개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계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무기한 심사 연장을 가능하도록 한 국회법을 개정하고, 소관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논의 과정에서 청원인의 진술권을 보장하는 식으로 청원 달성 이후의 제도적 개입 여지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과도하게 요구되고 있는 청원 달성 인원 완화, 서면 제출 인정을 포함한 청원 참여 접근성 확대, 안정적인 제도 운영을 위한 인력 배치 등 방법은 이미 충분히 제시되어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 구성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과제는 국민동의청원 제도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성사되었을 때 많은 언론과 국회의원들은 ‘이제부터 국회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을 배제한 국회의 시간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국민동의청원은 참정권의 시작도 끝도 아니다. 청원을 경유하거나, 혹은 경유하지 않는 정치적 행동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회는 선심 쓰듯 청원을 들어주는 기관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모아내야 할 책무를 지닌 곳이다. 국회가 이 점을 기억할 때, 비로소 국민동의청원 제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정치의 장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며 걷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두 활동가, 그리고 그들과 함께 #평등길1110 해시태그를 내걸며 걷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걸음이 온 몸으로 외치는 말처럼, 국회가 마땅히 들어야 할 목소리가 산적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