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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운동을 살아있게 하는 동료들이 소중한

오매 님을 만났어요

총선을 코앞에 두고 무작정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 한국성폭력상담소(이하 한성폭) 활동가 오매 님을 후원인 인터뷰로 초대했습니다. 운동과 활동가를 살아있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는, 답답한 심정을 조금은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오매 님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만담하듯이 시작해볼까요? 활동가로서 요즘 오매를 소개하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면?

일단 가장 먼저 상담소의 <동료>, 그 다음은 <회원과 임원>, 그리고 마지막은 <22대 총선>이 떠오르네요. 한성폭 상근활동가가 18명인데요, 첫 번째로 <동료>를 꼽은 이유는 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어떻게 모이느냐에 따라서 뭔가가 시작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저에게 굉장히 중요하구요. 사실 두 번째는 ‘강간죄 개정’을 이야기할까 했는데… 이런 운동의 의제들을 통해서 구현하고 싶은 사회가 있잖아요. 그런 사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대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단체’라는 게 가능한데, 그래서 <회원과 임원들>의 존재가 너무 소중하죠. 마지막으로 <22대 총선>을 꼽은 이유는 지금 성평등·여성 공천 결과를 보고 너무 암담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에요. 이번 총선에서 제도 정치가 인권이나 페미니즘, 성평등 정치에 대해서 ‘불편하다’ 혹은 ‘이득이 되지 않는다’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났는데, 굉장히 우려스럽습니다.

 

소식지는 총선 직후에 발송되는데 인터뷰는 총선 직전이라 선거라는 주제를 피할 수가 없겠네요. 총선 예측은 뒤로 하고~ 총선을 둘러싸고 가장 마음이 가는 사건이나 현장, 사람이 있나요?

마음이 가는 건 굉장히 많은데, 저는 정치 영역에서 떠나간 여성들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 것 같아요. 페미니즘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완전히 새롭게 등장한 논의도 아니고 걸어온 길도 있고 해봤던 시도나 부딪혔던 벽 등이 있었는데… 그 경험들이 모두의 자산으로 남거나 다음을 준비하는 자원이 되기보다, 누군가가 사라지는 실패의 결과로만 보이는 것 같거든요.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분석들이 정확한가, 온당한가, 그게 전부인가를 질문했을 때 많은 빈칸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윤리적 책임과 연루된 사람들에게는 짐이나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구요.

 

22대 총선은 어찌 보면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을 텐데, 정치 영역에서 지나간 시간과 사람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왜일까요?

일단은 제가 지지하고 응원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 인권 의제를 실현하겠다, 선출직 대표자가 되겠다고 나서면 그 행보를 기대하면서 후원금도 내고 지지하고 응원했거든요. 그런데 일종에 실패하거나 ‘이건 아니다’ 싶어지거나 애초 지향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결과에 이르렀을 때,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잘 설명하는 것을 많이 보지는 못한 것 같아요. 설명할 것이 없어서는 아닐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지지했던 행위가 응답 없이 그냥 종료되어도 되는가를 생각하면 너무 이상하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계속 기다리게 되고 응답을 청하게 되는데, 기성 정치인들은 표가 되지 않는 집단에게는 시간을 쓰지 않고 설명하지도 않잖아요.

제가 지지하고 응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페미니즘 정치, 진보 정치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 역사와 계보도 있고, 관계도 있고, 앞선 사람의 성과가 그 다음 사람의 징검다리가 되고 어떤 사람의 실패가 다른 사람에게 배움이 되는 과정들이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고, 운동과 정치가 서로 그런 관계망을 인식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데… 이런 기대가 너무 과한 것인지, 더 많은 정치 영역으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안 맞는 방향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기대나 열망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을 텐데요. 한성폭에서도 최근 #call22nd 총선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죠.

내 지역구 총선 후보들에게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에 동의하는지, 성평등 전담부처를 강화하는데 동의하는지 질문을 보내고 답변을 함께 공유하는 건데요, 4년 전 21대 총선에서도 했었어요. 질문도 더 많이 보냈고, 응답한 후보들도 훨씬 더 많았고, 응답한 후보들 중에 당선된 사람들도 많았고요. 지금은 답을 잘 안하고 있지만, 끝까지 조직해보려고 해요.

4년 전도 함께 한 ‘셰도우핀즈’와 IT 분야의 직장 다니면서 퇴근하고 사회적인 이슈에 자원활동으로 개발을 하는 ‘널채움’이라는 팀이 사이트를 개발했거든요. 그런데 이 분들이 강간죄 개정, 폭행․협박, 대법원 최협의설(강간죄 범위인 폭행․협박을 최대한 좁게 해석한다는 의미) 이런 말들이 너무 어렵다며, ‘당근마켓 같이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웃음)) 이 말은 절대 못 뺀다, 이 말은 뺀다 왔다 갔다 하는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또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고요.

 

총선의 결과가 어떻든, 그 이후에도 운동은 계속되잖아요. 한성폭의 활동이나 반성폭력 운동에서 이후 과제 혹은 주력 활동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까요?

지금 한성폭의 활동가 상당수도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기도 한데, 지난 3월 22일 토요일에 열린 정치대회에서도 ‘사회운동의 곤경’이라는 표현이 계속 등장하잖아요. 한성폭은 체제전환에 대한 뚜렷한 상이 있어서 함께 하게 됐다기보다, 그 곤경에 왜 처하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가야 될지를 운동이라는 장 안에서 계속 함께 진단하고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컸어요. 이런 논의를 계속하지 않으면 그냥 살던 대로 살게 되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이런 차원에서 한성폭도 계속 해오던 일을 하면서도 각각의 곤경을 함께 살펴보고 돌아보는 노력을 하고 있고, 다른 사회운동과 연결된다는 것은 무엇인지도 여러 차원에서 고민을 하게 되네요.

그리고 작년에 여성단체나 상담소 예산 삭감으로 여러 싸움들을 많이 하게 되었거든요. 상담소를 통한 여성폭력 대응 운동에 대해서 정부가 제도화를 빌미 삼아서 일방적으로 재편하려고 하는데, 운동은 어떤 주장을 하고 무엇을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지금 핵심적이고요. 한성폭 내부적으로는 피해자 지원의 방향과 상담소의 역할, 24시간 주거시설인 쉼터와 시설화의 문제 등을 계속 논의하고 의제화하려는 계획도 있어요. 또 소장이라는 저의 위치에서도 생각해본다면 ‘활동가’라는 사람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한 사람의 활동가가 탄생하기 위해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고민도 계속 하게 될 것 같네요.

 

아,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가 끝나고 정치대회 발제문이 담긴 팜플렛을 액자에 끼워서 걸어놨다면서요? 글이 너무 좋아서는 아닐 텐데…? ((웃음))

아, 맞아요. 발제문 글에 대해서 ‘좋아 파’와 ‘안좋아 파’가 있었어요. 팜플렛을 보고 ‘이건 액자 각이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어떤 팜플렛을 받았는데 안 버리고 가지고 있다는 건 중요한 의미죠. 개인적으로는 타임캡슐과 같은 거죠. 내가 나중에 보겠다는… 나중에 사람들이랑 ‘옛날에 이런 게 있었어, 몇 명이 모였어, 같이 노래를 불렀어…’라고 또 말을 해야 될 거잖아요. ((웃음)) 그런데 보관하는 것과 액자에 거는 것은 굉장히 다르죠. 프로파간다 아트가 항상 필요하잖아요. 정치대회 발제문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내가 계속 영향을 받고 싶은 프로파간다 중 하나였던 거죠.

 

 

한성폭은 한국사회에서 반성폭력 운동의 중추 역할을 하는 존재이기도 하잖아요. 자기 소개 키워드에서도 운동의 역사성과 신념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들에 대한 소중함이 느껴졌는데, ‘이게 우리의 프라이드다!’ 자랑할 만한 것이 있나요?

굉장히 많은데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삶의 여러 맥락들을 헤아리고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의 마음이 항상 살아 있다는 것이 저의 프라이드인 것 같아요. 사실 상담소가 일정이 정말 많거든요. 특히 24시간 생활 전반을 지원하는 쉼터 구조에서는 굉장히 여러 세밀한 활동도, 오늘 당장 해결해야 하는 몰려드는 활동도, 꼬여 있는 상태로 돌아가는 활동도 많구요. 그런데도 항상 ‘우리가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또 들어야 된다’는 기운이 풍화되지 않게 지켜가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프라이드죠. 그런데 이건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노고가 크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대화 자체가 어떤 힘이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출처: 한겨레

 

그런 활동가 재생산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소장의 위치가 때로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피해자 지원이라는 활동이 법적 근거가 있어서 상담소는 등록도 하고, 신고도 하고, 점검도 받고, 자료도 내고, 우리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보고의 대상이 되는 측면도 있어요. 사회복지 영역에 속한 기관은 제도화된 기준에 맞추는 방식으로 운영이 세팅되기도 쉬운데, 그것만으로 채우지 않으려는 노력들도 항상 같이 있고요. 한성폭 활동가들은 제도화된 기관으로서 신뢰도를 유지하는 일을 해내는 직원으로 존재하면서도, 사회운동의 비전, 가치, 태도 등을 배워가면서 나 개인에게 주는 새로운 삶의 비전이나 방식을 만들어가는 페미니스트 전업 활동가이기도 하죠. 동료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공동의 거점, 터전, 지역을 만들어가기를 바라고요. 저의 관점이지만, 그 어느 하나도 포기를 안 한 상태인 거죠.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계속 내면서 살아갈 수 있고, 자율성과 자유로움, 임파워링이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데, 그렇게 되려면 서로 다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들이 있죠. 이런 건 조직적인 차원의 도전인 것 같아요.

 

작년 사랑방 30주년 때 오매 님이 ‘월급과 전문가주의를 넘어서는 운동가’를 말한 사랑방 초기 글을 인상 깊었던 글로 꼽아주신 기억도 떠오르네요. 사랑방은 페미니즘을 인권운동의 의제로서 다루기보다, 세상을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보면서 어떻게 인권운동을 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활동해왔다고 생각해요. 계속 그렇게 해 나가고 싶고요. 앞으로 사랑방과 어떻게 만나고 싶다는 기대가 있다면?

최근 체제전환운동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도,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랑방 활동가들의 포지션을 관찰하고 들여다보게 되기도 해요. 필요한 역할을 자임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지금 인권운동이나 사회운동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일지 그 고민의 책임을 자임하고 또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조직하고… 이런 ‘운동의 운동’, 메타적인 운동의 역할을 사랑방 활동가들이 여기저기서 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게 힘들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싶었고요. 워낙 밑도 끝도 없는 일이다보니 정작 그 일을 자임한 사람들은 ‘이게 잘하고 있는 건가’, ‘이게 맞는 판단이가’ 혹은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었나’ 하는 식의 추상적인 질문과 평가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외롭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지지하고 응원하는 후원인이 많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갑지기 다짐을?!) 지금처럼 후원인 인터뷰 하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바로 하고, 이렇게 열심히 할게요.

 

마지막으로! 활동에서든 일상에서든 재미, 즐거움, 활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시잖아요.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원인 오매가 ‘사랑방에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세 가지 키워드를 꼽아주세요.

첫째로는 <트레킹>이 있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언젠가 사무실 공간을 옮기게 된다면 약간 <햇볕>이 잘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 번째는 <수다>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랑방 활동가들이 고민을 계속 (인권으로 읽는 세상) 글로 써주기도 하는데, 저는 소식지에 쓰는 글도 열심히 잘 읽고 있거든요. 그래서 수다도 많이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트레킹’을 꼽은 건 사랑방 활동가들이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인지 묻자 매우 단호하게 ‘트레킹은 운동이 아닙니다, 산책입니다’ 답하신 오매님~ 세 가지 바람을 기억하며 앞으로 산책, 햇볕, 수다가 좀 더 풍성해지는 사랑방 활동을 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