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깜짝할 새 지나간 2월의 마지막 날 유난히 싱숭생숭했습니다. 3월을 앞두고 이제야 복귀를 실감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안식년 마치고 2월 복귀했습니다. 1월에 작년 평가와 올해 계획 논의를 함께 하러 두 번 사무실을 나왔거든요. 오랜만에 사무실 가려니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뭔가 마음을 다잡고 싶어지더라고요. 친구가 추천해 준 명상을 검색해 틀고 앉았습니다.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다보니 마음이 가라앉으며 차분해진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안식년 효과일지 명상 덕분일지 모르겠지만,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본 동료들에게 “밝다”, 아니 “맑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밝고 맑다니!! 무척이나 어색한 말이었지만… 좋더라고요. 낯빛까지 밝고 맑다면 더없이 좋겠다 싶지만, 그보다는 먼저 밝고 맑은 기운을 유지해가자는 바람을 품게 되었어요. 그러니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고요. 눈 뜨면 나가기 바쁘고 들어오면 잠자기 바쁜 날들에 휩쓸리게 되도 나를 돌보는 에너지는 놓지 말자고요. 그래야 주변도 살필 수 있다는 것을 계속 배우고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는 한국옵티칼 노동자들과 희망뚜벅이로 함께 하며 3월의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2022년 10월 화재로 폐업한 공장을 지키며 고용승계 투쟁을 이어왔고 박정혜, 소현숙 두 노동자가 공장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한지 이날로 419째가 되었습니다. 2월 7일 구미에서 출발해 3월 1일 서울까지 23일차 350km, 복직으로 일상을 되찾는 희망을 새겨온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이었어요. 영등포역에서 출발해 국회, 세종호텔 고공농성장을 지나 광화문 탄핵투쟁광장으로 향했습니다. 고공농성의 외로움을 겪었고 연대의 희망을 새긴 김진숙, 박문진 두 지도위원이 먼저 연 길이었습니다. 지난 11월 부산에서 구미까지 이어온 걸음을, 다시 구미에서 서울로 이어온 걸음입니다. 2021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미류와 이종걸 두 활동가가 평등길을 나섰을 때 기꺼이 곁이 되어준 (더불어 도보행진의 노하우를 알려준!) 고마움과 든든함이 기억납니다.
이들의 곁이 되어 노동자의 존엄을 쉽게 폐기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모인 걸음들, 그 사이사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마주할 수 있었어요. 쌍용자동차 노동자로 2009년 해고된 뒤 8년만에 돌아간 공장에서 5년 더 일하고 정년퇴임을 한 형님, 2012년 대한문 분향소에서 만난 인연인데요. 늘 웃음을 주는 분이셨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난 사장한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 투쟁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거든. 해고되지 않았으면 이런 경험을 못했을 거야.” 이제 정말 (자의는 아니지만) 노동해방 됐다는 얘기를 덧붙이시면서요. 형님 얘기 들으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콜텍 기타노동자로 부당해고에 맞서 13년 투쟁을 마치고 사랑방 사무실이 자리한 꿀잠에서 활동하다가 작년 퇴임한 형님도 만났습니다. 사무실이 문제가 생기면 SOS를 청했던 든든한 홍반장, 출근길 오늘도 수고하라고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준 이웃이 되어준 형님의 정년퇴임 소식을 접하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안식년 복귀인사를 뒤늦게 드리면서 얼굴 뵐 날을 기대했는데, 인사 나눈 다음날 딱 만난 거였어요. 이렇게 반가운 일이!! 반가움 한편에서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강산도 바뀐다는 시간인데 그렇게 오랜 시간 투쟁들은 어떤 시간이었던 걸까. 그 시간의 의미가 나에게 어떻게 남고 확인되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서로의 곁이 되어준 시간들이 더 너른 우리가 되는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구나. 그때의 만남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참 고맙고 또 벅차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새 잊고 있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안식년에 3개월 여 짧지 않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여행자로 하루하루 지내온 일상이 달라지는 게 아쉽고, 한편으론 여행 이후로 미루어온 것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여행하면서 라디오를 챙겨듣곤 했는데, 제가 돌아갈 떄가 된 것을 알았던 걸까요? “나를 기다리는 좋은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말이 귀에 딱 꽂히더라고요! 저녁시간 퇴근길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제가 속한 곳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그런 시간이겠다 싶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시간.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포근해지면서 안심도 되고 다시 내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기대되기도 했습니다. 작년 안식년을 쓰게 되면서 사랑방의 이어달리기에 바통을 받을 준비를 해서 오겠다고 했는데요, 밝고 맑은 기운 장착! 우선 그 마음으로 복귀했습니다. 탄핵 투쟁으로 12월부터 쉼 없이 달려온 동료들이 안쓰럽지만 공백기를 메우는 건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살피고 배우고 쫓아가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이어달리기에 다시 뛰어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