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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세속화’의 길 “그래요. 저 때 묻고 더러워지고 물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요즘 하도 활동을 열심히 못해서 어쩌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뭐라고 제대로 대답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요.;;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

 

저는 임금팀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사랑방이 안산 지역 반월‧시화공단 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전략 조직화 사업에 함께 하고 있는데요. 그 활동 중에서도 노동자 임금을 중심으로 좀 더 전략을 모색해 보고자 사랑방에서는 임금팀을 꾸려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여러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로 ‘임금팀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은 임금팀 활동에도 제대로 집중 못하고 있지만요. 부끄럽네요.

 

임금팀 활동을 하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노동자가 주체가 되게 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노동자에게 임금은 무엇인지, 노동자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어떻게 하면 노동조합이든 뭐든 스스로 주체로 설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쉽지 않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나는?’이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에게 임금은 뭐지? 나는 일하면서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나 같은 계약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자연스럽게 직면하게 되더라고요. 소위 ‘당사자가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달까요. 시간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는 시간,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함께 하는 일상, 급여와 처우를 둘러싼 ‘윗선’과의 밀당, 마치 전쟁 때 피난과도 같은 출퇴근길,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세상을 바라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시선 등. 매분 매초 일상을 촘촘히 채워나가는 노동자로서의 삶은 활동가로서 바라보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모든 삶이 곁에서 바라보는 것과 자신의 삶으로 마주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고백하자면, 저는 직장에서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은 하나도 없고 그냥 일개 소시민 노동자일 뿐입니다. 나부터가 주체가 되지 못한 노동자인 거죠.;; 어떤 일이 생길 때 마음속에서만 소시민 노동자와 활동가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복잡한 파문이 일어나곤 합니다. 예를 들면, 그 전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받던 수당이 갑자기 짤려서 모두들 분노할 때에도,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을 때에도, 행정실에서 종이 한 장 펜 하나 아끼겠다고 잡무를 늘리면서 자존심까지 건드릴 때에도, 우리도 계약직 노동자이면서 임시직 노동자들에게는 같은 노동자끼리 더 차별적으로 대하는 것을 볼 때에도, 직장 내 다른 구성원들(노동조합)이 집회와 농성을 하면서 싸우는 것을 구경할 때에도, 나 역시 함께 분노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활동가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가 조용히 떠오르더라고요. 하지만 그것도 생각 뿐, 뭔가 나서보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구조조정을 통해 직장 내 체계와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는 노동자들에게도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죠. 당연히 저에게도 그랬고요. 이 과정에서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알아보긴 했지만, 결국은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고 해고(사실은 계약해지)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정말 제도라는 게 노동자를 위한 건 거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라면 결론은 ‘싸우는 것’이 되어야 하겠죠. 머리로는 모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더라도 이런 싸움들을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들이 사회적으로 드러났고 또 더 많은 노동자들이 그에 대해 자각하게 되기도 했으니까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뜨거운 결의로 그런 것을 해온 훌륭한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난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큰 패배감도 별로 느끼진 않아요. 그럴 계획조차 별로 없었으니까요. 뭐, 좀 부끄러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습니다. 부끄러움보다는,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저는 이런 다채로운 시간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공식처럼 똑같이 살고 있는 방식들이 껍데기로만 보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왜 그런 길을 가고 그런 선택을 하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도 비슷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으니까요.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더 많이 벌고 싶고, 좋은 조건의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고, 더 좋은 보험을 찾아보게 되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권한을 놓지 않으려고 하고, 부당하더라도 참고 견디게 되는 등 나 역시 그리 다르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 전에는 이해할 수 없고 무시했던 것들이 사실은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사회적/개인적 맥락에서의 원리 같은 것을 내재하고 있고 이 사회를 지탱하는 저변의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요. 그게 옳든 그르든 간에 말이죠. 그리고 그런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사회를 바꿀 수도 없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사회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바꾸겠다고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인 거죠. 사회단체에 몸담고 활동을 할 때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입니다. 나만 몰랐던 것 같아요. 이제야 나는 그것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하는 일상을 몇 년 동안 겪고 나서야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알게 되었습니다. 저 스스로는 이런 과정을 ‘세속화’ 과정이라고 이름 붙였어요.ㅋㅋ ‘청정지대’로서의 인권운동계를 떠나 사회의 때에 물들면서 스스로 세속화하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라고요.ㅋㅋㅋ 맞아요. 저 때 묻고 더러워지고 물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좋아요. 아직 세속화를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좀 더 그런 길을 가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어요. 이러다가 너무 세속화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긴장감이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서 일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세속화되어 버리면 운동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거든요. 처음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하기 시작할 때에만 해도 ‘잘 먹고 잘 살려고 하지 말고, 나 스스로 억압 받는 위치에 가서 서자.’라는 ‘고매한’ 생각을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는지 …… 부끄러워지네요. 대단한 착각이었던 거죠. 지금은 ‘제발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위치에 올라 보자.’며 기를 써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프레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도 새삼스레 느끼고 있어요. 이런 변화 또한 돌이킬 수는 없을 거라고 지금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속화라는 게 애초에 내가 통제할 수는 있는 것일까 라는 고민도 이제 슬슬 들기 시작했고요.(언젠가는 이 글을 보면서 또 부끄러워질 수도 있겠네요. ‘세속화’라니!!;;)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좀 더 밀고 나가 보려고 합니다. 좀 더 구르고 부딪치고 상처 나면서 배워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