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과 같은 인권단체 또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다보면 안타깝거나 화나거나 우울한 소식들을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요. 또는 신문이나 TV에서 보도하는 여러 사건사고들에 촉각을 세우게 되니 뭐 하나 즐거운 일은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이런 생각에 빠져 들다보면 결국엔 인간에 대한 회의 비슷한 것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다거나, 정말 인간이란 존재는 어디까지 잔인하거나 지독해질 수 있는걸까 하는 생각 말이에요. 과연 차별과 폭력 없는 세상, 평등한 세상, 인권이 살아 숨쉬는 세상 이런 게 가능할까 하는 솔직한 회의감도 드는 거죠.
그러다가 문득, 정말 그런 세상은 없을 거라는 깨달음(?) 비슷한 게 들었어요. 결국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차별과 폭력, 불평등, 권력 이런 게 없을 수 있을까요? 자유주의자들의 말처럼 분명 재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고 권력을 쥐게 되는 그런 인적 차이도 있을 수 있겠다 싶어요. 인간에 대한 회의에 빠지는 사람은 필시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일 것 같아요. 그냥 사람은 사람일 뿐이에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뭇 생명들처럼 말이죠.
어떤 인권침해도 없는 무균실같은 불가능한 세상을 꿈꾸는 게 아니라, 인간이니까 행할 수 있는 그런 폭력과 차별과 인권침해를 가벼운 감기처럼 흘려보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만드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의 폭력과 차별이 누군가의 자살로(비유가 아닌!) 이어지는 참혹한 한국사회라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현아의 갑질을 해프닝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항공기 사무장의 단단한 힘, 그걸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관계(노동조합, 노동자의 권리), 언제어디라도 있는 동성애 혐오자의 행동이 당사자에게는 별 게 아닐 수 있는 그런 사회적 관계를 힘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014년 한 해 동안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 수고했다는 말을 각자 그리고 함께 꼭 했으면 좋겠네요. 누군가의 말처럼 살아내는 게 투쟁인 세상이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동분서주하는 것도 이렇게 살아내기 위한 각자 그리고 우리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니까요. 저는 12월 31일이나 1월 1일에 대한 특별한 기억, 계획, 결심 이런 게 별로 없어요. 원래 뭔가 계획을 열심히 세우거나 어떤 결심 같은 걸 잘 하지 않아서일까요? 언제나 저한테 송년과 신년은 그냥 또 하루가 지나가는 그런 한 때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2014년이 힘들었던 걸까요? 저한테도 수고했다는 말을 하면서 지난 한 해를 뒤로 하고 2015년은 상큼한 산책이라도 나서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하고 싶네요.
후원인 여러분은 이미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