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부여간첩 김동식(34, 가명, 본명 이승철)씨가 간첩 불고지 혐의로 기소된 허인회(33, 현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씨 재판에 모습을 나타냈다. 서울지법 형사9단독(유원석 판사)의 심리로 26일 오후2시부터 317호 법정에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검찰의 심문에 허씨의 공소장에 나온대로 진술, "허씨를 두 차례를 만났다"고 진술했다.
서울지검 이기범 검사는 1백50개 질문항목을 공소사실별로 나열해 질문, 김씨는 "예, 그렇습니다"다는 식의 단순대답으로 검찰심문을 끝냈다.
그러나, 변호인측은 "이 사건은 사건 자체가 조작되어 있다"며 김씨를 상대로 집요한 심문을 펼쳐 무려 7시간 이상이나 질문공세를 펼쳤다. 김씨는 변호인의 심문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는 등 마치 5공 청문회 증언을 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임영화 변호사는 김씨의 신분, 행적, 가명, 허인회 씨를 만난 정황 등에 대해서 사건기록을 일일이 제시하면서 김씨의 기억을 확인했다. 하지만, 김씨는 상당부분 자술서나 진술조서 등에 나와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조차 부정확한 답변을 했고, 심지어 "총상을 입어 체포된 후 얼마동안 치료를 받았느냐"는 질문에조차 "잘 모른다"고 말해 방청객들의 조소를 사기도 했다.
그는 "본명이 이승철임을 밝힌 이후에도 계속 김동식이라는 이름을 쓴 것은 과거 92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때 썼던 김돈식과 착오를 일으켜 계속 김동식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가명 등 기억 틀려
특히 허씨를 비롯, 황광우, 정동년, 우상호, 이인영 씨 등 포섭대상자들을 만날 때 쓴 가명에 대해서도 수사기록과는 다른 답변을 했다. 평소 같은 가명을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동년씨와 허씨를 만났을 때 동일하게 '박광선'이라는 가명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던 4명 중 임성식, 박광선의 주민등록번호는 기억해 냈으나, 두 명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가장 위험한 때인 정각사에서 고정간첩을 만날 때 갖고 있던 이상원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92년 사건 당시 수사발표에는 김돈식이 '키 173cm, 김일성대학 졸업'이라고 한 것과 달리 실제 김씨의 '키는 168cm, 고등학교 졸업' 인 것 등 다른 점을 추궁하자,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소속에 대해 사회문화부 1과라고 했다가 6과로 바꾼 이유는 "처음 허위진술했다가 나중에 진실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김씨는 조선노동당 입당시기, 당원증 번호 등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답변으로 피해 갔다.
허씨를 비롯한 포섭대상자들을 만나 간첩이라는 신분을 밝힌 이유에 대해서는 "북한에서 남파 직전 초대소 공작원 토론과정에서 하기로 한 것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또, 그를 만난 사람들이 기관원으로 의심한 것에 대해서는 "나이가 젊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했다.
김씨는 처음 허인회씨에게 전화를 한 시각, 허씨를 만났다는 시각에 허씨 사무실에 들른 사람 등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허씨 책상과 허씨 책상 위의 명패, 여직원, 가방에 대해서는 조사 내용대로 답변했다. 변호인은 허씨를 만났다는 그 시기에 허씨의 책상이 치워졌던 점, 여직원 1명도 사직해 실제 여직원은 1명 밖에 없었던 점, 가방이 이전과는 바뀐 것 등에 대해 추궁했다.
김씨 간첩인지 강한 의문
변호인측은 자술서 작성 날짜를 기록하지 않고 비워둔 뒤 나중에 날짜를 기입한 것은 "그날 그날 날짜를 기입할 때도 있지만, 다음날에 수사관이 쓰라고 하여 기입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은 김씨가 처음 밝히지 않은 사실이 나중에 작성된 진술조서나 자술서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구속적부심과 허씨의 수사과정에서밝혀진 것을 추가로 기입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이것은 김동식이 안기부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김씨의 존재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날 허씨는 재판 전 기자들을 만나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 "김씨를 만난 적도 없다"고 말했다. 허씨는 지난해 11월 간첩 불고지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가 지난 13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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