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말 부산․울산에서 노동․사회단체 활동가 19명을 대량 구속한 국가보안법 사건(이른바 ‘한민전 영남위원회’사건)과 관련, 시민․사회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이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인권탄압을 강력히 비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참여연대, 민변, 녹색연합 등 2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부산․울산 지역 시민대책위는 12일 안국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과거 군사독재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며 “인권유린의 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특히 구속된 환자들의 치료권이 박탈되거나 부부가 모두 구속돼 어린 자녀가 ‘생고아’ 생활을 하게 되는 등, 경찰의 ‘반인륜적’ 수사가 극에 달하고 있다.
현재 간경화로 시한부 6개월 선고를 받은 박경순(늘푸른서점 대표) 씨의 경우, “이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조사가 계속되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의사소견에도 불구하고, 수사관들이 “조사중에 죽어도 할 수 없다”며 가족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정련(현대중공업 노동자 가족협의회 회장) 씨와 이은미(울산여성회 준비위 회장) 씨는 척추협착증과 디스크를 앓고 있던 중 구속돼 치료가 중단된 상태다.
뿐만 아니라, 박경순․김이경, 임동식․이은미 부부가 함께 구속됨으로써 그들의 네 살, 아홉 살짜리 자녀들은 20여 일째 이집저집을 전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 12일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시민사회단체들은 △구속환자들의 병원입원 및 치료 △부부 구속자 가운데 한 사람의 불구속 수사 등을 촉구하며, “인권유린의 중단과 환자들의 치료를 요구하는 대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경찰은 체포․수색과정에서 기본적인 인권수칙을 지키지 않는 등 불법수사를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연행자들에게 변호인접견권, 묵비권, 연행사유 등 이른바 ‘미란다원칙’에 해당하는 요건을 고지하지 않았으며, 무단침입에 이어 입회자도 없는 상황에서 집안을 압수수색하는 등 ‘절도’나 다름없는 행위를 벌였다. 구속된 김창현 동구청장의 경우, 경찰은 드릴로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압수수색을 벌였으며, 박경순, 임동식, 정대연, 이철현 씨 등은 현재까지 압수물품의 내용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무리하게 진행중인 ‘부산․울산 국보법 사건’에 대해, 해외로부터의 항의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7월 23일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보내 “노동계의 활동을 친북활동과 관련지으려는 구태의연한 시도와 과거의 방식에 다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과거의 탄압방식으로부터 발상의 전환을 가져올 것”과 “비폭력적인 노동운동을 벌인 구속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또 독일노동조합총연맹도 7월 29일 김 대통령에게 “한국의 정치적 탄압 상황에 대해 독일노동조합연맹, 지식인, 시민들과 함께 연대행동을 전개하겠다”며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탄압이 계속될 경우, 현대자동차 불매운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한편, 부산․울산 지역 대책위는 “경찰이 이번 사건의 조직명조차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등 사건 조작의 의혹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구속 당시 이 사건을 ‘반제청년동맹’ ‘동창회’ 등의 이름으로 지칭했으나, 24일 1차 수사발표 때는 ‘한민전 산하 영남지역위원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발표했고, 최근에는 ‘조선노동당 영남지역당’ 또는 ‘조선노동당 남부지역당’ 등으로 지칭하는 등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경찰은 이번 사건 관련자들이 한민전의 직접지도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그 근거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구속된 정대연(전 울산연합 집행위원장) 씨는 지난해 ‘간첩 최정남’ 씨를 당국에 신고한 인물로서, 대책위측은 “상부조직에서 파견한 사람을 신고한 정대연 씨가 한민전의 조직원으로 활동이 가능하겠냐”며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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