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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양심수 문제, 이제는 끝내야 한다 ⑤(끝)

국보법 7조부터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실시되는 8․15특별사면을 통해 일부 양심수들이 감옥 문을 나서게 된다. 그러나, 사면을 통해 풀려나는 양심수보다 새롭게 잡혀 들어가는 양심수가 더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양심수가 양산되는 현실 한복판에는 국가보안법이 그 위세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손쉽게 ‘양심수’를 양산해온 독소조항이 바로 국보법 제7조(찬양․고무 등)였다.

제7조(찬양․고무 등)
①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⑤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 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사법부 ‘남용위험’ 지적

국보법 제7조의 문제는 한 마디로 ‘그 규정이 모호해 언제든 공안당국의 입맛대로 적용․처벌이 가능하며, 본질적으로 국민의 사상․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국보법 7조의 남용 및 위헌 소지는 사법부에서도 이미 여러차례의 판결을 통해 지적해온 부분이다.

95년 부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박태범 부장판사)가 직권으로 국보법 제7조 1, 3, 5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한 데 이어, 그해 서울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이신섭 부장판사)는 91년 국보법 개정이래 최초로 국보법 7조 위반 사건(이창복 씨 구속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 95년 4월 서울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이우근 판사, 북한소설 출판 사건) 95년 5월 서울지법 형사항소5부(재판장 김영기 판사, PC통신 공산당선언 게재 사건) 96년 1월 부산지법 형사1단독(정희상 판사, 북한대학생과 팩스서신교환 사건) 96년 7월 서울지법 형사9단독(유원석 판사, 박충렬 씨 사건)등이 잇따라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부산지법의 위헌심판제청 요지는 “국보법 제7조가 국민의 사상의 다양성을 서전에 봉쇄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고, 각각의 무죄판결 이유는 “국보법 7조가 넓게 해석․적용될 경우 위헌의 소지가 있으므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하급심에서의 이같은 판결과 달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국보법의 인권유린 여부에 눈을 감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95년 부산지법의 위헌심판제청 사건에 대해 “제1항에서 ‘알면서’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이 추가됨으로써 확대해석의 위험은 거의 제거되었고 따라서 제3항, 제5항은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거나 이를 지나치게 제한할 위험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96. 10. 4 95헌가2)며 국보법 제7조 1, 3, 5항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또 92년 대법원은 이적표현물 사건과 관련, “학문적인 연구나 오로지 영리 추구 및 호기심에 의한 것이라는 등의 그 이적 목적이 없었다고 보여지는 자료가 나타나지 않는 한, 초과주관적 위법요소인 목적의 요건은 충족되는 것이다”(92. 3. 31 대법 90도2033)고 판시하기도 했다.


국보법 남용, 공안기구도 인정

그러나, 사법부의 법리적 논쟁을 떠나 국보법 제7조의 남용 및 인권침해 여부는 이를 적용하는 공안기구의 수장들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국가보안법 상의 찬양고무죄 적용을 최소화하겠다.”(98년 6월, 이종찬 안기부장)

“국가보안법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모호한 규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98년 7월, 박상천 법무부장관)

“절대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지 않겠다. 법 개정의 당위성은 인정한다.”(98년 5월, 김대중 대통령)

올해 들어 구속된 관악노동청년회, 안양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 진보적 청년․사회단체 회원들은 공개적으로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자치활동을 전개해오다 ‘이적단체 구성원’이라는 낙인을 받았다. 컴퓨터통신에 대학 강의교재와 마르크스주의 출판물들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대학원생이, 이적표현물을 출판했다는 혐의로 출판사 대표가 구속되었다. 모두 국보법 7조의 덫에 걸린 경우다.

한편, 국보법 7조에 의한 구속자 대부분이 구속 서너달 뒤 집행유예 판결을 통해 석방되어온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혐의내용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위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결국 법이 존재함으로써 구속과 석방의 악순환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오는 12월 1일이면, 국가보안법이 제정된지 만 50년이 된다. 1948년 12월 1일, 당시 ‘여순사건’으로 긴장한 이승만 정권이 좌익세력의 제거와 탄압을 목적으로 공포․시행한 국가보안법이 50년의 세월을 지난 지금까지도 국민의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양심수 문제는 결국 국보법의 문제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다면 김대중 정부도 ‘양심수 양산’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