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삼미특수강 노동조합, 노동자뉴스제작단/ 감독 허은광/ 다큐멘터리/ 비디오/ 65분
‘우주는 지구를 만들었다. 지구는 자연을 만들었다. 자연은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은 노동을 만들었다. 노동은 자본을 만들었다. 노동이 죽으면 자본이 죽는다. 그런 자본이 인간을 죽이고 있다. 인간이 죽으면 지구가 죽는다. 곧 노동운동은 지구를 살리는 운동이다.’ 삼미특수강 가공부에 22년 근무한 이종수 씨, 옆집 아저씨같은 그가 말하는 노동운동론이다.
노동운동이 뭔지도 모르던 그가 투쟁 속에서 5월 노동절의 의미를 말하고, 노동운동은 집회와 유인물 배포, 거리행진이 가장 효과적이라 하며,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과연 누가 이 사람을 노동운동가로 만들고 있는가?
<우리들의 사계>는 삼미특수강이 노동자의 의사가 완전히 배제된 채 포철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187명의 노동자의 고용승계 보장이라는 아주 일차적인 문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기를 담고 있다. 주로 10년에서 22년의 장기 근속 조합원의 인터뷰와 노조의 투쟁과정을 카메라는 노동자와 일정정도의 거리두기를 하며 같이하고 있다.
그들의 투쟁일지는 서울 상경 180일 투쟁, 서울 창원 포항에서의 분산투쟁, 20일 아사 단식투쟁, 가족협의회의 삼미 본관점거, 대선을 통한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 등으로 일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일련의 투쟁과정 속에서 노동자들은 기대와 실망, 좌절 또다른 희망을 안고 대오를 정렬한다. 하지만 포철관계자와의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고, 한달 정도면 될 것이라고 힘차게 시작한 투쟁이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제는 체념한 채 또 다른 시작을 준비중이다.
이들의 투쟁기간에 발표된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인 “근로희망자 전원을 재고용해야…”라는 판정서에도 거대한 포철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정부도 자본의 이익만 대변해주기에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인터뷰는 국민정부에서도 노동자들의 설 땅은 정말 사라져 가는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삼미 조합원들은 중노위를 힘없는 기구로 여기고 있다. 중앙정부의 힘이 대기업에는 미치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들의 사계>는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다. 플린트시의 대부분의 주민이 다니는 제너럴 모터스 공장을 철수하려는 GM의 사장 로저를 만나기 위해 쫓아 다니는 나(마이클 무어)는 끝내 사장을 만나지 못하고, 다큐멘터리는 황폐해져 버린 마을과 사람들을 보여준다.
외환위기와 함께 마구 거리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하루에도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상황에서 삼미특수강 조합원의 투쟁은 더욱 힘겨워지고 있다. “임단투하는 타 노조가 부럽습니다.” 라는 말은 어느새 오늘날 대다수 노동자들의 역전된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냥 삼미가 좋아요. 그래서 삼미와 함께하고 싶어요”라는 2년차 조합원의 순수한 이 말은 이 땅의 노동자가 바로 서는 날이 대한민국이 바로서는 그날임을 암시해준다.
전미희(민주언론운동협의회 시민연합 ‘영화분과’) 작품 문의처 (888-5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