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특별치안구역 악용…1인시위도 막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 하나인 '집회의 자유'가 월드컵을 이유로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최근 대우자동차판매노동조합(위원장 전병덕, 아래 대우자판노조)은 월드컵 기간 중 경기장, 선수단 숙소 주변 등 전국 67곳에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했다가 모두 금지통고를 받았다. 대우자판노조는 △임금체계 개악반대 △부당노동행위 중단 △지엠(GM)의 경영간섭 중단 등을 요구하며 6일 현재 총파업 179일째를 맞고 있다.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관할하는 마포경찰서는 집시법 제5조 1항 2호를 적용해, 대우자판이 신고한 '대우자동차판매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13일 오전 10시, 경기장 남문 맞은편 인도, 참석예상인원 5백명)를 불허했다. 집시법 제5조 1항 2호는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마포경찰서는 '지난 4월 30일 대우자판노조가 힐튼호텔 컨벤션B홀에서 개최 예정이던 대우차매각 본조약식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호텔내로 무단진입을 시도하며 경찰에 폭력을 행사하고 행사장을 점거'한 전례를 집회금지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월드컵 관련 경기장․숙소․연습장 주변에 집회신고한 것은 월드컵 행사 관련자에 대해 집단적 폭력으로 공공의 안녕질서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 명백"하다는 것이 마포경찰서의 주장이다.
과거전력 이유, 집회금지 못한다
하지만 전병덕 위원장은 "당시 우리 주장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기 위해 호텔 안으로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난동을 부린 것처럼 매도하는 경찰의 주장은 전혀 근거 없다"고 반박했다. 전 위원장은 또 "호텔 밖에 집회신고를 미리 다 내놨는데도 경찰은 호텔 정문을 가로막고 (우리를) 무력으로 연행하고 두드려 팼다"며 오히려 경찰의 잘못을 지적했다.
과거전력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례 또한 존재한다. 지난 95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서울역 광장에서 '세모녀 폭행미군 소환 및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위한 시민대회(2.18)'를 개최하려 했을 때, 경찰은 "위 집회 참가인권 중 60-70%를 차지하는 한총련이 94년도에 총 27회의 폭력시위를 주도하였다"며 금지통고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한총련이 종전의 집회에서 수차 폭력행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집회
에서 폭력행사가 있을 개연성이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특별치안구역', 집회불허 지역인가?
민주노총 법규차장 권두섭 변호사는 "경찰은 집시법 상의 규정이나 근거를 가지고 집회의 금지나 제한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정치적 고려를 통해 집회의 허용여부를 판단한 후 불허의 근거를 찾는다"고 자의적인 법 운용을 지적했다. 불허의 근거로 악용되는 대표적인 것은 주요도로․주거지역 집회금지, 중복신고시 집회금지 조항과 함께 집시법 제5조 1항 2호.
권 변호사는 또 대우자판노조의 집회불허 건과 관련 '월드컵시설 주변 특별치안구역 설치․운영 지침'도 한몫을 했을 거라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월드컵 경기장 반경 1킬로미터, 선수단 숙소 주변 및 보조경기장 반경 6백미터 이내 지역을 특별치안구역으로 설정, 집회 및 시위를 일절 불허하기로 밝힌 바 있다. 이는 마포경찰서 정보과 관계자에 의해서도 확인됐다. 정보과 관계자는 5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경기장 주변 1킬로미터 이내에는 집회를 불허한다는 서울시 지침도 대우자판노조의 집회를 불허한 한 요인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3일 미국 선수단이 머물고 있는 서울 메리어트 호텔의 정문에서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대우자판노조 부산지부 손민웅 사무장이 경찰차에 불법연행돼 약 30분간 감금당한 사건도 있었다. 손 사무장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서초경찰서장 등 5명 정도가 몰려와 닭장차(전경차)로 끌고 갔다"며, "차 안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도 있고 미국 사람도 묵고 있는데 (시위장소를) 옮기면 안 되겠느냐'고 요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