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보루'라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고 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쏟아지고 있는 헌재에 대한 비판은 뒤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헌재와 같은 위헌입법심사기관들은 애초부터 양면성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권력에 대한 민중적 통제가 가능한 때 헌재는 헌법을 지키는 문지기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현대에 와서 헌재와 같은 기구가 많은 나라에 일반화된 것은 그만큼 민주주의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건 민중들의 통제가 느슨해지면 헌재와 같은 기구들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가진 자들의 특권을 옹호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헌재도 지배세력과 민중세력 간의 힘의 균형에 따라 그 위치와 성격이 규정되는 권력기관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최근 헌재의 충격적인 결정들로 인해 헌재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지만, 헌재의 반인권적이며 가진 자들에 편향된 결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토지공개념 도입 위헌 결정, 국가보안법의 합헌 결정,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 합헌 결정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28일, 헌재는 장애인 가족이 제기한 최저생계비 관련 헌법소원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다시 한번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배반했다. 이처럼 헌재는 그동안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이나 사회권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거나 축소 해석해 왔다. 반면 사유재산권이나 자유시장경제와 같은 원리는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
민중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법만이 헌재를 '헌법 정신을 지키는 문지기'라는 본연의 임무에 묶어둘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통해 헌법재판관들을 검증한다는 발상은 안이하다.
헌재뿐 아니라 대법원 대법관들도 직접 선출·소환하는 일, 즉 '민중'을 주인으로 삼아야 할 헌재가 '민중'을 물어뜯는 늑대로 돌변하지 않도록 하는 길은 민중적 통제뿐이다. 민주국가의 주인이 되는 길은 국가권력을 민중의 통제하에 두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다.
- 2686호
- 200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