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노동희망뉴스입니다. 방금 무노조 신화로 악명높던 '삼성'그룹에서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속보로 들어왔습니다. 몇 해 전부터 일선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이 적극적으로 실시되면서 오늘과 같은 결실을 낳았다고 하는데요, 현장을 연결해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교사들에게 노조탄압, 장시간 노동, 직장내성희롱 등 노동현장에 뿌리깊은 인권문제가 해결된 미래를 가정해 '보고 싶은 인권뉴스'를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죄다 '걸작'이다. 30대 후반 내지 40대의 실업계고 남자교사들이 주축을 이룬 자리. 처음에는 다들 '대본을 쥐어주는 것도 아니고 몸까지 움직이라니 죽을 노릇'이라는 표정이더니 어느새 정곡을 찌르는 대사들과 익살스러운 몸짓들이 쏟아져 나온다.
얼마 전 전교조 참교육실천보고대회 노동실업분과 초청으로 청소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몸으로 직접 느껴보고 좋아야 해보려는 의지도 생기는 법. 입말, 몸말로 자신들이 소망하는 노동현실을 표현해 보게 하고, 사진 해부나 사례 연구로 노동인권교육에 조금씩 다가서도록 했다. 해마다 수많은 제자들을 노동현장으로 내보내는 실업계 교사들이지만, 대다수가 처음 노동인권교육을 경험해 보는 순간이었다.
노동인권교육은 노동3권, 노동자 프라이버시권 등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을 '참여적' 방법론을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다.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이 날로 늘어나고 실업계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무방비상태로 노동현장에 투입되고 있지만, 이들이 노동인권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특히 학교교육은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다. 실업계에서는 온순한 노동자를 만들기 위한 '직장예절교육'은 실시해도 노동인권을 배울 기회는 제공하지 않는다. 인문계, 실업계를 불문하고 부분적으로나마 노동인권을 다루고 있는 교과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이고, 그마저도 자본가의 시각에서 서술되었거나 '현실의 나의 문제'와 동떨어진 '죽은 지식'만을 전달하고 있을 따름이다. 토론, 단체협상 실습 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체계적인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비록 1년여 전부터 몇몇 단체가 프로그램 개발과 실천에 나서면서 관심 있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전국 곳곳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실천할 의지를 가진 교사들이 늘어나야 하고 이들을 위한 재교육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성희롱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라고…" 교육 도중 한 전교조 남교사가 뱉은 이 말은 교사 재교육이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임을 확인시켜주지만 말이다. 참여적 교육방법을 개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일 역시 적지 않은 공을 들여야 한다.
"권리 권리 했다가는 곧바로 잘려요." 현실에서 '사문화' 된 노동법 중심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접한 청소년들은 자조적인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옳은 말이다. 법조항 중심의 지식 교육을 넘어 어떻게 인권기준과 현실의 괴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길러주는 교육을 만들 것인가. 세상살이야 어차피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체념과 절망을 어떻게 넘어서도록 할 것인가. 노동인권교육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산을 넘을 지혜를 짜내기 위해서도 더 많은 이들이 지금 노동인권교육에 나서야 한다.
◎배경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