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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내집마련의 꿈, 그 너머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⑦ (끝)

초등학교에서 꿈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아이들은 "의사요", "대통령이 될래요", "가수 할 꺼예요"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대답들을 내놓는다. 그러나 20대를 거쳐 30대에 들어서는 친구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대개는 서너 개 정도의 답안이 있고 그 중 하나는 '내집마련'이다.

내집마련을 위한 재테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지만 2005년 1/4분기 한국의 주택 자가소유율은 61.77%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는데도 열 명의 친구들 중 네 명은 집을 가질 수 없는 것. 그나마 여섯 명의 친구들의 내집마련은 결혼 후 평균 10.8년 동안 평균 5번의 이사를 하고 난 후에나 가능하다. 저축만을 통해 집을 마련하는 경우는 절반밖에 되지 않고 부모·친척의 보조, 증여·상속, 융자·사채 등을 빌어서야 가능하다. 2003년 현재 빚을 지고 있는 가구의 부채사유는 주택마련이 36.7%로 가장 높다.

이렇게 청춘을 헌납하는 내집마련의 꿈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는 한 건설회사의 광고

▲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는 한 건설회사의 광고



살기 위한 집인가, 팔기 위한 집인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광고문구는 집이 단순히 비를 피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집은 '당신이 어느 정도의 재력이 있는지를 말해주는' 징표이기도 하며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당신이 얼마나 소득을 올릴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최근 부동산 가격과 집값의 폭등으로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해법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전쟁을 하듯이 대처'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집값을 잡으려고 하지만 '부동산불패신화'는 여전히 재테크의 기본이다. 분양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 내걸리는 현수막의 몇 자 되지 않는 글자에는 '전매가능'이 늘 포함된다.

그러나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의 이면에서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저금리정책과 각종 규제완화는 건설자본과 집을 팔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2002년까지 10년간 600만채 이상의 주택이 건설되었는데도 자가소유율의 증가는 4.3%에 그쳤다. 게다가 소득10분위 중 하위 1∼4분위 가구의 주택소유율은 최근 1년동안 모두 2∼3%씩 오히려 낮아졌다. '내가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한 꿈은 '내가 팔 집'을 사려는 사람들의 욕망에 묻혀 집값을 덩달아 올릴 뿐이다. 내집마련의 꿈이 부풀수록 내집마련은 멀어진다.


내집=살만한 집?

2002년 대한주택공사가 발행한 주거복지백서에 따르면, 공공임대, 쪽방, 불량주거밀집 계층은 주거비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중형, 소형분양계층은 상대적으로 교통과 환경 등 질적 가치에 점수를 준다. 내집을 갈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거주의 안정성이다. 소득대비 임대료 비율이 21.3%로 선진국의 16%에 비해 매우 높은 데다가 수시로 들썩이며 치솟는 전월세값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가주택을 마련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42.9%는 '내집'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내집만으로 살만한 집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내집과 살만한 집,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할까

▲ 내집과 살만한 집,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할까



2003년 주택법에 신설된 최저주거기준을 적절한 주거기준이라 여기기도 힘들다. 2004년 주택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규모가 작거나 낡다는 등의 이유로 주택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36.6%였으나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23.1%로 집계되었을 따름이다. 당시 주택이 만족스럽다고 답한 사람은 30.3%에 불과했다.

일본은 최저주거기준 외에 그보다 높은 유도주거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또한 주택건설 5개년 계획 수립을 의무화하여 주택난 해소, 최저주거수준 확보, 유도주거수준 확보 등 주거권 실현을 위한 단계들을 밟아나가고 있으며 1966년부터 매 5년마다 총주택건설호수의 절반 가까이를 공적자금주택으로 공급하고 있다.


살만한 집으로의 이동은 가능한가

주거복지백서는 주거상향능력의 분석결과를 보여준다. 주거수준을 5단계로 분류한 후 월세, 전세, 자가가구별로 주거상향을 위한 구매력을 분석한 것. 결과는 주거수준이 높을수록, 월세보다는 전세가, 전세보다는 자가가구가 구매력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자가이면서 주거기준이 가장 높은 가구(16%)의 구매력이 전체구매력의 3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월세이면서 최저주거기준미달인 가구의 주거상향 유효수요능력은 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정하고 부실한 집에 사는 가구일수록 자력으로 주거상향이 불가능하다는 것.

소득하위 1∼3분위 가구의 74.6%는 최저주거기준 미달이고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71.5%는 20년째 같은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거복지백서에 따르면, 이들의 주거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데도 이주의사가 없는 가구의 비율은 더 높다. 냉혹한 현실은 안정적이고 적절한 집에 대한 꿈조차 사치로 만들고 있다.

내몰리는 것은 잠깐이지만 올라가기는 어려워

▲ 내몰리는 것은 잠깐이지만 올라가기는 어려워



'있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정책

주택을 시장에 내맡기는 것으로 주거권 실현이 요원하다는 것은 익히 지적된 바다. 그러나 실질적인 공공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의 2.5%밖에 되지 않는 한국에서 최근 5년간 공급된 공공주택은 연간주택건설호수의 20%밖에 안된다. 게다가 주거비지불능력과 무관하게 주택공급만 확대하다보니 주택이 늘어나도 '없는 사람들'의 수요가 충족되지 못했다. 전체 세대의 1.7%가 다섯채에서 스무채까지 집을 소유하는 현실이 남을 뿐이다.

지난 4월 27일, 정부는 '임대주택정책 개편방안'을 발표하여 2012년까지 총 150만호의 장기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의 장기임대주택 건설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택지·세제 등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건설주체를 부동산투자회사, 연기금 등 재무적 투자자에까지 확대하는 모순적인 정책방향을 동시에 담고 있다.

분양가 자율화(1998), 소형주택건설 의무비율 폐지(1998) 등 각종규제완화로 주택을 통한 개발이익의 편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끓어오를 대로 끓어오른 주택시장에 필요한 것은 민간건설자본에 대한 택지·세제 지원이 아니라 철저한 개발이익의 환수다. 민간건설자본에게는 시공권만을 주고 주택의 불필요한 소유에 대해 세제를 강화하는 등 땅으로부터 나온 것들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공공재로서의 집

주거권이 시장의 변덕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정 규모로 공공주택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시장주의자들이 부르짖듯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낮추자'는 단순한 해법으로는 '주택'문제의 해결도 요원할뿐더러 거주할 '사람'은 오히려 배제될 뿐이다. 내집마련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개인의 좌절로 떠넘길 것이 아니라 '주택'과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즉 집이 재산증식의 수단이 아닌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공공재로 인식되어야 한다. 개개인에게 집은 각자의 것일 수 있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살아갈 ‘사람’에게 한정된 땅에 지어질 집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살만한 내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점유할 권리가 인정되면 된다.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처럼 누구나 살 수 있는 '살만한 내집'이 확보되어야

▲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처럼 누구나 살 수 있는 '살만한 내집'이 확보되어야



현재 서울시에서 시행중인 다가구주택 매입임대정책과 같이, 공공주택확보를 위해 기존주택을 매입하는 것도 중요한 방향이 될 것이며 더욱 적극적인 수용도 고려해볼 수 있다. 또한 싱가포르의 정책도 참조할 만하다. 싱가포르는 만 21세 이상의 싱가포르 시민 중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시민에게 주택개발청(Housing&Development Board)에서 공급하는 주택의 신청자격을 부여해 국민의 85%가 공공주택에 거주한다. 공공주택 중 90%가 분양주택이기는 하지만 분양은 소유권을 완전히 이전하지 않고 99년 동안의 사용권만을 부여하는 장기임대형식의 계약이다. 거주의무기간 이전에 매각할 때는 최초 분양가로 환매하도록 전매를 제한하고 두 번째로 분양받은 주택을 매각할 때는 주택개발청에만 매각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주택에 대한 처분과 수익권을 제한하고 있다. 분양가격도 방3개짜리 주택은 90%의 가구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 방4개짜리 주택은 70%의 가구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정하는 등 주변시세의 55% 수준으로 공급하고 있다.


권리로서의 집-주거

집이 자기 소유일수록, 많을수록 더 좋은 집을 얻기 쉽고 집이 없을수록, 소득이 적을수록 집을 마련하기 더욱 힘들어지는 현실. 게다가 가구 위주의 주택정책은 집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개인들을 '숨겨진 홈리스'로 남겨놓는다.

누구에게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집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일반논평4를 통해 적절한 공간, 점유의 안정성, 지불가능성, 사생활의 보호, 바람직환 환경, 기본적인 편의시설에 인접한 적절한 입지 등을 '적절한 주거'의 내용으로 제시하며 주거권의 실체를 밝힌 바 있다.

주거권은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권리가 되어야 한다. 이미 1970년대에 독일법은, 16세 이상의 청소년 및 성인이 독립을 위한 거주처를 요구할 경우 주정부가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거주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주거'에 대한 청구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주거취약계층의 절박한 현실도 바뀔 수 있다. '적절한 주거'는 청춘을 헌납하고 '합격' 여부에 따라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무엇이 아니다. 권리를 노름판에 올려놓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일 뿐이다.

시장이 '합격'을 통지해주기를 기다리며 청춘을 바쳐야 하는가 [출처] blog.jinbo.net/batblue

▲ 시장이 '합격'을 통지해주기를 기다리며 청춘을 바쳐야 하는가 [출처] blog.jinbo.net/batblue



'사회권의 침해에 관한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듯, 국가는 주거권의 실현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의무교육기간을 설정하여 적절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듯, 모든 거주민의 주택소요(needs) 및 수요(demand)를 파악하여 주거권 실현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을 수립하고 정책수단이 될 수 있는 공공주택을 확보해야 한다.

집을 수 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집이 재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만들고 추진해온 주택정책. 이제 우리가 귀기울여야 할 목소리는 집없는 '시설' 사람들, 집을 빼앗긴 사람들, 집을 나와 집을 찾는 아이들, 폭력에 노출된 채 갈 곳 없는 사람들, 여성의 주거권을 말하는 여성들, '잠자리용 깔개로는 스티로폼이 최고'라며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목소리다.
덧붙임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 활동가입니다.